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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손수호 Jul 13. 2021

1. 어느 토요일 오후 유언 출장

(근간)사건 에세이 '사람이 싫다' 초고  1부 1번 에피소드

가을비 내리던 토요일 오후. 재판도 상담도 없어 그나마 여유로운 시간이었다. 책상 앞에 앉아 차 마시며 느긋하게 서류 뭉치를 넘기기 시작했다. 그런데 얼마 지나지 않아 들리는 휴대전화 진동음. 자주 연락 주고받진 못하지만 오래전부터 알고 지낸 지인이었다. 토요일 오후 갑작스러운 연락, 그것도 카톡이나 문자가 아닌 전화라니. 뭔가 급한 일이 터졌을 가능성이 컸다.     


역시나 다급한 목소리. 지금 당장 아산병원으로 가 달라는 부탁이었다. 희소병으로 입원한 재력가가 조금 전 의사로부터 오늘을 넘기지 못할 거라는 이야기를 들었는데, 재산 규모가 상당해서 급히 정리해야 하니 와서 유언을 받아달라는 요청이었다. 시간이 없다는 이야기와 함께 환자 아내 연락처도 받았다.     


휴일 오후 갑작스러운 출장 요청. 종종 있는 일이지만 사실 조금 귀찮았다. 잘 이해되지 않는 부분도 있었다. 오늘을 넘기기 힘들 정도로 위중한데 과연 지금 유언을 할 수 있을까? 희소병으로 사경을 헤맬 정도라면 이미 오랜 시간 투병 생활을 했을 텐데, 그런데도 왜 아직 재산을 정리하지 못했을까? 재력가라면 잘 아는 변호사 한둘은 있는데 왜 지인을 통해 처음 보는 변호사에게 연락했을까? 의문을 가진 채 집을 나섰다.   




가을비답지 않게 굵은 빗줄기를 뚫고 병원으로 가며 환자 아내와 통화했다. 막상 도착해도 도움을 주지 못할까 걱정돼 궁금한 부분을 미리 물었다. 사정은 이랬다.


환자는 제주에서 부동산 사업을 하던 50대 남성이었다. 몇 달 전 숨 쉬는 게 불편해 동네 병원에 갔는데 원인을 알아내지 못했고, 대학병원 몇 군데를 돌고 나서야 겨우 알게 됐다. 근육에 문제가 생기면서 호흡도 힘들어졌던 것. 우리나라에 스무 명 정도밖에 없을 정도로 드문 질병이었다.


입원해서 관리받자 상태가 호전됐다. 곧 일상 복귀 가능할 줄 알았다. 하지만 며칠 전 갑자기 상태가 나빠졌고, 조금 전 의사가 오늘을 넘기기 힘들다고 말했다. 아내는 그래도 아직 정신이 멀쩡하고 통증도 간헐적이어서 지금 오면 문제없이 유언장 작성 가능하다고 했다. 오래전 의절한 전처(前妻)소생 자녀까지 있어 재산 문제가 복잡하다는 말도 덧붙였다.     




유언(遺言). 죽기 전 남기는 말이다. 변호사 업무 중 유쾌한 일이 많지 않은데, 유언과 상속을 다룰 때는 마음이 더 무거워진다. 사람의 죽음에 관한 일이기 때문이다. 유언의 종류와 방식은 법률에 엄격히 규정되어 있다. 녹음, 공정증서, 비밀증서, 구수증서로도 할 수도 있지만, 가장 간단하고 일반적인 건 자필증서에 의한 유언이다. 드라마나 영화에 자주 나오듯 유언장을 작성하는 방식이다. 환자 상태를 직접 확인하고 가장 적합한 방식으로 처리해야겠다고 구상하며 병원으로 향했다.    


우리 법은 유언이 갖추어야 할 요건을 자세히 규정하고 있다. 조금만 어긋나도 효력이 인정되지 않는다. 유언장도 마찬가지다. 유언자가 전문, 연월일, 주소, 성명을 스스로 적고 날인으로 마무리해야 한다. 하나라도 빠지면 안 된다. 다 자필로 적었지만 아들이 주소를 대신 적어준 경우에도 법원은 유언의 효력을 부정했다. 아파트 동·호수를 적지 않고 그냥 ‘암사동에서’라고 적은 경우도 마찬가지였다.


유언 효력에 따라 수억, 수십억의 큰돈이 왔다 갔다 한다. 유언에 관한 분쟁이 생기면 가족 관계가 완벽히 파괴된다. 그러니 미리 꼼꼼히 대비해야 한다.     




