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명은 왜 인간의 욕망을 통제하려 했을까

우리는 서로를 수단으로 사용하지 않고 살아갈 수 있을까

by Son the writer


현대 사회에서 우리는 흔히 이렇게 생각합니다.


“더 많은 자유, 권리, 선택이 있을수록 좋은 사회다.”


그래서 많은 사람들은

인권 향상과 차별 없는 세상을 이야기합니다.


권리 (2).jpg




총론에서 보면

그것은 분명 인류가 지향해야 할 이상입니다.


그런데 현실을 조금만 들여다보면

이상과 다른 장면을 자주 마주하게 됩니다.


어떤 집단이 인권을 이야기할 때

그 요구가 다른 사람들에게

침묵과 희생을 요구하는 경우가 생깁니다.


차별 없는 세상을 외치면서도

정작 다른 사람들에게는

자신의 편견과 욕망을 기준으로

새로운 차별을 만들어내는 장면도 보게 됩니다.




마틴 루터 킹_악의 공범 명언 (2).jpg 악을 외면하는 것은 그 악의 공범이 되는 것이다.- 마틴 루터 킹


악을 외면하는 것은 그 악의 공범이 되는 것이다.

- 마틴 루터 킹


이 말은 도덕적 무관심 문제를 짚고 있지만,

세상에 수많은 악이 존재하고 우리는 모두 그것을 막지 못하기에,

논리적으로는 '모든 사람은 모든 악의 공범으로 귀결'하게 된다.

윤리적 판단에는 책임의 범위와 능력을 같이 봐야 한다.





저는 오래 전에 인상적인 대화를 나눈 적이 있습니다.


“비정규직은 그럴 만해서 비정규직을 하는 겁니다.

잘 대해 줄 필요 없습니다.

노숙자도 마찬가지입니다.”


이 말을 한 사람은

냉혹한 사업가였을까요.


아닙니다.

그는 노숙자였습니다.


더 정확히 말하면

예전에 사업을 했던 사람이었습니다.


그는 강한 자존심을 가진 사람이었고,

봉사활동 중이던 제 앞에서

자신의 처지와는 모순되는 말을 하고 있었습니다.


그 경험을 통해

저는 인간의 욕망이 얼마나 쉽게

자신과 타인을 자의대로 판단하고 서열화하는지를

생각하게 되었습니다.




"인권 향상, 차별 없는 세상,

더 많은 권리와 자유를!"


대의명분.


총론은 항상 아름답습니다.


그러나, 그 이면에서

개인이나 집단이 그들만의 권리와 정의를 외칠 때

많은 사람들은 그 말의 진정성을 의심하기 시작합니다.


그리고 조금 더 시간이 흐르면

많은 사람들은 말 없이 거리를 둡니다.


그 결과, 사회는 더 따뜻해지기보다는

오히려 차가워집니다.


왜 이런 일이 생길까요.





이 질문을 깊이 따라가다 보면

우리는 한 가지 사실에 도달합니다.


문명의 생의지는

인간의 욕망을 해방하기 위해 만들어진 것이 아니라

인간의 욕망이 서로를 파괴할 수 없게 하는

기술적 제도적 장치라는 사실입니다.


문명은 인간의 삶을 개선합니다.

그러나 동시에

인간의 욕망을 일정한 규칙 속에 두려고 합니다.




인간은 욕망을 가진 존재입니다.


더 많이 가지려 하고

더 높은 지위를 원하고

더 큰 만족을 추구합니다.


이것은 특별한 사람이 아니라

거의 모든 인간에게 나타나는 성향입니다.


문제는 욕망 자체가 아니라

욕망이 서로 충돌한다는 점입니다.


흡연권과 혐연권은 충돌합니다.

자본가와 노동자의 권리 역시 충돌합니다.


개별 욕망은 언제나

다른 사람의 삶과 부딪힙니다.




왜 이런 충돌이 생길까요.


사회에서 실현되는 개인의 욕망은

타인을 어느 정도 수단으로 사용해야

가능해지기 때문입니다.


예전에 사시 합격을 위해 하루 16시간을 공부해서

성공했다는 사람들이 그랬습니다.

그 사람은 자신의 욕망을 위해 전심전력했습니다.

