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공기관 팀장의 기쁨과 슬픔
이 섹션의 주제와 맞는 얘기인지는 모르겠지만, 오늘 회사의 한 여자 후배와 나누었던 대화가 기억에 남아서 기록으로 남긴다.
이미 봐온지는 수년 된 후배고 같은 본부에서도 꽤 오래 봤고 같은 팀에서도 일 년 정도 같이 일한 적이 있던 후배다. 대한민국 최고 대학을 나온 수재이지만 한없이 겸손한, 상대방의 허물을 탓하기 보다는 자신의 부족함을 신경쓰고 더 발전하기 위해 고민하고 정진하는 그런 후배다.
워낙 겸손하고 상대방을 추켜세워주는 훌륭한 인품을 지닌 사람이다 보니 같이 일할 때 여러모로 편하기도 했지만, 본인이 가진 능력 또한 훌륭해서 뭐 하나 맡겼을 때 안정감이 느껴졌던 후배로 기억한다. 어려운 일에 직면했을 때 그 누구보다 치열하게 고민하고 어떻게든 잘 해내기 위해 노력했던 그런 아이였다.
예전에 한 선배가 나에게 넌지시 했던 얘기가 있다.
"얼마전에 OOO와 밥 한끼 하면서 이런저런 얘기를 나눴었는데,
걔가 문득 그러더라. 너가 롤모델이라고. 좋겠다?"
유년 시절부터 별다른 부침없이 탄탄대로를 걸어온 아이가 나처럼 언더독 같은 사람이 롤모델이라니? 워낙 주변 사람들에게 잘 하는 아이라 인사치레려니 했었는데, 한번씩 만나서 대화를 나누고 한번씩 안부를 묻는 연락에서 그냥 했던 말은 아닌거 같은 진심이 느껴졌다.
그래서 언제 어디서든 만나면 나도 진심으로 대했고 그저 그런 사람들에게 으레 하는 그런 말은 하지 않았다. 특히나 가정을 꾸린 이후로 일과 가정 사이에서 고민이 많은 것 같아 그 아이가 처한 상황에 대해서 내 경험에 비추어 솔직한 의견을 얘기해주곤 했다.
작년이었나 재작년이었나 기억이 흐릿하긴 하지만, 그즈음 출간되었던 내 책을 건네 주면서 응원의 메시지도 몇자 적어서 줬었는데 제 딴에는 그게 가슴에 꽤나 와닿았나 보다. 오늘 오랜만에 만나서 얘기하는데 한번씩 그 책을 꺼내서 내 메시지를 보며 마음을 다잡는다는데 그게 뭐라고 싶었지만 고마우면서도 뿌듯하고 그랬다.
현재 둘째 아이를 품고 있어 조만간 출산 휴가와 육아 휴직에 들어가야 한다. 그래서 그런지 고민이 많았다. 일은 일대로 잘하고 싶고, 아이는 아이대로 잘 키우고 싶고. 사회에서의 '커리어우먼'과 가정에서의 '부모'라는 역할 사이에서 우선순위를 어디로 둬야하는 지 갈팡질팡 하고 있었다.
"오랜만에 복직해서 한동안 정말 일 열심히 하고 있었는데 갑작스레 팀은 바뀌고, 진급도 밀리고... 둘째 출산 때문에 일도 또 놓아야 하고...
인수인계는 성심껏 했지만 그래서 나에게 남은건 뭔지,
나는 어떤 존재인건지 뭐가 맞는지 모르겠고 혼란스러워요"
그래서 솔직하게 얘기했다. 어차피 우리는 육아휴직이 보장된 공공기관이니 우선은 아이에게 최선을 다하고 뒷일은 뒤에 고민해도 된다고. 그동안 보여줬던 너의 일에 대한 태도와 쌓아온 평판을 믿고 조바심 내지 말라고 했다. 그리고 무엇보다도, 회사나 가정에서의 역할을 차치하더라도 너가 어떻게 사는게 행복할지가 중요하다고 그렇게 얘기를 했다.
그렇게 한참을 얘기하고 헤어졌는데, 나도 워낙 바쁘다 보니 출산 전에 또 보기는 어렵겠다 싶어 아쉬운 마음에 메시지를 남겼다.
우리 아끼는 후배님~ 오랜만에 만나서 얘기나눠서 반가웠고, 일과 가정 사이에서 많이 고민하고 있는 후배님을 보니 나랑은 상황은 다르고 그렇다보니 그렇게 공감가는 얘기는 아닐 수 있지만 그래도 필요한 얘기일거 같아 메시지 남깁니다.
개인적으로는 인간이 할 수 있는 가장 존엄한 일이 생명을 낳고 기르는 일이라고 생각합니다. 그 덕에 아직까지 인류가 세대를 이어온 것이니까요. 그러니 모쪼록 업과의 단절에 너무 고민하지 마시고, 육아라는 고귀한 일에서 가치를 찾았으면 좋겠습니다. 요즘 세상에는 육아를 경력 단절의 위기가 아니라 새로운 경험의 기회로 치환하는 분들도 많으니까요.
일을 하면서 조직 논리에 묻혀서 '나'라는 존재의 부재에 대해서 고민하는 것을 보고 충분히 할 법한 고민이라고 생각했습니다. 개인적인 추천은 이제는 '나'를 조금씩 내세우라고 하고 싶네요. 저도 살아보니 겸손은 미덕이지만 지나친 겸손은 성장에는 독인거 같습니다. 기본적으로는 겸손하되, 본인의 노력을 믿고 경험하고 습득한 것에 대해서는 자신감을 좀 가져도 될거 같아요.
제가 부모를 경험해보진 못했지만, 그다지 녹록치 않은 가정환경에서 자란 경험에 비추어 볼 때, 자식은 부모가 나한테 어떻게 해주었냐도 중요하지만, 부모 스스로가 얼마나 행복한 삶을 살고 있느냐가 정서적으로 영향이 더 큰 거 같아요. 엄마가 아닌 'OOO'라는 한 여성의 삶이 어떻게 사는게 더 본인에게 행복할지에 대해 진지하게 고민하셨으면 합니다.
늘 응원합니다~
사실 본인이 태생적으로 겸손한 것과는 별개로, '나'라는 존재의 사회적 가치에 대한 갈망이 가장 큰 고민의 지점이었다고 하면서 울컥했다고 답장이 왔다. 그래서 잘 고민해보겠다고 하는데, 워낙 능력이 있는 후배인 만큼 본인이 행복할 수 있는 방향으로 잘 성장해 나가길 기원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