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만 빼고 착한 세상

거리를 두는 사람들

by 손씨

회사 동기가 입사한 지 얼마 안 된 직원에게 분위기를 잡고 있었 다. 혼을 낸다기보다는 따지는 듯한 분위기였다. 신입직원은 고개 를 숙이고 듣고 있었고 뭐 내 부서가 아니니 딱히 신경 쓸 일은 아 니었지만 나름 싹싹해 보이던 친구였는데, 더군다나 이런 조용한 회사에서 혼을 내는 일은 드문 일이었기에 궁금함이 더했다. 마침 그 동기가 커피나 한잔하자는 말에, 옥상에 올라가 아까는 무슨 일 이었냐 물었다.


“야. 아까 무슨 일이야. 왜 분위기를 잡고 그래 신입에게”

“아니. 매번 인사를 안 하고 그냥 가잖아”

“인사? 네가 못 들은 건 아니고?”

“아니라니까 매번 그냥 가. 어제도 그냥 가길래 오늘은 한마디 했지.”

“그래? 먼저 퇴근하는 게 미안해서 그런 게 아닐까?”

“야 내 성격 몰라? 6시 땡 하면 바로 가라고 했지. 됐고 다음부턴 잘하겠지.”

“그래……. 그러겠지.”


사회에 첫발을 내딛는 신입 사원에게 직장 선배로서 그 정도 주 의는 줄 수 있다고 생각했다. 오지랖인 것은 알지만, 왜 인사를 안 128 129 하고 그냥 갔는지는 이해는 가지 않았다.


평소에는 야근하지 않지만, 월말이면 하루 정도 야근을 한다. 거 래처마다 수익을 정산해 메일을 보내야기 때문에 월말이 찾아오면 온 신경을 쏟아부어야 했다. 정산 숫자가 1원이라도 틀리면 그 원 인을 찾아내서 처음부터 다시 계산해야 했기에. 가장 민감한 시간 이다.


그날이 그 월말이었다. 9시가 되자 직원들은 거의 다 퇴근하고, 저 멀리 타부서의 동기와 신입만이 남아있었다. 10시가 다가오자 동기 놈도 퇴근하고, 그 신입직원과 나만 남았다. 끝과 끝, 서로 있다는 의식만 할 뿐 대화도 한번 나눠 본 적이 없었으니, 그때 굳 이 “언제 퇴근하세요?”라든지 “오늘은 늦네요.”라는 말도 하지 않 았다. 그저 빨리 끝내고 집에 가고 싶은 마음뿐이었다.


얼마나 지났을까 끝자리에서 의자 집어넣는 소리가 들리더니 조 용히 나가는 소리가 들렸다. 오, 역시나 동기의 말이 맞아떨어진 것이다. 아무리 멀리 떨어져 있다고 해도 들어간단 인사 정도는 할 수 있지 않을까? ‘역시 예의가 없는 사람이구나’라고 속으로 되뇌었 다. 이제 나도 컴퓨터를 끄고 옷을 챙겨 문을 나섰다. 엘리베이터 를 기다리며 빨리 들어가서 따뜻한 물에 몸을 녹이고 싶다는 생각 만 가득했다. 엘리베이터 문이 열렸고, “팀장님” 하며 인사하는 신 입 사원 손에는 커피가 들려있었다.



찬바람이 무색할 정도로 손에 쥐고 있는 커피는 따뜻했다, 커피 를 덮고 있는 리드 구멍으로 끊임없이 김이 새어 나왔다. 난 택시 를 잡는 방향으로 같이 걸으며 물었다.


“오늘은 왜 야근하셨어요? 보통 신입 사원은 야근 안 시키는데.”

“아~ 제가 전임자에게 인수인계를 다 못 받아서 부탁드린 거예 요. 마감 업무가 어려워서.”

“일이 많이 어렵죠? 저도 처음엔 뭐가 뭔지 하나도 모르겠더라고 요.”

“뭐 항상 혼나죠, 그런데 김 팀장님이 너무 잘 알려주셔서 앞날 이 걱정되진 않아요.”

“김 팀장 그놈이 많이 괴롭혀요? 특전사 출신이라 선후배 예의 범절에 좀 민감한 게 있어요. 그것만 조심하면 정말 좋은 사람이에 요.”

“아니에요! 정말 잘해주세요. 혼난 적 딱 한 번밖에 없어요.”

“아~ 맞아 그때 왜 혼나신 거예요?”

“다용도실에서요? 보셨어요? 인사 안 했다고 혼났어요.”

“일부러 안 하신 거예요?”

“네~ 뭔가 다들 일에 집중하시고 바쁜데, 제가 그 흐름을 깨고 싶지 않았거든요. 인사가 방해될 것 같아서……. 그래서 눈치껏 슬그머니 빠져나간다는 것이…….”

“아……. 그래서…….”


오래전 일인데 아직도 그 일이 기억에 남는다. 그 신입사원은 나 름 배려를 한 것이다. 회사 생활을 하다 보면 간혹 내가 너무 미성 숙하다는 걸 느끼고, 더해 내 옹졸한 생각에 수치심을 느끼기도 한 다. 나 빼고 다들 너무 어른스러워서, 난 아직 철없는 어린애 같아 서, 부끄러울 때가 한두 번이 아니다. 그래서 늘 배우게 된다. 윗 사람에게는 처세를, 나보다 아랫사람에게는 배려를.

돌이켜보면 가장 힘들었지만 나 자신을 가장 많이 변화시킨 곳 도 회사다. 그건 부인할 수 없다. 오늘도 그 친구에게 수업을 받았 으니 수업료로 지갑에서 만 원짜리 몇 장을 꺼내, 오늘 커피값과 함께 택시 타고 가라는 핑계로 찔러 넣어주고는 뒤돌아 가는데, 내 어린 마음이 창피했다.

작가의 이전글지금 내 모습이 마음에 들지 않는다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