괜찮다, 괜찮다, 괜찮다

어른이 되는 주문

by 손시나

-19-


변해가는 그녀를 보는 건 슬픈 일이다. 특히 밝았던 그녀가 현실에 지쳐가는 것을 보는 것은 더욱. 오늘 아침에 만난 그녀가 특히 그러했다. 나는 그녀를 출근길(그녀는 등굣길)의 중앙현관 계단 한편에서 마주쳤다.


그녀에 대해 잠시 설명하자면 그녀는 고1 그리고 고2, 그러니까 지난 2년간 내 수업을 들었으나 단 한 번도 우리 반은 아니었던, 그러나 내 수업 시간마다 가장 큰 목소리로 대답하고 반을 기운차게 이끌어가서 내가 너무나 예뻐했던 제자다.


2년을 우리는 옆 반 반장과 옆 반 담임선생님으로 지냈다. 수업시간에도 쉬는 시간에도 그 학생은 종종 나를 따라다니며 재잘거렸고 그 모습은 무척 귀여웠다. 귀여웠었다. 그러니 축 늘어진 어깨로 힘겹게 계단을 오르는 그녀의 뒷모습을 나는 그녀인지도 모르고 지나쳤는데, 나를 붙잡아 세운건 그녀의 낯선 쉰 목소리였다.


"선생님, 저랑 수시 상담 좀 해주세요."


수시 상담이라니?, 나는 고개를 갸우뚱했다. 그건 본인의 고 3 담임 선생님 또는 진학담당 선생님과 해야 하는 것이다. 이런 일에는 잘 못 끼어들면 월권으로 오해받아서 골치 아파진다. 나는 주로 1, 2학년 담임을 해왔기 때문에 입시에 대한 정보가 부족하다며 에둘러 거절했다. 그러자 그녀가 누구보다 상처받은 얼굴로 내게 말했다.


"저는 지금 냉정한 판단이 필요해요."


아니, 너는 누가 봐도 위로와 격려가 필요해 보이는데?.. 나는 바로 되받아 치려다가 잠시 생각을 멈췄다. 고3 생활이 그렇게 힘든 걸까. 나는 짠한 마음이 들었다. 나는 다 죽어가는 그녀의 목소리를 차마 그냥 넘길 순 없어서 어렵게 입을 열었다.


"나는 너무나 네 편이기 때문에 너한테 냉정한 판단은 해줄 수 없어. 네 얘기를 들어줄 사람이 필요하다면 점심시간 때 찾아와."


그녀는 말없이 고개를 끄덕이고 자신의 반으로 향했다. 나는 달력의 상담 리스트에 그녀의 이름을 써놓고 반신 반의 했다. 과연 올까. 빈 말은 아니었을까. 그리고 내가 지금 타 학년 타반 학생을 상담할 때인가. 지금은 모두가 바쁜 때였다. 고3 학년실은 수시 원서철이라 다들 너무 정신없이 바쁘고 사실, 밑에 학년실도 정신없긴 마찬가지였다. 출제기간이었고, 학생상담이 수시로 이뤄지고 있었으니까. 원래대로라면 우리 반 학생들도 상담이 5명은 밀려 있었는데, 나는 어째서인지 그녀를 외면할 수가 없었다.


보석 같았던 그녀가 어째서 빛을 잃어 가는 것일까. 학교란 곳은 왜 이렇게 학생들을 힘들게 하는 것인가. 아니, 학교가 힘들게 하는 것인가. 아님 이 사회가 힘들게 하는 것인가. 생각이 멈추지 않고 데구루루 계속 굴러갔다. 그때 그녀가 교무실 문을 열고 나를 불렀다.


"선생님, 저 왔어요."


나는 그녀를 데리고 강당 뒤편의 조용한 벤치로 향했다. 그녀는 손에 기어코 수시 상담 종이를 들고 서 있었다. 나는 그런 것 못해준대도.. 정보도 없고, 프로그램도 없고, 그리고 냉정함도 없단 말이다. 내가 너한테 어떻게 냉정하게 하겠어. 이다지도 네 팬인데. 내가 빙긋 웃으며 가볍게 쏘아붙이자, 그녀가 겨우 조금 웃었다.


나는 그녀가 어떤 대학에 갈지 궁금하지 않았다. 지방거점국립대학교와 인서울대학교를 걸쳐있는 성적이니 갈 곳이 없어서 걱정할 필요는 없다. 그리고 내가 알기론 가고 싶어 하는 학과와 진로도 명확한 그녀였다. 그러니 장담하건대, 그녀는 어딜 가서건 잘 해낼 것이다. 2년을 봐왔으니 그 정돈 알 수 있다. 그렇지만 내가 정작 궁금한 것은 따로 있었다.


"너 왜 울 것 같은 얼굴로 다녀?"


내 질문에 그녀는 할 말을 잃은 표정으로 멍하니 잠시 나를 쳐다보곤 이내 말했다.


"제가 울 것 같은 얼굴을 하고 있나요?"


예. 나는 고개를 끄덕였고 그녀는 고개를 푹 숙였다. 그리고 떨리는 목소리로 말을 이었다.


"선생님, 저 서울 가고 싶어요. 집에서 탈출하고 싶어요.."


