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앞이라 더 아팠겠지

거리를 두는 사람들

by 손씨

아버지는 내가 어릴 적부터 넘어지면 일으켜 세우질 않으셨다. 늘 “혼자 일어나봐”라고 하셨는데. 그 말투가 냉정하기보다는 다 정하게 “혼자 일어나봐~” 이런 뉘앙스였다. 언제부터였는지는 모 르지만, 내 어릴 적 기억에는 그래서 그런지 난 넘어져도 울지 않 고 늘 혼자 털고 일어났었다.


그날은 크리스마스이브 전날이었다. 여자친구와 나는 크리스마 스날을 조금 특별한 곳에서 보내기 위해, 겨울 제주도여행을 떠났 다. 공항에 내리자마자 찬바람이 거세게 우릴 맞이했다. 서둘러 목도리를 하고 숙소로 향하는데, 해질 즈음 출발한 탓인지 밖은 어 두웠다. 택시에서 내려 숙소까지 걸어가는데도 바닥에 얼음이 얼 어 아주 미끄러웠다. 여자친구는 신발 때문인지 자꾸 미끄러져 내 가 여자친구의 캐리어와 가방을 들고 걸었다. 숙소에 들어와 일단 몸부터 녹이자고 해서 씻고 나왔는데, 침대에 앉은 여자친구의 표 정이 좋지 않았다. 그렇다. 무언가에 기분이 상한 것이다.


가까이 가 바닥에 앉아 토라진 여자친구를 올려다보며 왜 화가 났는지 말해보라고 했다. 이유인즉, 자기가 넘어졌을 때 바로 달 려오지도 않았고, 크게 신경 쓰는 것 같지도 않았다는 것이다. 오 빠는 말로만 “괜찮아? 다쳤니? 일어나~”라고만 하고 큰 행동을 취 하지 않아 그것이 섭섭했단 것이다.


그러고 보니 내가 다치거나, 문지방에 발을 찍히거나 할 때는 여 자친구가 달려와서 세심히 살펴주던 모습이 떠올랐다. 즉, 그런 관심을 원했기에 그렇게 행동했던 것이다. 맞다. 사람들은 내가 원하는 모습을 상대에게 보여준다. 그간 여자친구의 행동을 떠올 려보니, 행동으로 나에게 참 많은 말을 하고 있었던 걸 알게 됐다. 해서 “미안해! 다음부터는 신경 쓸게”라고 말하고, “어디 다쳤는 지 보자. 약 발라야지”라며 무릎을 다정하게 살펴보자, 여자친구 의 표정은 아직 토라져 있지만, 콧구멍과 입꼬리가 씰룩이던 게 보였다.


그때 느낀 것은 사람이 맞춰간다는 것이 이런 거구나. 내가 받 은 교육 때문에 무의식적으로 행해지던 행동에 상처받을 수도 있 구나. 앞으로 얼마나 더 어려운 일에 봉착하게 될까? 라는 걱정과 함께. 하지만 사랑하기에 이 모든 걸 극복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 다. 맞춰간다. 사랑이라면, 거리를 둔다. 가까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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