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궁근종 수술D-1
오전부터 사촌 동생들이 데려다준 덕분에 편하게 병원에 도착했다. 동생들은 가고, 간병을 해줄 언니와 둘이 병실로 들어왔다.
아직 수술 전이라 링겔도 꼽지 않고 환복후, 주구장창 기다리고 있다. 5인실인데도 병실이라 그런지 조용하다. 병실 안 공기가 더워서 자꾸만 땀이 삐질 나오고, 답답하다.
병원에 입원해 있으니, 아빠가 생각난다. 그 당시는 병실이 없어서, 아빠와 나는 1인실에 단 둘이 있었다. 평소에도 살갑기는 커녕 데면데면한 사이였기에 병실 안 공기는 어색하기 짝이 없었다. 아빠는 남동생이 언제오냐고 계속 물으셨다.
아픈 몸으로도 자꾸만 씻고 싶어하는 아빠는 얼른 머리도 감고 면도도 하고 싶어했다. 곧 나랑 교대해줄 남동생이 오는데도, 그 사이를 기다리지 못해 혼자 씻으러 가셨다.
아픈 환자인데, 나는 그런 아빠에게 너무도 불친절한 간병인 이었다. 얼마 뒤 아빠가 돌아가신다는 것을 조금이라도 짐작 했더라면 절대 그러지 않았을텐데… 당수치가 높아 식단 조절을 해야 하는데도 아빠는 병원밥이 영 입에 안 맞는지, 평소에도 좋아하던 편의점 삼각김밥을 사달라고 했다. 나는 하는수 없이 사다 주면서도 온갖 짜증을 다 냈다. 간호사들은 당 수치가 자꾸 올라가니 뭘 드신거 아니냐고 물었고, 아빠는 아니라고 했가. 나는 뒤에서 조마조마한 마음을 숨기고 입을 다물고 있었다.
아빠는 얼마 뒤 서울 병원에 수술을 받으러 가셨는데, 그때 우리 삼형제는 그 전날 소고기를 사 드리고, 기차역까지 마중했다. 그게 마지막이 되었다. 나중에 엄마에게 들은 말로, 아빠는 큰 수술로 서울 병원에 가는데, 셋 중 어느 하나 용돈을 챙겨주지 않아 섭섭하다고 했다고 한다.
금전적으로 어려움이 없는 아빠기에 우리는 병원에 가기 전에 돈을 챙겨 드려야 한다는 생각을 하지 못 했다. 나중에야 후회했다.
병원에 오기 전, 나는 쓰레기통을 비우고, 분리수거도 하고, 집을 청소 했다. 그럴리는 없지만, 혹시나 하는 마음에 집을 정리해 두는게 좋겠다고 생각했다.
사촌 동생들은 봉투에 많은 돈을 넣어서 줬다. 여러모로 민폐를 끼치는 것 같아 미안했다. 그러면서, 나도 가까운 누군가가 병원에 수술 받으러 가게 되면 병문안 때가 아니라, 입원 전에 돈을 줘야겠다는 생각을 했다.
그 다음을 모르기 때문이다.
병원에 수술을 기다리며 있으니, 자꾸 아빠 생각이 나서 눈물이 난다. 있을때나 잘 할 것이지…
항생제 반응 검사를 했는데, 피부가 붉게 변해서 반대쪽 팔에 한번 더 했다. 꽤나 아픈데 두번이나 하니, 괴로웠다. 다행히 두번째 반응은 괜찮았다. 이어서 제모를 했다.
접수대 옆자리 여자는 제모를 미리 하고 왔다고 한다. 이럴줄 알았으면 나도 하고 올 것을, 침대에 누워 제모를 당하면서 후회했다.
멍하니 병원 천장을 올려다 보면서, 간호사들이야 말로극한 직업이구나 생각했다. 소명이 없다면, 참 고되고 어렵기만 한 일인것 같다.
나는 따끔한 항생제 검사를 참아내고, 내일 수술을 위한 제모의 수치도 견뎌내면서, 어쩐지 진짜 어른에 가까워진 기분을 느꼈다.
앞으로 점점 더 병원에 가야 할 일도 간병인이 되야 할 일도 많아 지겠지. 그토록 싫어하는 병원인데 말이다.
인생은 참 뜻때로 되는게 없다. 나이가 들수록 더 그러하다. 그럼에도 인생에 내 뜻과 달리 일어나는 모든 일에 why 가 아닌 yes로 답하며 순응해야 한다. 내일의 고통은 또 어떨까? 미리 상상해 봤자 도움이 일도 안 될 일이니, 그만 생각하기로 한다.
내일 고통은 내일 감당하면 그뿐이다. 오늘 밤은 잘 자두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