걱정하는 마음으로 입원실 문을 열었다. 1인실이었다. 다행히 상태는 괜찮았다. 오늘을 넘기기 힘든 위중한 환자로 보이지는 않았다. 의사가 뭔가 실수했나. 아니면 아내가 뭔가 감추는 게 있나. 조금 이상하긴 했지만 일단 무사히 업무 마칠 수 있을 것 같아 안도했다.     


그런데 이런저런 질문에 답하면서 시간이 조금 흘렀고, 그사이 통증이 찾아왔다. 엄청난 통증이었다. 끔찍했다. 지켜보기 힘들었다. 가족은 환자 달래고 간호하느라 정신없었다. 분주히 오가던 의료진도 내게 시선 한 번 주지 않았다. 법정에서 나도 주인공이다. 모두가 주목한다. 하지만 병실에선 쓸모없는 존재였다. 서류 뭉치 들고 병상 곁에 우두커니 서 있을 뿐이었다.     


5분, 10분 지나도 차도가 없었다. 오히려 점점 더 나빠졌다. 환자가 느끼는 죽음의 공포와 불안감이 나에게도 전해졌다. 당신 곧 죽는다는 의사의 말을 조금 전 직접 들은 사람이다. 얼마나 무섭겠는가. 그렇게 한 시간쯤 흘렀다.


죽어가는 환자의 몸부림을 지켜봤다. 나 역시 고통스러웠다. 당장 회복하기 힘들 것 같아 일단 철수하기로 했다. 병실 밖으로 나오니 의절했다던 아들과 며느리가 있었다. 그들은 병실 밖에 머물다 그냥 돌아갔다. 안타까웠다.     




비 오는 토요일 저녁 교통 상황은 좋지 않았다. 평소와 달리 라디오도 노래도 듣지 않았다. 뭘 하고 싶다는 생각이 들지 않았다. 조금 전 직접 본 그 상황, 그 모습 때문이었다. 이런저런 상념과 감상에 빠진 게 아니었다. 그냥 아예 아무런 생각도 들지 않았다.


전화가 왔다. 모르는 번호였다. 예감이 좋지 않았다. 돌아가셨다는 짧은 연락. 어느 정도 예상했지만 충격이었다. 나는 그날 누군가의 죽음 직전 몸부림을 고스란히 지켜봤다. 심지어 친분도 없고 인생 궤적도 모르는 그날 처음 만난 사람이었다. 멀쩡히 대화 나누던 도중 통증이 시작됐고, 결국 그 후 한순간도 정상으로 돌아오지 못한 채 고통 속에 사망했다. 나는 순전히 관찰자의 시선으로 죽음이 다가오는 순간을 목격했다. 예상하지 못한 일이었다.     




변호사로 일하며 이런저런 괴이한 일과 험한 꼴을 다 겪었다. 여러 사람을 만났고 다양한 경험도 했다. 이제는 어느정도 무뎌졌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그날 삶과 죽음의 경계선이 서서히 이동하는 순간을 목격한 후 많은 생각을 하게 됐다. 삶과 죽음. 그리고 인생은 무엇인지. 내가 지금 잘살고 있는 건지. 무엇을 위해 사는지. 어떻게 살아야 하는지. 남들 따라 허상을 좇으며 시간을 낭비하고 있는 건 아닌지. 정말 내가 원하는 게 뭔지 알고는 있는지.


한편으론 이제라도 이런 생각을 하게 됐으니 그나마 다행일 수도 있다. 더 늦기 전에 바로잡으면 되니까.     


내 삶이 그날 그 순간 전과 후로 나뉠 것 같다. 삶의 방향을 다시 설정해야 한다. 그런데 어떻게 해야 원하는 방향으로 갈 수 있을까. 이런 감상적 순간에도 직업상 습관이 발동했다. 그래서 순서에 따른 인과관계를 따져봤다. 이건 나도 어쩔 수 없는 일이다.     


앞으로 어떻게 살 것인지 결정하려면, 우선 ‘나’는 대체 어떤 사람인지 알아야 하겠다. 그걸 위해서는 내가 어떻게 살아왔는지 확인해야 한다. 그동안 어떤 일을 겪었고 어떤 선택을 해서 어떻게 대응했으며, 지금 그걸 어떻게 기억하는지 살펴보면 되겠다.


유쾌한 기억일 수도 있고 다시 떠올리기 괴로운 순간일 수도 있다. 그래도 하나씩 돌아보겠다. 그동안 겪은 일을 되짚어보면서 앞으로 가야 할 길을 찾으려 한다.




동행을 부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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