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당히 어둠을 맞이하기

거리를 두는 사람들

by 손씨

나는 ‘이 또한 지나가리라’라는 말을 좋아하지 않는다. 저 말의 일화를 잠시 소개하자면, 이스라엘 제2대 왕인 다윗은 어느 날 세공사를 불러 “날 위한 반지를 만들되, 내가 승리에 도취 된 순간 나의 교만함을 일깨우게 하고, 내가 큰 절망에 빠졌을 때 나에게 용기를 줄 수 있는 글귀를 담아라”라고 지시했다. 그 세공사가 반지 위에 새길 문구를 몇 날 며칠을 생각했으나, 도무지 생각나지 않아 다윗왕의 아들인 솔로몬을 찾아가 사정을 말했다. 그때 솔로몬은 반지 세공사에게 이렇게 새기라고 했다.


‘This, too, shall pass away’

‘이것 역시 지나갈 것이다’


힘들 때야 위로가 되는 말이기는 하지만, 기쁠 때는 저 말처럼 사람 기분 초 치는 말이 없다. ‘맞아 언젠가 끝나겠지’ ‘이 행복도 언젠가 지나고, 곧 불행이 오고 말 거야’라는 것처럼.사람을 즐겁지도 슬프지도 못하게 하는 아주 지독한 말이다. 아무래도 ‘솔로몬’은 아버지 ‘다윗’ 왕에게 원한을 품고 있었던 게 아닐까 싶다. 다윗의 정권에 대한 불만으로 말이다.


기쁨도 마찬가지지만, 슬픔을 온전하게 슬픔으로 느끼지 못하는 것 또한 저주란 생각이다. 슬픔과 기쁨은 쌍둥이라 생각한다. 아주 바닥까지 끌어당기는 슬픔은, 새총처럼 결국 날 다시 하늘로 쏘아 올린다.

‘이만큼 슬펐으면 이제 기쁠 차례다’라고 슬픔에 보상을 해준다.


그렇게 쏘아 올려진 나는, 붕~ 뜨며 잠시 행복을 만끽하다 또다시 바닥으로 떨어진다. 애석하지만 그것을 반복하며 사는 게 인생이란 생각이다. ‘앵그리버드처럼’ 끝까지 당겨질수록 우린 더 기쁠 것인데, ‘이 또한 지나가리라’라는 말의 저주에 걸려 슬픔에도 끝까지 당겨지지도 못하고, 그렇다고 높이 쏘아 올려지지도 못하는 무색무취 감정에 빠져 살아가고 있는 것은 아닐까. 마치 마음이 석고처럼 굳어져 울고 싶은데 울지 못하는 어른들처럼 말이다.


슬픔을 두려워하지 않았으면 좋겠다. 늘 말하지만, 불행과 슬픔은 절대 손해 보는 장사가 아니다. 얼마나 중요하면 내가 이렇게 반복적으로 원고에 써넣을까? 그러니 나에게 다가오는 불행을 외면하지 않았으면 좋겠다. 하지만 사람들은 피해버리거나 굴속으로 숨어버리는 방법으로 손해를 보고, 잊어버리는 쪽을 선택한다. 그때 마음이 석고처럼 굳어 간다.

어른은 불행을 담담하게, 태연하게 받아들인다고 자랑스럽게 말하지만, 그건 마음이 고장 나, 제 기능을 다 하지 못하는 것인데, 고장 난 마음을 가지고 자랑스러워하고 있던 것이다. 슬픔과 불행에 당당히 직면해야 한다. 그리고 충분히 괴로워하고, 눈물도 흘려야 할 것이다. 그래야 다가올 기쁨에 밝게 웃을 수 있다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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