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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손수호 Aug 08. 2021

36. 언제 칼 맞을지 모른다 - 2편 목사님이십니까?

(근간)사건에세이'사람이 싫다' 초고  3부 36번 에피소드 2편

변호사는 갈등과 분쟁의 한 복판에 서 있다. 당사자도 아니면서 가장 앞에서 용맹스럽게 싸운다. 그래서 원한을 사고 그래서 위험에 처한다.


불안하다. 막연한 두려움이 아니다. 악플이나 협박 전화 정도가 아니다. 물리적 위험이다. 누가 언제 어디서 어떤 공격을 가해올지 모른다.


망상이 아니다. 경험이다.


1편 건물주의 황산 테러




2편 목사님이십니까?


승소했다. 억대 손해배상 소송이었다. 판결이 확정됐으니 이제 돈만 받으면 됐다. 하지만 패소한 상대방은 기분이 상했고 순순히 응하지 않았다. 반(半) 건달들 사이의 자존심 싸움이었다. 하지만 이미 재산을 가압류했기 때문에 시간문제일 뿐 큰 걱정은 없었다. 결국 강제집행 절차를 통해 원금에 이자까지 싹 다 받아냈다. 변호사 비용 포함한 소송비용도 받았다. 이렇게 상대방과의 일은 마무리됐다.


하지만 모든 일이 끝난 건 아니다. 대단히 중요한 일이 남아있다. 성공보수를 받아야 한다. 복잡할 거 없다. 그냥 애초 계약대로 하면 된다. 계약서에 퍼센트가 정확하게 적혀 있다. 어렵지 않은 산수였다. 정답은 정해져 있었다. 하지만 의뢰인의 생각은, 늘 그렇듯, 조금 달랐다.




판결 선고 전과 후 태도가 달라지는 고객이 있다. 선고 전에는 이겨만 주면 약속한 것보다 더 주겠다는 말까지 한다. 물론 안 믿는다. 그냥 하는 말이다. 인사말 정도로 받아들이고 이해하면 충분하다. 실제로 정색하고 그럼 확실하게 계약서 고쳐 쓰자고 하면 누구도 응하지 않을 거다. 그래서 말만이라도 고마우니 일단 이기기 위해 함께 최선을 다하고 겸허하게 결과 기다리자고 답하고 만다. 가끔 서운해하는 의뢰인도 있다. 진심을 안 받아준다고. 그런데 그것도 그냥 하는 말이다. 겪어보니 그렇다.


막상 승소하면 표정과 말투가 싹 달라지는 사람도 있다. “솔직히 변호사가 한 게 뭐 있냐. 이길 사건이니까 이겼지. 증거도 내가 찾아서 가져다주고 합의도 내가 하고 변호사는 딱히 한 거 없지 않냐.” 성공보수 줄 때 되면 갑자기 연락 두절되는 경우도 있다. 완전히 다른 사람이 되어 버린다. 인간에 대한 환멸이 생긴다.


이건 돈 문제가 아니다. 사람에 대한 신뢰 문제다. 너무도 당당히 할인을 요구하기도 한다. 사정이 좋지 않으니 조금 깎아달라거나 분할 납부를 부탁하면 어지간하면 반영해준다. 되도록 싸울 필요 없다. 피곤한 게 싫다. 좋은 게 좋은 거니까. 하지만 다짜고짜 자기 마음대로 깎아서 액수까지 정해 통보하는 의뢰인도 있다.




이 사건에서도 그랬다. 막무가내 할인 요구를 거부했다. 그랬더니 만나서 얼굴 보고 이야기하자며 찾아왔다. 그런데 혼자가 아니었다. 처음 보는 사람과 함께 왔다. 누구냐고 물어보니 목사란다. 목사? 교회 목사님? 성직자? 내가 지금 잘못 들은 건가.


외모부터 심상치 않았다. 눈매가 남달랐다. 특유의 분위기를 완벽히 숨기지 못했다. 목사(牧師)가 아니라 전사(戰士) 느낌이었다. 목사 아니었을 거다. 그냥 지어낸 이야기였을 가능성이 크다. 그리고 설령 지금은 목사일지라도, 그 전에는 완전히 다른 일 했을 것 같았다.


면담 시작부터 분위기가 묘했다. 기싸움이 이어졌다. 긴장감이 흘렀다. 팽팽했다. 어느 편에서든 제대로 시작하면 바로 폭발할 듯한 분위기였다. 그런데 우리는 불과 얼마 전까지 한 팀이었다. 하지만 지금은 적이다. 세상일이 다 이렇다.


어렵게 타협점을 찾았다. 말이 좋아 타협이지, 계약서 내용보다 제법 양보했다. 물론 당장 쫓아내고 법대로 할 수도 있었다. 그게 내 스타일이기도 하다. 하지만 직원들의 안전도 생각해야 했다. 재킷 안주머니에 회칼 품고 있을 수도 있었다. 앙심 품으면 옛날 버릇 나올 수도 있다. 조금 양보하더라도 빨리 끝내고 내보내는 게 이익이었다. 자존심 대신 안전을 택했다. 회의실 테이블에 칼 꽂아놓고 대치하는 건 영 모양 좋지 않으니까.


이렇게 변호사는 언제 어떤 일 당할지 모른다. 안전하게 무사히 하루 마치는 것도 복이고 행운이다. 그러려면 맞설 때 맞서고 피할 때 피하는 판단력과 융통성이 필요하다.


직원들에게 위험수당이라도 챙겨줘야 하나보다. 사람이 싫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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