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아이는 모든 것이 빠른 편이었다.
옹알이를 시작한 것도, 뒤집는 것도, 붙잡고 서는 것도, 곤지곤지잼잼을 따라하는 것도, 그외 소소한 많은 것들을 빠르게 했다.
이 무렵엔 이 하나 더 난 것도 이야깃거리가 될 때라 뭔가 굉장히 우쭐한 느낌으로 아이의 발달을 기록했다.
두돌이 다가올 무렵 아이의 언어가 늘지 않음을 느꼈다. 하지만 영유아검진에선 별로 문제 삼지 않는 수준이었는지, 소아과 의사는 세돌까지 해야할 언어수준을 알려준 후 돌려보냈다.
아이는 기관에 보내기 전이어서 종일 나와 붙어지냈는데, 그러다보니 또래친구들이 없었다. 애미가 그닥 사교적이지 못한 탓에 또래아이 키우는 엄마들과 친분을 만들지 못했기 때문이기도 했다.
그렇게 시간이 흘렀고 30개월 무렵, 여전히 단어 수준에 머물러 있는 아이가 답답했다. 고민하다 방문한 발달센터에선 아이의 표현언어가 1년쯤 늦다고 진단했고, 다행히 이해력은 좋아서 조금만 자극을 주면 터질거라고 했다. 그리고 그 원인은 엄마의 육아방식 때문이라고 했다. 조심스럽게 말씀하셨지만, 결국 수다스럽지 않은 엄마, 뭐든 알아서 척척 해주는 엄마, 티비와 곧잘 타협한 엄마 등등이 원인이었다. 물론 그런 엄마 아래에서도 수다쟁이 자식이 나오지만, 내 아이는 슬프게도 그런 아이가 아니었다.
그때서야 부랴부랴 어린이집을 알아봤다. 또래친구들 사이에서 좋은 자극을 받는 걸 추천받았기 때문에 망설일 시간이 없었다. 어린이집을 다니면서 아이는 나날이 말이 늘었다. 그런 아이를 보며 반성도 하고 감탄도 하며 6개월을 보냈다. 소아과 의사가 제시한 기준인 36개월 무렵, 단어만 나열하던 아이가 반년만에 문장을 제법 만들었다. 주어+동사로 이루어진 문장 수준은 거뜬히 해냈고, 대학병원에는 안 가도 됐다. 내 아이만 바라보고 있으면 그렇게 기특할 수 없는 순간이었다.
그런데 이즈음 나에겐 또다른 문제가 등장했다. "비교"
그래 언제나 비교가 문제다.
내 아이만 보면 모든 게 최고인 듯 보이지만, 비교를 해보면 여전히 뒤늦었다. 아이 또래애들이 엄마랑 대화란 걸 하고 있는걸 보니 또 그게 그렇게 욕심났다. 내 아이의 문장은 자기가 하고싶은 말을 할 때만 만들어지고 있었다. 딱 거기까지다. 대답은 여전히 단답이었다. 내가 만들어준 말을 따라할 때 빼곤 대답은 단어수준이었던 것이다.
"오늘 간식 뭐 먹었어?"라고 물으면 "식빵이요. 우유"가 아니라 "식빵이랑 우유 먹었어요." 플러스 "오늘 ○○랑 ●●하면서 놀았어"까지 해줬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스멀스멀 올라왔다.
뭔가 대화다운 대화를 나누고 싶은 욕심이 생기자 기특했던 아이가 또다시 한없이 부족해 보였다. 욕심내지말자고 했던 다짐은 온데간데 없고 그저 무서운 얼굴로 다그치는 엄마만 남았다. 눈치가 빤한 아이는 엄마의 부글부글한 마음을 읽었을 것이다. 그런 날은 유독 사랑스러운 표정으로 그러지말라는 듯 파고들었던 걸 보면. 그럼 못이기는 척 안아주고 말았어야 하는데, 정신 못차린 엄마는 원하는 걸 문장으로 정확히 말하라고 엄하게 얘기하곤 했다. 아이는 시키는대로 문장으로 말했지만... 그 말이 몸으로 스미진 못했을 것이다. 그렇게 배운 말이 제것이 될리 없다. 알면서도 나는 늘 모질었다.
말뿐만이 아니다. 배변훈련도 완강히 거부해서 세 돌이 되도록 손놓고 있는 상태였다. 그러다 36개월 끝무렵이 되니 갑작스럽게 스스로 가리기 시작해서 정말 기적같다고 생각했는데, 일주일 정도 완벽하게 대소변을 가리다가 다시 원점으로 돌아가버렸다. 이유는 알 수 없었다. 변기로 달려가다 세게 넘어진 적이 있었는데 그 때문인지, 자꾸 주변에서 쉬 얘기만 하니까 되려 거부반응이 온건지, 도통 알 수 없었지만 아무튼 아이는 다시 기저귀에 집착했다. 36개월을 느긋하게 기다려 줬으면서 더 못 기다릴 것도 없었는데, 고작 일주일 가린 것에 기대가 컸던건지 자꾸만 화가 났었다. 아이에게 화내지 않으려 노력했지만 표정까지 감추진 못했다. 축축한 기저귀를 갈아줄 때 내 표정, 안 봐도 뻔한 실망스러운 표정... 경멸이 안 섞였다면 다행이다.
그런 날에는 도저히 에너지가 없어 잠자리 독서도 자장가도 아무것도 해주지 않았다. 아이에게 내 속상한 마음과 미안한 마음을 동시에 털어놓았고 아이는 그 소리를 자장가삼아 잠들곤 했다. 그러고 나면 이제 고작 37개월 아이에게 '엄마의 힘듦'을 이야기하는 건 괜찮은건지 궁금해졌다. 정말 뭐 하나 쉬운게 없는 초보엄마였다.
늦된 아이를 키우려면 엄마가 흔들리지 말아야 한다. 내 아이만의 속도에 맞춰 든든하게 지켜봐줘야 한다. 내 역할은 격려해주고 안아주는 것뿐. 알게모르게 비교의 시선을 받고 들어왔을 아이, 집에서까지 그러면 안된다는걸 너무 잘 안다. 이건 비단 말과 배변훈련 문제만이 아니다. 아이를 키우며 마주하게 될 모든 과정에서도 마찬가지이다. 힘들었을 아이에게 힘든 말 보태는 엄마는 되고싶지 않았다.
육아초보 엄마는 시작부터 틀려버렸지만, 매일 일기를 쓰며 부끄러운 밤을 보냈다. 그렇게라도 반성하지 않으면 내일도 또 똑같이 무의미한 짜증을 쏟아낼 것 같아서.
나의 욕심이 부끄러운, 그런 밤들이 쌓여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