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올 것이 오고야 말았다.

자궁근종 개복수술 D-2

by 손여는

기필코 그날이 왔다.

작년 12월, 하혈로 인해 찾아간 산부인과에서 어디서도 들어본 적 없는 크기의 근종을 확인하고, 서울 병원을 전전하고, 광주 대학병원에서 수술 날짜를 확인한 이후, 장장 10개월이 흘렀다. 다행히 하혈은 멈췄지만,빈혈은 길바닥에서 쓰러져도 이상하지 않을 정도로 심각해져서, 한달 동안 집중적으로 주 2회 철분 주사를 맞으러 병원에 다녔다. 그 이후 철분제를 매일 2알씩 꾸준히 복용해왔다. 10개월 동안 그렇게 좋아하던 커피를 완전히 끊었다. 그래도 한껏 부풀어 오른 배는 작아질 기미가 없었다. 식습관 개선도 주춤했고, 운동도 거의 하지 못한 탓일까? 사실 수술 대기 기간이 꽤나 길었기에 그 안에 건강한 생활 습관을 유지하고, 커피도 완전히 끊으면 근종이 자연적으로 줄어들지 않을까 하는 기대를 했었다. 결론은 커피 외에 다른 큰 변화를 일구지 못한 탓인지, 배는 여전했다.

결국, 어떤 유의미한 개선 없이, 개복 수술 날이 다가오고야 말았다. 병원에서 안내해 준대로 짐을 쌌다.

거울 앞에 서서 배를 이리저리 비춰봤다. 수술 후, 비교를 위해 좌,우, 정면 사진을 찍어뒀다. 평소 옷으로 가리고 다닐 수 있었던 것이 믿기지 않을 만큼, 만삭의 크기다. 다시 정면를 비춰보며, 말끔하게 불룩 솟은 배를 물끄러미 봤다. 이제 이틀뒤면, 가슴 아래부터 정중앙으로 길게 배를 가르게 되겠지. 그리고 메스가 지나간 그 길을 따라, 길고 흉한 흉터가 생기겠지. 다시는 말끔한 배를 내놓지 못할 것이다. 대중 목욕탕도 가기 힘들테지… 수술 당시는 전신마취 탓에 아무것도 못 느끼겠지만, 그 이후 찾아올 고통이 두렵다. 수술실에 들어가서 마취를 하기 전까지의 과정도 무섭다. 다른 여자들은 배를 가르고 아기를 낳지만, 나는 그 고통을 겪고도 세상에 내 놓을 것이 겨우 근종 뿐이라는 사실이 허탈하다. 무섭고, 두렵고, 내가 어쩌다가 이렇게 됐을까 싶지만, 이제는 정말 어쩔수가 없다. 피할수 없는 상황이라면 좋은 점들을 떠올려 보는게 도움이 될 것 같다. 어마무시한 크기의 근종을 드러내고 나면, 어떻게 해도 가려지지 않던 배가 홀쭉해 질 것이고, 더이상 옷을 살 때, 배를 가리는 것을 목표로 하지 않아도 된다. 거대근종이 방광을 눌러대는 통에 수시로 화장실을 들락거려야 했던 것도 줄어들겠지. 무거운 배 탓에 아프던 허리도, 근종이 피를 족족, 뺏어가는 바람에 피가 모자라 극심했던 빈혈도 사라질 것이다. 그리고 고소하고 시원한 아이스 카페 라떼도 한 잔 정도는 마시는 호사를 누릴 수 있을 것이다. 넘어진 김에 쉬어 간다고, 근종 수술 덕분에 고단했던 회사 업무도 한 달 이상 병가를 내게 됐다. 아침에는 괜시리 가슴이 뛰고, 입꼬리가 자꾸만 아래로 쳐졌는데, 밤이 되니 조금 안정이 된다. 이제 좋아질 일만 생각하고 싶다. 가벼워지고, 홀가분해지고, 건강해 질 일만 생각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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