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무 살 애늙은이 친구들

거리를 두는 사람들

by 손씨

서울에서 하던 사업이 망해 모든 걸 다 접고 시골로 내려갔을 때, 너무 큰 빚을 졌기에 그때는 쉴 틈 없이 광양에 있는 제철소 공 단에서 일해만 했었다, 부모님도 이제 서울에서 고생하는 것보다 고향에서 일하며 평범한 삶을 살길 바라셨다. 공장에서 일하는 삶 은 나쁘진 않았다. 월급도 잘 나오고 내가 하는 일만 잘 한다면 문 제 될 게 없었다. 3조 4교대 근무였고 출퇴근은 공단에서 제공하는 버스를 이용했는데, 순천에서 광양으로 내려가는 출근길에 내겐 안 좋은 기억이 있는 육교 밑을 지났다.


내가 스무 살 때, 친구 두 명을 그 육교 밑 버스정류장 내 바로 앞 에서 차 사고로 떠나보냈다. 당시에는 당연히 수술을 받으면 다시 일어나서 “야 죽다 살았다”라며 농담을 던질 것으로 생각했는데, 의사 선생님이 심폐소생술 끝에 사망하였다고 말하니 이게 말이나 되는 일인지 도무지 믿을 수가 없었다. 퍼렇게 멍들어 있는 발을 만지면서 일어나라고 아무리 말해도 미동도 없는 친구 둘을 두고 같이 있던 친구들과 얼마나 울었는지 모른다. 그렇게 친구 둘을 아 무런 준비도 없이 인생의 출발점에서 잃었다.


겨울 새벽 출근 버스는 언제나 쓸쓸하다. 멍하니 차 창밖을 보 며 일터로 향했다. 순천에서 광양을 넘어가는 중 역시나 육교 밑을 지나는데, 대학생으로 보이는 남자 둘이 버스정류장에 서 있었다. 그 느낌이 꼭 먼저 떠나보냈던 친구들을 보는 것 같았다. 신호에 걸려 버스 안에서 그들을 보고 있는데, 만약 내 친구들이 살아있었 다면 빚을 지고 시골로 내려온 나에게 뭐라고 말했을지 궁금했다. 아마도 친구들은 내게 “그깟 돈 때문에 풀이 죽어있냐? 아직 젊은 데 뭐하냐!” “너 하고 싶은 일 하면서 멋지게 살아”라고 했을 것이 다. 분명 그렇게 말했을 것이다. 그날 이후 새벽 출근길 창문에 기대어 졸다가도 육교 밑을 지날 때면 그런 잔소리를 들었다.


인생의 잔혹한 사실 하나는 우리가 내일 당장 사고로 죽더라도 그건 세상의 반칙이 아니다. 지금 이 순간에도 사고로 또는 병으로 많은 사람이 죽는다. 이건 외면하고 싶은 사실 중 하나다. 하지만 난 그때 잠시 잊고 살았지만, 먼저 떠난 스무 살에 머물러 있는 친 구들이 알려주었다.


“우리 삶이 언제 끝날지 모르니 지금 이렇게 시간이 흘러가는 데 로 날 놔두면 안 된다.”


난 그 이후 다시 서울로 올라가 첫 책을 쓰고 작가가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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