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 장래희망은 내조의 여왕입니다.

결혼이라는 구실

by 삭정이


경쟁적이고 비인간적이고 비정상적(?)인 공간에서 20대를 오롯이 보내면서 몸도 마음도 알게 모르게 상처 받고 있었지만, 마음의 병이 몸의 병으로 가시화되기까지 사태의 심각성을 느끼지 못했다. 심각성을 느꼈다 한들 뾰족한 수도 없었다. "나 너무 힘들어요!"라고 당당히 외칠 수 있을 정도로 열심히 공부를 하거나 대단한 실적을 낸 것도 아니었고, 내 밑으로 쏟아부은 돈을 생각해도 멈추기엔 주저됐으며, 자식 하나 교수되는 것 보고 싶어할 부모님 얼굴을 떠올려도 쉬이 때려치울 순 없는 노릇이었다.



제 장래희망은 교수입니다.
"

호기롭게 떠들고 다녔던 스무살 새내기는 10년 세월을 보내면서 장래희망을 잃었다. 그리고 무얼 해야 할지 모르겠는 그때, 나는 놀랍게도 결혼이라는 걸 선택했다. 상아탑 세상이 전부인 줄 알고 달려왔던 10년 동안 꿈을 잃었지만, 그 10년 간 나의 고락을 지켜보았던 남자친구와는 결혼을 했다. 하나의 꿈이 접히는 순간에도 덜 힘들었던 건 아마 새로운 꿈 가져볼 법한 상황에 놓였었기 때문이겠지.



결혼은 여러 모로 좋은 구실이 되어주었다.
"


일단 장녀의 결혼이라는 하나의 과업을 해결한 부모님은 나의 장래희망에 크게 관여하지 않는 포지션이 되셨다. 박사를 취득하는 문제도, 교수임용에 도전하는 문제도, 모두 "너희 둘이 알아서 할 문제"가 되어 있었다. 출가외인이 돼 버린건지, 오롯이 독립한 성인으로 대우해주는 건지 알 수 없었지만 뭐라도 상관없었다. 부모님에 대한 묵직한 부채감을 덜어내자 선택은 한결 쉬웠다.



제 장래희망은 일단 내조의 여왕입니다.
"


직장이자 꿈의 장소였던 대학에서 벗어나는 공식적인 구실은 이것이었다. 남편 내조. 멀리 타지로 이직하는 남편 따라 생활권을 옮기는 컨셉으로 잡았다. 물론 완전한 떠남을 위해 마지막 남은 학위 문제까지 깨끗이 포기한다고 알렸다. 아무도 관심 없었겠지만, 그때부터 나의 자유로운 일상이 시작됐다. 남은 몇 개월의 계약 기간 동안 강의하러 학교를 나갈 때도 나는 이제 여기서 잘 보일 필요가 없어~ 밉보라면 밉보라지~ 될 대로 되라지~ 라는 마음으로 대놓고 딴짓을 했다. 수업 준비 외 시간에 내 책상에 앉아서 핫한 여행에세이를 읽고, 수를 놓았다. 나의 근황을 아는 이들이 정말 관두냐고 물어도, 나를 모르는 이들이 논문 안 쓰고 뭐 하냐고 물어도, 나는 괜찮았다. 이미 상처에 빨간 약이 발린 후라 전부 다 괜찮았다.


keyword
매거진의 이전글손맛을 알아버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