거리를 두는 사람들
참 오랜 딜레마다. 사람마다 각자 다 다르고, 그래서 느끼는 것 도 각자 다 다를 텐데, 올바른 위로 방법이 있기는 한 걸까? 보통 힘들어하는 친구가 이러이러해서 힘들다고 하면, “야 넌 나에 비하 면 양반이야 나는 말이지……”라며, 내가 더 힘들었다. 또는 내가 지금 너보다 더 힘든 상황이다. 라며 역으로 하소연을 듣게 된다. 이렇듯 더 나쁜 상황을 일으키며 상대적 위로를 하는 방법은 내 생 각엔 좋은 위로 방법은 아닌 것 같다.
마치 ‘넌 왜 그 정도로 괴로워하냐?’라는 말과 같다. 그 말을 들은 사람은 ‘맞아 난 왜 이 정도로 괴로워하지?’라고 결국 자책감을 느 끼게 된다.
그렇다면 어떤 위로가 좋은 위로일까?
5년 전 참 안 좋은 일이 많이 일어났다, 왜 꼭 안 좋은 일은 겹치 는지. 그래도 난 어른이니 무덤덤하게 별일 아닌 것처럼 받아들이 고 있었다. 몸도 마음도 지치고 지쳐서 더는 버틸 수 없었을 때, 상 사에게 직격탄을 맞았다. “넌 이렇게 해서 일이 진행되겠냐?” 내가 여태 회사를 위해 희생한 것은 모르나 보다. 그리고 그 날이 월요 일이란 사실이 숨이 막혔다. 당장 내일이라도 월차를 쓰고 쉬어야 할 판인데, 오늘 욕먹었다고 바로 월차를 쓰네? 라는 소리를 들을 까 봐 억지로 다음 날도 출근했다. 어찌어찌 금요일까지 버틴 내가 장했다. 술 한 잔 생각나 친구에게 전화를 걸었다.
“야 바쁘냐? 오늘 시간 되냐?”
“오늘? 오늘은 약속 있는데, 왜 뭔 일 있냐?”
“없다. 그럼 내일 술 한잔하자”
“뭔 일 있네. 이놈”
“없다니까. 내일 보자”
“그래 올 거면 빨리 와라”
파주에 사는 친구 우태를 보러 토요일 일찍 출발했다.
친구는 마중을 나와서 기다리고 있었다. 나를 보자마자 일단 갈 곳이 있으니까 자기가 운전한다며, 운전대를 잡고는 파주에 있는 임진각으로 데려갔다. 그때 처음 본 임진각은 아름다웠다. 넓은 초록 언덕에 바람개비들이 가득했고, 바람에 바람개비들이 쉴 새 없이 반짝이며 돌아가고 있었다. 바람을 좋아한다는 허세 가득한 나의 감성을 채우기 충분한 곳이었다. 이게 뭐라고 풍경 하나에 가 슴이 뻥 뚫렸다. 난 친구에게 말했다.
“야. 가슴이 뻥 뚫린다. 좋다 여기”
“그치 예전에 부모님을 모셔왔는데 그렇게 좋아하시더라고”
“우태야 하늘 그네 타자. 저기 놀이공원 있네.”
“누구랑? 너랑 나랑?”
“응 타자 너랑 나랑”
“싫어. 소름 끼치는 소리 하지 마”
“언제까지 남들 눈치 보며 살래. 난 하늘 그네를 타며 자유를 느 껴보고 싶다.”
“그럼 너 혼자 타. 난 구경할게”
“안 돼. 그건 창피해”
“언제까지 남들 눈치 보며 살래.”
그날 우린 언덕 옆에 있는 작은 놀이동산에서 남자 둘이서 하늘 그네를 탔다. 타다 보니 재미가 붙어 바이킹도 탔고, 회오리 감자 까지 먹었다. 또 사진사가 되어서 폼 잡은 날 찍어 주었다. 그날 늦 게까지 곱창에 술을 마시며, 고등학생 때 같이 관악부를 했던 이야 기로 밤새 떠들었다.
그 긴 하루를 보내는 동안 굳이 내 힘든 이야기를 털어놓지는 않 았다. 꺼내지 않으니 굳이 친구도 묻지 않았다. 대신 그날 바람 부 는 임진각 언덕에 털어놓게 해주었다 생각한다. 또 우리가 늘상 나 누던 시시콜콜한 농담으로 잠시 잊으라 일러 주었고, 술잔에 따른 독한 소주로 인생은 원래 쓰다 일러 주었다.
이것이 내가 배운 좋은 위로다.
내가 위로하려 하기보단, 위로가 되는 장소에 함께 있어 주는 일.
웃음 속에 묻어버리는 일. 그런 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