거리를 두는 사람들
출판사 관계자와 이번에 출간될 책에 관해서 이야기를 나눴다. 표지는 어떤 디자인으로 하면 좋을지 또는 속지는 어떤 거로 쓸지. 나는 속지를 재생지로 해서 종이 단가를 낮추고 겉표지에 투자해 서 소장가치 있게 양장본으로 만드는 것이 어떠냐는 제안을 했다. 그랬더니 웃으며 말하길 “재생지가 일반 종이보다 단가가 더 비싸 요”라고 했다. 이유는 일반 종이보다 시장규모가 작고 또 일반 종 이론 표현할 수 없는 재생지만이 가지고 있는 누르스름한 색감과 거친 질감을 위해서는 여러 가지 공정을 거치기 때문이란다.
일반적인 상식으로 재생지라 치면, 재활용된 제품이라 값어치 가 더 떨어져 값이 쌀 것으로 생각하는데, 이 출판 쪽 세계는 달랐다.
연간 쏟아져 나오는 신간은 평균 6만 권이라 한다. 사람들 눈에 는 서점의 신간 코너에 쌓여있는 책이 전부지만, 서점에 배치되지 않은 신간들도 보이지 않는 창고에서 온라인으로 주문되길 기다리 고 있다. 그리고 출판시장 쪽을 좀 더 자세히 들여다보면 책을 처 음 인쇄할 때 최소수량이란 것이 있다. 조금씩 인쇄를 해서 그때그 때 출고를 하면 좋겠지만, 그러자면 인쇄 단가가 올라가서 책값이 엄청 비싸질 수밖에 없다. 해서 대략 3천에서 5천 부를 인쇄한다. (3천 부나 5천 부나 가격 차이가 크게 나지 않는다. 그래서 보통 3 천 부나 5천 부 단위로 찍어 1쇄라 칭한다) 그 출간되는 책들이 잘 팔리면 좋겠지만, 불행히도 오래도록 잘 팔리지 않는다면 그 많은 책은 매달 한 권당 27원 정도 보관료를 내며 창고에 쌓여 독자를 기다린다.
그렇게 한 몇 년, 재고로 쌓여있다가 더 팔리지 않아 판매 수익 보다 보관료가 더 나간다면 출판사에선 “작가님 남은 재고를 처리 하는 것이 어떨까요?”라고 최후의 통첩을 보낸다. 그러면 작가는 멋쩍은 듯 “그렇겠죠?”라며 눈물을 머금고 승낙을 하게 되고, 창고 의 책들은 이제 보관 창고를 떠나 종이 공장으로 보내지고 분쇄기 에 갈려 비싼 재생지로 재탄생하게 된다. 그런 재생지에는 수많은 출판사와 작가들의 노력이 담겨 있다. 그 어쩔 수 없었던 애환도 함께 말이다. 그러니 당연히 비쌀 수밖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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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래도록 읽지 않던 책 중에 재생지로 만들어진 책을 찾아 꺼냈 다. 내가 몰랐던 사실을 알고 나니 재생지로 만들어진 책을 읽는 지금, 종이의 질감이나 이 종이의 누르스름한 오래된 색감이 사연 을 품은 듯하여 글이 더 애틋하게 느껴진다. 나이를 먹는다는 것 도 그렇다. 회사를 전전하며 살아왔던 내가 그 재생지가 아닐까 싶 102 103 다. 어느 곳에서는 필요 없어졌고 또 어느 곳에서는 자발적으로 떠 났지만 결국, 나이를 먹을수록 머물 곳이 없어지는 재고 같은 내 가. 이런 혼자만의 상상으로 위로받는 꼴이 꼭 재생지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