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프다는 말이 아파

by 삭정이



가만 보면 어리디 어린 날에도 아프다는 말을 달고 살았다.

딱히 큰 병이 있는 것도 아니었는데도 내 아픔에 유독 예민했던 것 같다. 약간의 건강 염려증을 동반한 섬세한 관찰의 결과물.


내가 골골대는 이미지라는 걸 자각한 건 친척들이 모인 자리에서 막내이모가 한 말 때문이었다.

버스 등받이에 붙어 있는 "이유없이 아프신 분 찾아오라"는 보살집 광고를 보고 내가 떠올랐다는 거다. 이모의 말이 기분 나쁘기보다 먼저 든 생각은 '아프다 소리를 줄여야겠다'였는데, 별로 그러 못했다.




결혼을 하고 아이를 낳고 바쁘게 세월이 흘러가는 동안 내 말의 위력을 깨닫는 순간이 잦았다. 내 말은 곧바로 아이에게 스펀지처럼 흡수되는 걸 목도한 순간부터 고르고 고른 말들을 내뱉으려 노력했다. 내 인생에 누군가를 위해 이렇게 공들여 살아본 적이 없다. 문제는 공들인 세월과 함께 아이가 어느 정도 컸다는 거다.


아이의 성장에 맞춰 인간 대 인간의 대우(?)를 하는 것까지는 좋았는데, 아이 앞에서 "아프다"소리를 고르지 않게 된 것이다.

아프다 소리를 해야 할 상황에서만 사용했던 단어가 하루 중에도 무심결에 습관적으로 툭툭 나오기 시작한 것이다. 마음 속으로 느끼고 말던 단어를 예전의 내가 그랬듯 생각없이 내뱉는 순간이 많아졌다.


"아 오늘 왜이렇게 머리가 아프지"

"아이고 허리야. 허리가 왜이래 아플까"

"손가락이 너무 아픈데"


머리, 허리, 손가락, 목, 어깨, 무릎, 배.... 부위를 나열하기도 민망스럽다. 병원을 갈 정도도 아니고 어떤 경우는 약을 먹을 정도도 아닌 경미한 불편함을 "아프다"라는 말로 내뱉는다.

늘 곁에 있는 아이는 나의 말을 듣고 있다 가만히 대응을 해준다. 때로는 "약 갖다줄까" 때로는 "안마해줄게" 등등

제법 큰 아이의 시원한 안마가 흡족해 부러 아프다 소리를 한 적도 있다. (얼마나 어리석은 엄마인지)



어젯밤 잠들기 전 아이가 한 말이 없었다면 나는 오늘도 구석구석 아픈 데를 나열했을지도 모른다.

자기 전 언제나처럼 아픈(?) 엄마의 허리를 주물러 주던 아이가 말했다.

"엄마 아프지 마. 그 말을 들으면 너무 무섭고 마음이 아파. 예전에 영화에서 죽던 아저씨가 생각난단 말이야."(채널 돌리다 잠시 걸린 화면에서 황정민 배우가 심장박동이 끊어지는 장면을 본 후로 무서워 함)


예전과 다르게 삭신이 쑤시고, 갱년기 전조 증상이 스멀스멀 올라오는 통에 나도 모르게 푸념처럼 내뱉았던 말들이 아이를 무섭게 했다. 엄마를 낫게 해야겠다는 생각으로 아픈 데를 주물러주며 아이는 슬프고 아팠다. 쓰고 보니 참으로 모자란 엄마다.


애든 어른이든 누구에게든 습관성 아프다는 하지 않기로 결심했다. 아이에게 괜한 공포를 유발하는 것도 옳지 않아 보이고, 무엇보다 꼴이 좀 별로다. 정말 정말 아플 때 아무도 안 믿어주는 양치기아줌마가 될 수도 있을 것 같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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