그러나, 그게 그 사람 본인 100% 능력으로 한 게 아닙니다.

그 사람을 뒷받침하는 부모, 형제의 희생이 있었습니다.


사회에서 어떤 한 사람이 자신의 더 많은 이익이나

더 높은 지위나 자신의 만족을 실현했을 경우,

관련된 가까운 다른 사람들은

그 사람의 목적을 위한 도구로 이미 사용됐습니다.


한 사람이 더 많은 이익을 얻을 때

다른 사람의 몫은 필연으로 줄어듭니다.


개인의 어떤 욕망이 실현될 때

관련된 누군가는 그만큼 이용되고, 밀려나고, 소모됩니다.


개인의 욕망이 강해질수록

타인은 쉽게 경쟁자이거나

자원 또는 도구 수단이 됩니다.





그래서 인류는 오래전부터

생존의 근원적인 문제를 고민해 왔습니다.


'욕망을 가진 인간들이

어떻게 함께 살아갈 수 있는가.'


문명은 이 질문에 답하기 위해

여러 장치를 만들었습니다.


법, 도덕, 윤리, 관습, 예절, 철학, 미학, 종교 등


이 모든 문명 장치는 실현을 위해

다음의 질문을 통과하면서 실행됩니다.


“어느 선까지가 허용되는 인간의 욕망인가.”


그리고 이 질문은

또 다른 하나의 질문으로 이어집니다.


"우리는 서로를 수단으로 사용하지 않고

함께 살아갈 수 있을까."




그러나 오늘날 우리는

'서로간의 욕망을 조율해야 한다'는 문명의 지혜보다는


'자신의 욕망을 표현하고 반드시 실현해야

민주주의이고 인권 향상이다'라는

반지성 반문명 사회 기조에 휩싸이고 있습니다.


선동가들은 항상 이런 부류의 말들을 합니다.


"사회가 안 들어준다 하더라도

네가 원하는 것을 사회와 타인에게 요구하라.

그것은 네 권리다. 투쟁해서 쟁취하라.

네 자신의 욕망을 억누르지 말라.

네 욕망은 모두 긍정적인 것이고 실현을 기다리고 있다.

네 권리를 주장하라.

그에 따른 사회와 타인의 고통은 네가 알 바 아니다.

그들이 네 권리 실현을 제약했던 가해자들이기에

네가 보답할 책임은 하나도 없다. 감사도 필요없다.

너는 탈환한 네 권리를 누리기만 하면 된다."


이런 말들은 달콤하기도 하지만,

일정 부분 타당합니다.


그러나, 부분만 맞고 전체는 오답입니다.




문명은 우리에게 이렇게 묻습니다.


“각자의 욕망을 표현하는 언어가 강해질수록

함께 살아가는 운영 규칙은 어떻게 유지되는가.”


"네 욕망 하나를 실현하기 위해

사회의 불균형 심화는 물론이고

다수의 헌신이나 희생을 필요로 한다면,

네 욕망의 타당성은 대체 어디에 있는가?


네 욕망 하나가 타자나 문명의 생의지에 반한다면,

그런 네 욕망은 문명 입장에서 중요한 것이 아니다."




물론 문명 역시 태생은

욕망이 강한 인간 본성에서 비롯했습니다.


그래서 문명은 늘 두 가지 사이에서 균형을 찾으려 합니다.


"욕망의 자유 그리고 욕망의 절제."


이 균형이 무너지면

문명은 쉽게 갈등과 붕괴 속으로 들어갑니다.


그럼 현 시점 문명은 어떤 상태일까요.


저는 현대 문명이 균형을

간신히 유지하고 있다고 생각합니다.




오늘날 사회에서는

권리의 언어가 빠르게 확장되고 있습니다.


그런데 권리가 늘어났는데도

왜 사회는 더 불균형해지고 불안해졌을까요.


왜 사람들은

점점 더 서로를 불신하게 되었을까요.


다음 글에서는

권리의 언어가 폭발한 오늘날 사회에 대해

이야기해 보겠습니다.



- 계속



2025년 11월 2일 초안 작성

숙고 및 퇴고 후,

2026년 3월 5일 업로드

Son the writer (aka 엠마네오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