거리를 두는 사람들
여자친구는 놀이공원을 좋아했다. 나도 놀이공원을 좋아했지만, 놀이공원의 바이킹이나, 롤러코스터 같은 기구를 타는 것은, 당신은 이제 이승을 떠나 저승으로 갈 테니 안전바 확인해주시고 핸드폰이나 떨어질 물건을 현생에 맡기라는 것과 같다. 마치 노잣돈과 함께 묻는 것과 말이다. 그 당시 우리는 연애를 한 지 1년이나 되었는데, 놀이공원을 한 번도 가보지 않아서 에버랜드로 향했다. 놀이공원에는 사람들이 역시 많았다. 거의 다 우리 같은 커플이거나 학생, 가족들이 대부분이었다.
한 1시간쯤 놀았을까? 다 나았다고 생각했던 족저근막염이 재발해서 발바닥이 아파와 걷는 게 힘들어졌다. 쩔뚝이며 걸으니 여자친구가 말했다.
“오빠 어디 아파?”
“아니 괜찮아. 별거 아니야!”
“발 아파? 아프면, 그만 놀까?”
“아니 온 지 얼마나 됐다고, 더 놀아야지 괜찮아. 신경 쓰지 마.”
여자친구는 신통치 않게 알겠다고 말해 놓고는 힐끔힐끔 내 다리를 보며 신경 쓰는 게 보였다.
“그럼 오빠, 저기에서 좀 쉬다 가자. 내가 발 좀 주물러 줄게”
“사람들이 이렇게 많은데 뭘 주물러. 쉬기는 하는데 주물러 주진 마.”
“알았어. 그럼 쉬기만 하자.”
적당한 벤치를 찾아 앉았는데, 눈앞에는 색이 알록달록한 튤립이 무성하게 피어있었다. 우리가 앉은 의자는 높이가 낮았고, 의도해서 만들어놓았는지 등받이가 뒤로 약간 젖혀져 있었다. 그것 때문에 눈높이가 낮아져, 마치 튤립 나라에 온 것처럼 온 세상이 꽃밭처럼 보였다. 작은 탄성이 튀어나올 뻔했다. 그때 여자친구가 말했다.
“오빠, 튤립 진짜 예쁘다. 여긴 사람들도 안 다니니까 내가 발 좀 봐줄게.”
“뭘 자꾸 본대. 냄새나는 발을 왜 자꾸 본대. 됐다니까!”
“아니 걱정돼서 그러지. 나 삐지는 거 보고 싶어? 나 집에 간다.”
“하…… 쫌. 사람들이 욕해! 예쁜 여자친구 부려먹는 놈이라 생각할 거 아냐!”
“좀 부려먹으면 어때. 오빠 잘나 보이고 좋지!”
“아 진짜. 사실 나 양말에 구멍 났단 말이야. 어떻게 넌 눈치가 없냐?”
배꼽이 빠져라 깔깔 웃길래 나도 따라 웃었다. “어디 보자. 우리시키”라며, 신발을 벗기더니 발을 주물러줬다. 내가 하지 말라 해도 하지 않을 애가 아닌 걸 알기에, 그대로 발을 맡겼고 여자친구는 발을 주무르며 말했다.
“내가 엄마 아빠 발도 이렇게 주물러주지 않는데, 오빠는 진짜 영광인 줄 알아.”
“그럼 오늘 집에 가서 주물러 드리면 되겠네. 쌤쌤이 해야지 뭐.”
“말을 꼭 그렇게 해야 해? 고마우면 고맙다 하면 되지, 뭔 남자가 자존심이 이렇게 쌔?”
“발 냄새는 마음에 들어?”
“몰라. 다행히 튤립 향기 때문에 묻혔나 봐.”
시시콜콜한 농담을 주고받다 여자친구가 뒤에 했던 말이 아직도 기억에 남는다. 아마 평생 살면서 이 말보다 더 좋은 말을 또 들을 수 있을까 하는 말이었다.
“오빠 난 참 다행이다.”
“뭐가?”
“난 오빠가 첫사랑이잖아. 그런데 1년을 만나보면서 느낀 건, 내 첫사랑이 오빠라서 참 다행이란 생각이 들어. 요즘 이상하게 시간이 빨리 가 나이를 먹을수록 그렇다던데 오빠도 그래? 그래서 하루 한 시간 일분일초가 아깝지 않은 시간이 없어~ 우리가 만약 헤어져도 인정하긴 싫겠지만, 그 소중한 시간이 오빠라서 다행일 거야.”
그렇게 발을 정성스럽게 주물러 주던 여자친구는 2년 후에 바람이 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