손씨의 일기장
이동진 평론가가 영화<만추>에 이러한 ‘한 줄 평’을 남겼다.
‘결국, 사랑은 시간을 선물하는 일’
어쩜 이렇게 사랑이란 것의 정의를 간결하고
멋지게 내렸을까? 라는 생각이 들더라.
저 말은, '사랑의 깊이를 무엇으로 측정할 수 있을까?'
에 대한 좋은 답이기도 해서.
그렇다면 단순히 오랜 시간을 함께 보내는 걸로 되는
걸까? 아무리 생각해봐도 저 문장의 원자는 그건 아닌 것 같은데...
그래서 난 '시간을 어떻게 선물하는지' 생각해 보았다.
근원적 형태는 물론 몸이야 가까이 있으면 좋겠지만
그러지 못한 상황에서도, 사랑의 '가치를 증명할 수 있어야 한다'고 생각했다.
예전 이야기를 잠시 하자면, 내가 짝사랑했던 여자친구와 사람만큼
낙서도 가득한 대학로 어느 한 술집에서 시간을 보낸 적이 있었다.
취기가 오를 때쯤 그 친구가 한쪽 벽면을 가만히 응시하더니,
'이 낙서 참 마음에 든다.' 라며, 검지로 겨우 벽을 짚으며 나에게 읽어준 낙서가 있다.
'같이 있고 싶다면 욕심'
'같이 있다 생각한다면 사랑'
유치했지만, 난 그 낙서가 좋아서 사진을 찍어두었다.
당시에는 그 낙서를 보고 첫 번째 줄은 내 마음 같았고,
두 번째 줄에선 물음표가 남았지만,
지금은 전부 이해가 된다.
건강한 사랑에 빠진 사람들은 이렇다.
멋진 풍경을 보면 그 사람 생각이 나고,
또는 맛있는 것을 먹을 때도 그렇고
잘 어울릴만한 옷을 봤을 때도 그렇다.
내 주위 모든 것에, 그 사람이 대입될 때
또 그 반응이 너무 궁금해지는 마음.
더해 늘 함께 하는 듯한 꿈꾸는 기분.
이렇듯 떨어져 있어도 상대를 위하는 마음이
'시간을 선물하는 일'이 아닐까 싶다.
사람들은 ‘몸이 멀어지면 마음도 멀어진다.’고들 한다.
그 말을 공식처럼 여기기도 하고
마치 절대 극복하지 못할 영역처럼.
그래서 어스레 이별을 준비하기도 하는데
난 그 말에 평론가의 말을 빌려 반발해 보고 싶었다.
고작 3년이 가장 긴 연애였던,
내가 할 만한 말은 아니지만
'유' 경험자이긴 하니까...
결론은 떨어질 인연들이 멀어지지 않았으면 좋겠다.
그렇지 않은 관계도 있고, 떨어져 있어도 마음은 전할 방법은 있으니까.
지레 겁먹지도 말고, 사람이 초월하지 못하는 건 시간뿐이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