거리를 두는 사람들
계륵鷄肋 이다. SNS를 보면 남들은 이리 친구도 많고, 여행도
잘 다니고, 잘들 사는데……, 침대에 누워 핸드폰만 보고 있으면
갑자기 우울감이 밀려온다. 나이도 많아 보이는데 저 사람 주변에
는 친구들도 많고, 연예인도 아닌데 생일파티는 성대하게 여는 걸
보면, 내가 생각하는 ‘양보단 질’이란 인간관계의 개념이란 게 혹
내 처지를 합리화하려는 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든다.
이렇게 상대적 박탈감을 선물하는 SNS를 지워 버리는 것이 내
정신건강에 좋지 않을까 싶은데, 막상 이 SNS마저 없으면 우울해
질까 봐, 정말 세상과 단절될까 봐, 지우지도 못하겠다.
정말 아이러니하게도 보기 싫은 걸 보면서 스스로가 고통받는
것이다.
직장을 관둔 후 서울 생활을 잠시 정리하고 시골로 내려왔다. 어
떤 운동이든 좀 배워볼까 하다, 누나가 “너 아직도 물에 못 뜨냐?
수영 한번 배워봐 가까운 데 수영장 있잖아.”라고 해서 ‘그래 이참
에 수영이나 배워보자. 이럴 때 아니면 언제 배우겠나?’ 싶은 생각
이 들었다. 서울에서는 수영장도 멀거니와 체력소모가 크기 때문
에 직장을 다니면서 수영을 한다는 게 엄두가 나지 않았다. 마침
쉬고 있으니 ‘이때가 기회다. 아직 수영을 못한다는 것은 수치다!’
라는 생각에 수영을 배우기로 했다.
오전 10시 반에 초급반 수업이 있다고 해서 미리 도착해 몸을 풀
고 있었다. 이른 시간이라 그런지 사람이 별로 없었다.
혼자 발만 담그고 멀뚱멀뚱 기다리고 있으니, 코치 선생님이 다
가오셔서 “수영은 한 번도 안 해보셨어요?”라고 물었다. “그냥 계
곡이나, 머리까지는 안 잠기는 물 높이의 수영장에서는 해봤는데,
아직 깊은 물에 떠 있는 건 못해서요.”라고 대답하니 “아 그러시구
나. 그럼 잠시 한번 들어와 보세요. 제가 기본적인 것만 수업 전에
미리 알려드릴게요.”라고 하셨다. 선생님은 물에 첨벙하고 들어가
서는 너무 평온한 표정으로 물속에서 둥실둥실 떠 있었다.
“깊은 물에서 떠 있으려면 팔과 다리를 숫자 8을 그린다는 생각
으로 계속 움직여야 해요. 그래서 체력이 많이 필요하죠.”
•••
많이들 ‘보이지 않는 노력’을 백조의 발에 비유하곤 한다. 백조
는, 고귀하고 우아한 모습으로 물 위를 미끄러지듯 떠다니는 모습
과는 달리, 물속에서는 물에 떠 있기 위해서 필사적으로 발을 움직
여야만 한다. 사람들은 SNS에 그런 백조와 같은 사람들의 겉모습
만 보고서는 나는 불행하다 착각하고 사는 것 같다. 지금까지 살아
오면서 깨달은 사실 하나는 완벽한 것은 없다는 것이다. 사람마다
각자의 이유로 결핍이 존재하기 때문에. SNS를 놓지 못하는 사람
들의 마음 한편에는 인정받고 싶은 욕구가 있고, 그 통로가 SNS
가 아닐까 싶다.
정신과 의사들은 그 욕구를 건강한 욕구라고 칭한다. 인정받고 싶은
것은 자연스러운 욕구이기 때문에, 나 또한 SNS가 나쁘다고는
생각하진 않지만, 단 한 가지 기억해야 할 것은 남의 행복으로 인해
상대적 박탈감을 느낄 필요가 없고, 내 행복으로 남에게 상대적
박탈감을 주려고 해서는 안 된다는 것이다.
모든 과하면 하지 않는 것만 못하다. 어디까지나 내 표현의 자유.
딱 거기까지 말이다. 가끔 백조처럼 아름답고 행복해 보이던
연예인이 자살하는 일들이 발생한다. 그들 역시 SNS에서는 누구보다
행복해 보였는데 말이다.
선생님은 말했다 “물에 한 번 들어와 보세요. 떠 있는 것 해볼 수
있겠어요? 생각보다 간단해요.” 나는 물에 들어가 쉴 새 없이 팔과
다리를 저었다. 락스 냄새가 코를 찌르고, 코와 입에는 물이 들어
와서 정신이 없었다. 당황했지만 필사적으로 다리를 차올리니 머
리만 둥둥 뜨게 됐다. 그때 선생님이 말했다.
“맞아요! 아주 잘 하시네요. 좋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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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서 <거리를 두는 사람들> 중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