거리를 두는 사람들
설날에 만난 조카가 울며불며 떼를 썼다. 이유인즉 순천에 있는 ‘정글짐’을 데려가기로 했다가, 바로 집이 있는 여수로 간다고 했기 때문이다. 그 ‘정글짐’이라는 곳은 어린애들에겐 천국(?) 같은 곳인데 실내가 작은 놀이동산처럼 꾸며져 있고, 특히 조카가 좋아하는 ‘트램폴린’과 ‘기차’가 있어서 그걸 타고 노는 것을 좋아했다. 그런 그곳을 누나는 데려가겠다고 약속했었나 보다. 아마도 조카가 가기 싫어하는 큰집에 데려가려다 보니 정글짐을 미끼로 홀린 것 같았다. 결론은, 조카는 누나에게 속았고, 그 배신감에 부들부들 치를 떨고 있었다. 그 모습에서 예전 내 어릴 적 모습이 떠올랐다.
우리 집은 대대로 강아지 이름이 ‘메리’로 통용됐었다. 나에겐 ‘메리 2세’가 있었는데, 검은 털이 매력적인 강아지였다. ‘요크셔테리어’와 이름 모를 바둑이 사이에서 태어난 강아지였는데, 정말 영리해서 나랑 노는 데 문제가 없었다. 학교를 다녀오면 나가서 친구들이랑 놀기보단 주로 ‘메리’와 시간을 보냈는데, 그러던 어느 날
하굣길에 언제나 마중을 나오던 메리가 보이질 않았다. 아버지에게 여쭤보니, 잠시 할아버지 집에 보냈다고 했다. 열 밤 자고 일어나면 메리가 올 거라 했지만, 열 밤이 지나도 메리는 오지 않았다.
난 아버지에게 메리를 데려오라며 울며불며 떼를 썼는데, 아버지는 그런 모습이 속상하고 화가 나셨는지 회초리로 날 때리셨다. 그 이후 메리를 입에서 꺼내지도 않고, 잊고 지냈다. 어느덧 난 고등학생이 되었고 어느 날 누나가 몰티즈를 키우겠다며 강아지 한 마리를 데려왔는데, 그런 복슬복슬한 몰티즈를 보고 있자니 문득 메리가 생각났다. 저녁에 조심스레 아버지에게 그때 그 메리는 어떻게 된 거냐 물었는데, 학교에서 돌아오는 나를 마중 나갔다가 차에 치여 떠났다고 했다.
어른들은 아이들에게 거짓말을 잘 한다. 애들은 어차피 내일이면 잊어버린다며, 아이들과의 약속을 너무나 가볍게 여긴다. 난 지금까지 기억하고 있는데 말이다. 그때 솔직히 말해줬다면 마음은 더 힘들었을 테지만 오매불망 기다리는 것보다, 사실을 알고 죽음을 받아들일 수 있게 해 주는 것이 더 옳았다는 생각이 든다. 나에겐 바람이 하나 있다. 그건 내 마지막 순간에 그 어떤 거짓말도 듣지 않는 것이다. 나를 위한다는 선의의 거짓말도 싫다. 마지막 순간까지 거짓말을 듣느니 차라리 “널 미워했지만 그나마 남은 정이 있어서 왔다. 잘 가라”는 말을 듣는 게 더 낫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