담임쌤의 담임쌤
조례는 짧게, 종례는 더 짧게
-20-
그러나 세상은 그리 단순하지 않다.
세상이 우리에게 OK나 NO사인 보다
훨씬 더 많이 주는 것이 있었으니,
그것은 NG 컷이었다.
"손 쌤~ 빨 리~ 와~"
말은 빨리오라고 하시면서 부르기는 무지 천천히 부르시는 이 분은 나의 업무 부장님, 나의 상사, 그리고 나의 마음속 담임 선생님으로 지금은 나와 함께 5년째 우리 학교의 홍보를 맡고 계시는 프로 중의 프로, 위대한 나의 롤모델이시다.
나는 중학교 방문 홍보 출장을 앞두고 학교 홍보물품을 잘 챙겼는지 다시 한번 꼼꼼히 확인하곤 저만치 앞서가고 계신 우리의 부장님을 쫓아 뛰었다. 뛰면서도 머릿속으로 물품은 개수에 맞게 챙겼는지, 노트북과 USB는 빠트리지 않았는지 다시금 확인했다.
왜냐하면 얼마 전에도 인생의 NG컷을 두 방이나 찍었기 때문이다. 한 번은 중학교 방문 홍보를 가기 전에 PT자료가 담긴 USB를 교무실에 두고 온 바람에 졸지에 45분간 원맨쇼를 한 일이고, 다른 한 번은 실수로 길을 헷갈려 같은 이름의 초등학교에 방문한 일이다. 아직도 잊을 수 없다. 그때 우리 부장님의 휘둥그레한 두 눈을..
'손쌤~ 저기 봐~ 애들이 아주~ 작다~'
부장님의 시선 끝엔 자기 몸통만 한 가방을 메고 하교하는 초등 저학년 여자아이들이 서있었다. 애들이 아주 작은 건 당연했다. 아주 어린애들이었으니까.. 흑흑.
'앗, 부장님 저희가 동명의 초등학교에 온 것 같습니다!'
이번엔 그런 허망한 실수들로 시간을 낭비할 수 없다. 나는 더블체크한 목록표를 들여다보며 확신에 찬 어조로 말했다.
"부장님, 오늘은 두 곳을 들려야 합니다. 한 곳은 인근의 여자중학교이고 다른 한 곳은 우리 학교에 많이 지원하는 공립 중학교예요. 두 곳 다 많이 신경 쓰셔야 하실 것 같습니다."
나는 숨 가쁘게 말을 내뱉곤 머릿속으로 프레젠테이션을 시뮬레이션했다. 도르륵 도르륵 굴러가는 내 눈동자를 보고 부장님은 느긋하게 웃으며 말했다.
"손쌤~ 하던 대로 해~"
늘 여유 넘치시는 말씀에 나만 애가 탔지만, 나는 최대한 티를 내지 않고 조용히 고개를 끄덕였다. 어느덧 부장님은 정년을 앞두고 계셨고 나는 부장님을 모시고 학교 홍보를 담당한 지 5년이 지나가고 있었다. 앞서 말했듯 그간 별의별 사건과 에피소드들이 다 있었지만 그것들 까지 포함해서 그 시간들은 모두 다 내 인생에 값진 경험들이었다.
사실, 그야말로 장족의 발전 아닌가.
'학교 망해라'를 외치던 자퇴 희망자가
'학교 오세요'라고 자연스럽게 외치는 학교 홍보 담당자가 되었으니.. 교육의 힘이란?! 자본주의의 힘이란?! 이토록 위대했다.
반쯤은 농담이고,
학교 홍보를 하기 위해 학교의 구석구석을
보다 더 많이 알게 되니 학교의 시스템과 그 메커니즘을 이해할 수 있어 좋았다. 그리고 그 안에서 내 선에서 해결할 수 있는 모순들과 불합리한 부분은 개선해 보려 시도해 볼 수 있었다. 그건 내게 매우 유의미한 행위였다. 내가 다시 학교에 돌아온 가장 큰 이유가 학교를 조금 더 행복한 곳으로 변화시키고 싶었던 것이니까.
