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극보다 오래가는 평온한 삶에 대하여
TV와 유튜브에는 크게 세 종류의 사람이 나온다.
행복해 보이는 사람과 불행한 사람이 가장 많고,
진짜 행복한 사람은 거의 보이지 않는다.
TV에서 가장 많은 비율을 차지하는
행복해 보이는 사람들은 정말,
남보기에 행복하다.
그러나 그들을 보는 사람들은
오히려 공허에 빠진다.
"하하하… 아니, 내가 왜 이딴 걸 보고 있지?"
불행한 사람은 그 다음으로 많다.
사실 시청률은 이들이 더 많이 올린다.
특히 불화에 빠진 부부, 부모 자식 상담쇼는
좋은 소재가 된다.
그들의 자극적인 드라마는
갈등과 결핍의 상처에서 시작된다.
갈등이 있어야 전개가 있고,
결핍이 있어야 욕망이 생긴다.
그래서 우리는 자꾸 불행한 사람의 이야기에 끌린다.
게다가 그런 극단적인 소수가
대다수의 삶인 양 보이기까지 한다.
그런데 어쩐 일일까.
아무리 그래도 그렇지,
행복한 사람은 좀처럼 눈에 띄지 않는다.
그들은 대체 어디에 있단 말인가?
내 경우, 운 좋게 몇 명의 사람들을 발견할 수 있었다.
수십 년에 걸쳐 몇 명이었으니 정말 적은 숫자다.
행복한 사람은 우리들 사이에 숨어 있다.
설령 재수 좋게 그들을 발견하더라도
우리는 흔히 실망하게 될 것이다.
행복한 사람은 재미없기 때문이다.
특히 남보기에 정말 따분하고 재미없다.
그들은 차분하다.
그래서 대외적으로 조용하고, 말을 아끼고,
남 앞에 나서지 않는다.
특히 수다도 자랑도 하지 않는다.
그들에 대한 사람들의 흔한 반응은 이렇다.
"아니, 이렇게 따분하고
재미없게 살아도 되는 거예요?"
그럼 행복한 사람은 대체 왜 그런 것일까?
행복한 사람의 일상은
조용하고 단순하기 때문이다.
그들은 극적인 드라마를 만들지 않는다.
행복한 사람의 하루는 조용하다.
일어나면 제 할 일을 하고,
집안에서는 편안히 잘 휴식하면서도
가족끼리 서로 잘 돕는다.
소소한 일상에 적당히 웃고,
필요 이상으로 기대하지 않는다.
감정의 롤러코스터를 사양하고,
자극은 줄이고 안정을 취한다.
반면, 행복해 보이는 사람과 불행한 사람들은
그들 자신 뿐만 아니라
우리를 감정의 롤러코스터에 태운다.
그들의 연출이나 서사에 맞춰
심장이 두근거리고 감정이 크게 흔들릴수록
우리는 더 많은 관심을 갖고 그들을 소비한다.
현 시대에는 그런 연유로
행복해 보이는 사람들과 불행한 사람들이
TV와 SNS에서 가장 잘 소비된다.
미디어의 극적인 연출은
시청자들을 시끄럽게 타오르게 하지만,
금세 식는다.
예로,
영화 트루먼 쇼에서
트루먼이 거대한 쇼무대 세트를 탈출하자,
쇼는 끝난다.
여기서 끝났다면 통쾌했을 것이다.
그러나 감독은 이어서
트루먼 쇼를 보던 시청자의 장면을 보여준다.
시청자는 리모콘을 쥐고 이렇게 말한다.
"다 끝났네. 그럼 다른 방송을 볼까?"
"그래"
한편 행복한 사람은
그런 추세에서 아예 벗어나 있다.
남 앞에 연출하지 않으니
방송국 카메라도 사양이다.
결국, 행복한 사람은 재미없다.
그러나 그 재미없음이야말로
숨겨진 보물일지도 모른다.
그들의 재미없음은
삶을 평온하게 설계하고
말없이 잘 운영하고 있다는 증거이기 때문이다.
오래 가는 행복은 대개 말이 없다.
굳이 보여줄 게 없다.
그래서 그들의 삶은 지루해 보인다.
불필요한 자극이 없기 때문이다.
그러다 보니,
이제 질문은 우리 자신에게 있게 된다.
우리는 정말 행복한 사람이 되기를 원하고 있는 걸까?
2026년 2월 25일 작성
퇴고 보완 후,
2026년 2월 26일 업로드
Son the writer (aka 엠마네오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