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보와 합법의 이름으로
주말에 미국 행정부와 ‘클로드(Claude)’로 알려진
AI 기업 앤트로픽(Anthropic) 사이의 갈등 보도를 봤다.
발단은 군사적 활용 범위를 둘러싼 이견이었다.
보도에 따르면,
미 정부는 베네수엘라 마두로 체포 작전에 활용된
클로드의 기능을 전면 개방하길 원했고,
앤트로픽은 자국민 감시나 자율 살상 무기와 같은 영역에는
기술을 제공할 수 없다는 입장을 밝히며 거부했다.
이에 도널드 트럼프는
'앤트로픽이 정부를 강압으로 굴복시키려 한다'면서
공개적으로 강한 어조의 발언을 이어갔다.
그런데, 여기서 잠시
나는 묻고 싶다.
거부가 어떻게 강압이 되는가.
선을 긋는 행위가 강요인가,
아니면 그 선을 지우려는 힘이 강요인가.
구분은 그리 어렵지 않다.
거부는 타자의 자유를 침해하지 않는다.
강압은 언제나 타자의 그런 자유를 지우는 쪽에서 시작된다.
이 뉴스는 두 가치의 충돌을 보여준다.
바로, 안보와 윤리다.
먼저 안보를 살펴보자.
안보는 늘 중요한 가치다.
안보 없이 평온한 일상은 없기 때문이다.
그래서 국가가 안보를 내세우면
이의를 내세우기가 매우 어렵다.
안보는 윤리마저 우회하고
때로는 윤리를 압도한다.
심지어 국가가 내세운 안보에
이의를 제기하거나 동의하지 않으면
그것은 비협조가 되고,
비협조는 국가의 목적에 방해가 된다.
2차 세계대전 당시 일본에서는
전쟁에 이의를 제기하거나 반대한 이들이
‘비국민’으로 불리며 탄압받았다.
질문은 배신이 되었고,
침묵은 미덕이 되었다.
국가 목표가 절대가 되는 순간,
윤리는 쉽게 사치가 된다.
그리고 국가가 불안할수록,
충성은 더 큰 미덕이 된다.
그런데 여기서도 나는 묻게 된다.
질문과 거부는 개인의 선택일 뿐이다.
그런데, 그것이 어떻게 배신이 되는가.
배신은 신뢰나 약속을 저버릴 때나 성립하는 말이다.
‘비국민’ 낙인을 당한 그들은
국가와 전쟁을 약속한 적이 없었다.
그들은 전쟁에 동의하지 않았을 뿐이다.
다음으로,
합법은 언제나 정의와 윤리에 부합한가를 살펴보자.
1935년, 독일 뉘른베르크.
어떤 법이 통과된다.
이 법에 의하면,
유대인은 더 이상 독일 시민이 아니었다.
그것은 합법이었다.
나치는 전쟁과 함께 유대인을 학살한다.
10년 후, 같은 도시에서 또 다른 재판이 열린다.
법정에 선 전쟁 범죄 피고인들은 이렇게 말한다.
“우리는 법을 따랐을 뿐이다.”
그러나 그 법은 더 이상 정의로 인정되지 않았다.
이런 나치 치하를 겪었던
독일의 법철학자 구스타프 라드브루흐는 이렇게 말했다.
"실정법이 정의와 참을 수 없을 정도로 모순된다면,
그 법은 정의에 양보해야 한다."
역사가 검증했듯이,
정의를 파괴하는 법은 오래 가지 않는다.
그런데,
정의는 가치 면에서 윤리보다도 후순위라고
나는 생각한다.
그렇다면 앤트로픽은 왜 선을 긋고 거부했을까?
AI 기업인 앤트로픽의 선택은
윤리나 정의 차원에서 비롯했거나,
심지어 사업적 판단일 수도 있다.
또한, “여기까지는 하지 않겠다”는 거부 선언은
기술의 경계를 스스로 설정하여
공개적으로 천명한 것이기도 하다.
기업은 이익 조직일 뿐 성역이 아니다.
그들 역시 시장에서 나름의 지배 권력을 가지고 있다.
그러나 언급했다시피,
선을 긋는 행위는 강압이 아니다.
선을 긋는 주된 이유는
자신을 지키기 위한 방어 용도이다.
여기서 다시 묻게 된다.
거부는 강압인가.
아니면 거부를 허락하지 않는 것이 강압인가.
물론 국가는 명령할 수 있다.
법을 집행할 수 있다.
안보가 최우선이 될 수 있다.
명령은 빠른 복종에 따른 실행을 일방적으로 강요한다.
명령을 안 지키면 보복이 따른다.
이 모든 건 즉각적이다.
반면에 윤리는 느리다.
이게 옳은지 그른지,
회색지대가 있으면 어떻게 해야 할지,
사각지대는 없는지,
시간과 에너지를 들여 살피고 따져야 한다.
명령은 즉시 일방적인 질서를 만든다.
그러나 시간이 지나면,
그 질서는 철저한 검증 과정을 거쳐
다시 평가된다.
부당한 명령은 그 순간에는 위세를 가진다.
그러나 오래 남는 것은 위세가 아니라 기록이다.
그리고 기록은 묻는다.
당신은 어디까지 동의했는가.
거부는 그 질문에 대한 기록이다.
기록은 결국 윤리의 언어로 읽힌다.
윤리는 명령되지 않는다.
2026년 2월 27일 작성
퇴고 보완 후,
2026년 2월 28일 업로드
Son the writer (aka 엠마네오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