무엇보다도 학생들의 눈으로 학교를 계속 바라볼 수 있게 해 준다는 점도 이 일의 큰 장점 중 하나였다. 학생의 눈으로 학교를 바라볼 수 있게 해 주고, 그리하여 어떻게 하면 오고 싶은 학교가 될 수 있는지 고민해 보며 학생들과 학교의 미래에 대해 생각할 수 있었다. 학교는 어떻게 해야 기다려지는 내일의 공간이 될 수 있을까. 한 참을 생각하는데 부장님이 내게 말을 거셨다.
"손쌤~, 너무 애쓰지 마~ 다 잘될 거야~ 다 잘되게 되어있어~"
나도 한 낙천적인 인간이지만, 우리 부장님은 나보다도 더하시다. 그나저나 내가 뭔가 심각한 생각을 하고 있단 걸 눈치채신 건지 내 마음을 위로해 주시려 다정하게 말씀해 주시니 그저 감사할 따름이었다. 또한, 존경할 수 있는 상사와 함께 일 할 수 있는 것은 삶의 큰 원동력이 된다. 나는 여러모로 행운아였다.
"부장님, 도착했습니다. 올라가시죠."
금방 인근의 여자 중학교에 도착했다. 그날도 여느 때처럼 부장님과 열심히 학교 홍보를 하고 나서는데 학생 한 명이 마지막으로 우리에게 인사를 건네며 말했다.
"저도 교사가 꿈이에요! 선생님들처럼 학교를 사랑하고 학생들 좋아하는 교사가 되고 싶어요! 그 학교에서 내년에 뵈면 꼭 아는 척할게요~~!!"
당찬 이별 인사에 나는 웃음이 나왔다. 부장님도 마찬가지였다. 부장님은 '요즘~ 애들은~밝아서~참~ 좋아~'라고 하셨고 나는 '그렇네요'라고 대답했다. 그런데 그나저나 그 학생이 말한 한 구절이 내 마음 한 구석을 은은하게 스쳤다.
"저.. 부장님.."
"응?"
"제가 학교를 사랑하나요?"
자신에게 스스로 물어봐야 할 질문을 남에게 하다니.. 나도 다소 어이가 없었지만 그 말이 너무나 생소하게 느껴져서 부장님께 여쭤보지 않을 수 없었다. 그러자 부장님께서는 느긋하게 차에 올라타 시동을 거시며 말씀하셨다.
"학교는~사랑을~ 가르치는 곳이야~"
그 말씀에 절로 웃음이 나왔다. 아, 우리 부장님이 바라보시는 학교는 그런 곳이구나. 너무나도 잘 알 것 같았다. 나는 한 학교를 5년간 다녔으니 5년 치의 사랑을 배운 것이다. 이만하면 아주 많은 사랑을 배운 것이지. 5년이면 석사, 박사과정을 다 할 수 도 있는 시간이다.
"그리고~ 좋아서 하는 일 ~아니면~ 이렇게~ 못해. 우린~신나서 하잖아~"
지당하신 말씀이었다. 나는 고개를 끄덕였다. 나는 그간 학교를 좀 더 행복한 공간, 아니 행복이란 말이 거창하다면, 좀 더 편안한 공간으로 만들기 위해 내 나름대로 애써왔는데 그건 애쓴다고 되는 일은 아니었다. 오히려 나 자신이 한 발자국 떨어져 여유를 갖고 즐기면서 할 때 더 잘되었다. 이번에도 이렇게 부장님께 하나 더 배운다.
"손쌤~ 하던 대로 해~ 자신을 믿~고~"
나는 피식 웃음이 새어 나오는 것을 참고 짧게 '예'라고 대답하고 고개를 끄덕였다.
배우고픈 점이 많은 어른이 계시단 점에 감사하며, 또다시 다음 출장지로 발걸음을 옮겼다.
하던 대로 자신을~믿고~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