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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토마토가든 Mar 04. 2021

[죄와 벌] - 우리를 구원하는 것은 헌신과 사랑이다.

서재를 채우는 일, 세 번째

표도르 도스토예프스키 [죄와 벌](상), (하)

저자(영문): 표도르 도스토예프스키(Fyodor Dostoevsky)

국적/원어: 러시아

역자: 김희숙

출판사: 을유 문화사

제목: 죄와 벌

영제: Crime and Punishment


 이 책은 저의 세계문학 읽기의 첫 작품입니다. 이 전에도 몇 번 세계문학에 도전한 적은 있으나――이 책도 그러던 도중에 샀던 것 같네요.――, 저는 문학을 읽고 나면 그다지 얻을 것이 많지 않은, 실효성이 없는 분야로 보고 있었던 터라, 쉬운 작품마저도 읽다가 도중에 때려치우곤 했었죠. 그래서 문학의 알 수 없는 이야기들은 나와 맞지 않는다고 여긴 기간이 꽤 깁니다.


 이번에 다시 독서라는 취미를 시작하면서 집에 있는 책들 먼저 읽어야겠다고 다짐한 순간, 가장 먼저 떠오른 게 이 책입니다. 두껍고 어려워 보이지만, 유명한 대문호의 글을 내가 소화할 수 있는지 없는지를 가름하고 싶었던 걸지도 몰라요. 어쨌든 독서는 시작되었고, 저는 작품 속 라스콜니코프의 세계에 한껏 몰입하게 되었습니다.


 젊은 풋내기 학생의 엉뚱한 사상(이론)에서 시작이 된, 전혀 합당하다고 여기기 어려운 이유로 살인을 주인공이 겪게 되는 심리 변화와 상황들, 그리고 직렬 된 사건들에서 교차되는 인물들 간의 관계에서 강한 서스펜스와 불안을 느꼈습니다. 사람은 저마다의 가치관과 생각을 갖고 있지만, 자칫 오만한 생각이 위험한 정도에 이르게 되면 어떤 짓이든 저지를 수도 있게 된다는 것, 그리고 결국 죄를 지은 자는 벌로써 구원을 받을 수밖에 없게 되는 인간 양심의 원리를 생각하게 되었습니다. 


 이 작품은 총 6부작인데, 정수는 에필로그에 있다고 봅니다. 어둡고 더러운, 축축하고 피비린내 나는, 역겹고 혐오스러운 분위기의 서술에서 허우적대다가, 결국엔 일장춘몽과 같이 이전의 세계를 깨뜨리고 더 나은 세계로 기적처럼 향해감을 언급하면서, 인생의 끝에서도 진실된 사랑을 깨닫는다면 새로운 인생을 살아갈 희망도 있는 것이구나 싶었습니다.


 을유 문화사에서 나온 판본의 부록에는 이 책의 역자인 서울대 노어노문학과 김희숙 교수의 "참회자의 고독한 감방에 갇힌 축복받은 죄인"이라는 해설이 실려 있는데, 에필로그까지 완독하고 나서 읽은 이 해설의 제목은 크게 와 닿습니다. 이 해설에서 역자는 도스토예프스키의 하층민의 가난과 추잡스러움, 예의 없음과 더러움, 핍박과 죽음 등을 사실적으로 묘사하는 리얼리즘의 목적에 있어, 궁핍의 묘사 그 자체보다는 궁핍으로부터의 이념의 탄생이 더 중요하다고 주장합니다. 그리고 이 이론은 수학적 가치 판단인 공리주의와 나폴레옹의 권력 이념 두 가지 사상에 기초하여 건설되었다고 말합니다. 이는 이 소설의 동기와 맥락을 관통하는 것이며, 특히 라스콜니코프가 스스로 원칙의 짐을 짊어질 능력이 없는 인간이라는 것을 스스로도 깨닫고 있었다는 점, 그럼에도 살인을 저지를 수 있었던 것은 극단적으로 오만했던 그의 성격 때문이라는 점을 지적하는데, 주인공의 행위에 대한 저의 의문을 어느 정도 해결해주었습니다. 


 해설에서 미처 제가 머릿속으로 정리하지 못한 부분들에 대해 도움을 얻을 수 있었는데, 밑줄 친 부분 중에 일부를 아래에 인용하며 마치겠습니다.


[죄와 벌](하) 해설 중에서


'자신은 인간이 아닌 원칙을 죽였으며, 원칙을 죽였으나 넘어서지 못하고 이쪽에 머무르고 말았다는 고백은, 그가 자신의 인간적 본성을 넘어서고자 한 실존적 범죄에서 실패했다는 것에 대한 인정이다.' - 501p


'병에서 회복되어 병실 창밖으로 무언가를 기다리듯 서 있는 소냐를 보았을 때, 그는 비로소 자신의 삶에서 무엇이 결핍되어 있었는지를 갑자기 깨닫는다.…(중략)… 전에 소냐의 방에서와는 달리, 이번에는 실제의 인간에 대한 진정한 헌신과 사랑을 이해하게 된 것이며,…(중략)… 오만과 고립 대신 겸손과 유대가 시작되며, 변증법 대신 삶이 들어선다.' - 509p


'그는 파렴치한 방법으로 두냐와의 만남을 준비하고, 방문을 걸어 잠금으로써 그녀가 아닌 그 자신을 출구 없는 상황으로 몰아넣는다. 그는 모든 것을 이 한 번의 내기에 걸었고, 모든 것을 잃는다.' - 514p

★참고로, 여기서 '그'는 스비드리가일로프입니다. 이 문장에서 깨달았죠. 그는 두냐가 아닌 스스로를 궁지에 몰아넣는 중이었구나. 하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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