집에서 탈출이라, 나는 입술 끝을 꽉 깨물었다. 그녀의 가정 배경에 대해 전혀 아는 바가 없어서 함부로 재단할 수 없지만, 그녀가 탈출이라는 표현을 쓴 이상 집은 그녀에게 안락한 공간은 아닐 것이다. 학교도 물론 아닐 것이고. 나는 말없이 눈을 내리 깔고 시선은 발끝으로 향했다. 그녀의 닳은 슬리퍼와 낡은 양말을 보고 있자니 어떤 말을 해야 할지, 도무지 한 단어도 떠오르지 않았다.


" 모르셨죠.. 저 티 잘 안 나요."


응, 정말 몰랐다. 구차하지만 변명하자면, 나는 네가 우리 반 학생이 아니어서 사정을 잘 알지 못했고, 늘 밝고 쾌활해서 탈출하고 싶은 집에서 학교로 향한다는 것은 정말이지 더욱 상상조차 못 했다. 나는 왠지 모르게 미안해졌다. 그러고 보니 문득 생각이 났는데, 수업 중에 그녀가 자신이 입고 온 티셔츠에 대해 얘기하며 웃었던 기억이 있었다.


"아.. 나 갑자기 그거 생각났어. 너 그때 수업 중에 무슨 사례 얘기하다가.. 중국 쇼핑몰에서 3,000원 주고 티셔츠 샀다고 그거 입고 왔었잖아."

"맞아요, 그거 3,000원짜리 아직 집에 있어요. 잘 때 종종 입어요."

"응.. 근데 너 그거 입어도 옷에 태가 확 났었어. 너는 3,000원짜리 입어도 빛이 났다니까?!"


그건 진심이었다. 이게 3천 원짜리 옷이라고? 하며 내가 놀라워 하자 구김살 없이 웃으며 '꼭 싼 게 비지떡은 아니에요',라고 말하며 웃던 그녀의 모습에서 나는 여고생다운 밝음을 느꼈고 내심 그 순수함을 부러워했었으니까. 나는 그 3천 원짜리 티셔츠를 당당하게 입고 와서 자랑하는 그녀가 멋지다고만 생각했지, 그 뒤에 이런 힘겨운 마음을 감추고 있었을 것이라고는 생각조차 못했다. 내가 말없이 가만히 있자 그녀가 용기를 내 다시 말했다.


"그냥 선생님 보고 싶었어요. 수업했던 것도 생각나고 그랬어요.."


말을 마치고 그녀는 울음을 터트리고 말았다. 마치 자신의 마음 안에서 무언가가 무너져 내린 것 같았다. 나는 말없이 손을 꽈악 잡아주었다. 내 손은 따뜻하니까, 작은 온기라도 나눠주고 싶었다. 그리고 내 손에서 조금이라도 응원의 기운을 받아갔으면 했다. 열아홉은 왜 이렇게 힘든 걸까, 아이들은 왜 이렇게 힘들게 어른이 되어야 하는 걸까. 나도 그랬지만, 똑같이 반복되는 현실에 너무나도 서글퍼졌다. 나는 붙잡은 손끝에 힘을 꽈악 주고 말했다.


"안 괜찮은 일들도 버티니까 괜찮아지더라고. 안 지나갈 것 같은 시간들도 결국엔 지나가더라고. 괜찮다, 괜찮다, 괜찮다. 혼자 되뇌면서 버텼는데. 나 사실 너만 할 때 계속 자신이 혼자라고 생각했는데, 아니더라고 옆에 누군가 있긴 있어. 그니까 괜찮아. 지나갈 거고 괜찮아질 거야, 나랑 같이 버티자."


대충 되는대로 지껄이면서도 나는 내 진심이 그녀에게 가닿길 바랐다. 그녀는 내 말을 알아듣는다는 듯 고개를 끄덕이곤 소매로 눈물을 닦으며 대답했다.


"다음에 선생님 뵈러 가면, 쌀과자 주세요. 저번에 발표해서 받았던 그 왕만 한 쌀과자요."


이~~ 만한 거. 그녀가 손바닥을 펼쳐 보이며 묘사하자 나는 그 황당함에 웃음이 절로 나왔다. 눈가는 울음으로 축축이 젖어선 이 와중에도 웃음으로 승화시키려고 하다니. 너도 참 너고 나도 참 나다.


" 그래 이만~~ 한 쌀과자 이마아아안큼~ 줄게, 수능 치기 전에 놀러 와! 엿도 이렇~~ 게 기다란 거 준비해 둘게."


나의 대답에 그녀가 씩씩하게 고개를 끄덕였다. 곧 종이 쳤고, 우리는 헤어졌다. 나는 계단을 오르는 그녀에게 마지막으로 당부했다.




"쌀과자 먹고 싶을 때 꼭 내려와. 당 떨어진다는 건, 기운 떨어진다는 거니까!"



그녀는 손으로 OK 했다.

나도 OK 했다.


그렇다.

종종 인생에 NO 사인이 떠오르더라도 우리는 곁에 있는 이들과 함께 다시 기운을 내서 세상으로부터 OK를 받아 낼 것이다.


그렇게 어른이 되어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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