왜 우리는 본능이 아니라 문명으로 살아가려 했을까?
사람들은 종종 '본능을 따르면 자연스럽다'는
말을 쉽게 사용합니다.
욕망도 자연스럽고
경쟁도 자연스럽고
자기 이익을 지키려는 마음도
자연스럽다고 말합니다.
그 말은 어느 정도 맞습니다.
인간에게는 분명 본능과 충동이 있습니다.
하지만 여기서 한 가지 질문이 남습니다.
우리는 왜 문명을 만들었을까요.
만약 자연스러운 것만으로 충분했다면
본능으로만 살아가는 게 더 편했을지도 모릅니다.
법도 필요 없고 제도도 필요 없고,
힘이 강한 사람이 더 많이 가지면 되고,
욕망이 강한 사람이 더 많이 취하면 됩니다.
그러나 그런 방식으로는
어떻게 될까요.
인류는 생존을 이어가기도 어려워지고
번성과 번영을 이루기 힘들어집니다.
무엇보다
생존 공동체 자체가 유지될 수 없습니다.
그래서 인간은 오래전부터 사회를 이루고
본능 위에 사회적 질서를 세웠습니다.
그 질서는 욕망 본능에 따른 힘의 질서가 아니라
절제와 윤리에 기반한 책임의 질서였습니다.
그럼 왜 책임의 질서를 세웠을까요.
이유는 근원적이고 간단합니다.
토마스 홉스가 말했듯이
'만인에 대한 만인의 투쟁을 막기 위해서'였습니다.
서로를 믿을 수 없는 세계에서는
욕망이 곧 충돌이 되고
힘이 곧 질서가 됩니다.
그래서 인간은 오래전부터
본능 위에 하나의 장치를 만들었습니다.
그것이 바로 문명입니다.
문명은 욕망을 없애기 위해 만들어진 것이 아닙니다.
욕망이 서로를 파괴하지 않도록
조절하기 위해 만들어졌습니다.
그렇다면 문명은 어떻게 작동해야 했을까요.
인간의 욕망 위에
절제와 윤리라는 제어 장치를 두는 것이었습니다.
기원전 동북아에서는
삼강오륜과 인의예지신의 유교와
법치와 형벌의 법가가 인간과 사회를 규율했고,
서양에서는
그리스 철학의 로고스(이성)에 기반한 덕 윤리와
기독교의 양심과 죄의식에 기반한 도덕 질서가
욕망을 통제하는 장치로 작동했습니다.
이 체계는 거의 2천 년 가까운 세월 동안 유지되었습니다.
그러나 근대에 들어서면서 이 질서에 균열이 생깁니다.
니체는 도덕이 절대적 진리가 아니라
권력과 가치의 역사 속에서 형성된 것이라고 분석했습니다.
이에 사람들은 처음으로 묻게 됐습니다.
'우리가 당연하게 여겨 온 도덕은
정말로 절대적인 것인가.'
그 질문 이후
문명의 오래된 제어 장치는
조금씩 힘을 잃기 시작합니다.
하지만 인간의 욕망은
사라진 적이 없었습니다.
그러자 문제가 발생했습니다.
오래된 윤리는 약해졌지만
그 자리를 대신할 새로운 질서는
아직 충분히 자리 잡지 못한 겁니다.
즉, 문명의 윤리는 지금 공백 상태에 가깝습니다.
그래서 현대 사회에서는
여러 가지 주장들이 동시에 등장합니다.
어떤 사람들은
오직 권리만을 말하고,
어떤 사람들은
자기 욕망을 자연스러운 것이라 주장하며,
어떤 사람들은
관계를 철저한 계산의 문제로 바꾸려 합니다.
권리, 욕망, 계산이라는
서로 다른 언어들이 충돌하고 있는 것입니다.
그 이유는 단순합니다.
공통된 윤리의 기반이 약해졌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문명 사회를 살아가는 우리에게
본능의 자연스러움만으로는
문명의 문제에 답이 되지 않습니다.
우리에게 정작 중요한 질문은 이것입니다.
권리도 그 질문 속에서 탄생했고
자유도 그 질문 속에서 확장되었습니다.
하지만 그 질문이 사라질 때
사람들은 다시 계산을 시작합니다.
누가 더 가져야 하는지
누가 더 손해를 보는지
누가 더 이용당하는지.
그 순간 관계는 계약으로 변하고
신뢰는 빠르게 사라집니다.
그래서 문명을 유지하는 힘은
강한 본능이 아니라
서로 책임을 나누겠다는 합의입니다.
우리가 문명 사회를 살아가는 이유는
자연스럽기 때문이 아니라
함께 살아가기 위해서입니다.
그러나 지금 우리가 겪는 혼란은
그 기술이 어떻게 작동하는지를
다시 묻게 만들고 있습니다.
이 글은
그 질문을 하나씩 풀어보려는
작은 시도입니다.
2026년 3월 4일 작성
퇴고 후
2026년 3월 5일 업로드
Son the writter (aka 엠마네오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