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전에 없었던 권리 언어는 현대 사회에 왜 등장했을까
오늘날 우리는 권리라는 말을 매우 자주 사용합니다.
표현의 자유, 노동권, 인권, 소수자 권리, 평등권 등
어떤 주장에 정당성을 부여할 때
오늘날 사람들은 이렇게 말합니다.
“그것은 나의 권리다.”
제가 사회 초년생이던 시절,
저는 그래픽 디자인 동호회 활동을 한 적이 있었습니다.
그 시절엔 술고래들이 남녀 불문 많았습니다.
예술적 끼를 주체하지 못할 정도로 정열적인 사람들,
덕후 기질이 넘치는 모임이었죠.
나중에 유명 웹툰 만화가가 된 사람들도 있었습니다.
그런데, 어느 날 모임 뒷풀이 술자리에서
어느 회원의 선 넘는 발언들이 나오고 있었습니다.
"사회는 우리를 억압하고 있어.
우리는 해방되야 해.
특히 성적 해방을 이뤄야 해."
그는 분위기를 주도하고 있었습니다.
그때 저는 호기심 반 의문 반으로 그에게 질문했습니다.
"성적 해방은 자유를 실현한 것이니까 좋겠네요.
그렇다면 미래의 당신이 낳은 딸도 성적 해방을 누려야겠군요."
그러자, 그는 순간 멈칫 했습니다.
Go를 해야 할지 Stop을 해야 할지 망설인 것입니다.
1초 남짓한 시간.
다행히 눈치 빠른 다른 회원분이 재빨리 화제를 돌렸습니다.
권리라는 말이 등장하는 순간
그 사람의 요구는 단순한 요청이 아니라
정당한 주장으로 받아들여집니다.
그래서 권리는 오늘날 현대 사회에서
가장 강력한 정치적 언어가 되었습니다.
그러나 권리는 처음부터
욕망을 정당화하기 위해 등장한 개념이 아니었습니다.
권리는 애초에
인간의 욕망이 서로를 파괴하지 않도록 하기 위해
문명이 만들어낸 장치였습니다.
근대 철학에서도 이런 권리 문제는 중요한 주제였습니다.
독일 철학자 임마누엘 칸트는
인간 관계의 윤리적 원칙을 이렇게 말했습니다.
이 말은 매우 단순하지만 강력합니다.
타인은
자신의 목적을 위해 사용되는 도구가 아니라
그 자체로 존중받아야 할 존재라는 것입니다.
그래서 권리는
강한 사람이 약한 사람을 마음대로 이용하지 못하도록
만들어진 문명의 규칙이었습니다.
애초에 인간의 존엄을 보호하기 위해 등장한 권리 개념.
그러나 권리만으로는 사회가 유지될 수 없습니다.
세월이 한참 흐른 20세기에 들어와
프랑스 철학자 에마뉘엘 레비나스는
이 문제를 더욱 급진적으로 바라봤습니다.
그는 인간 관계의 출발점을
계약이나 권리가 아니라
'타자에 대한 책임'에서 찾았습니다.
그는 이렇게 말합니다.
레비나스에게서 타자는
내가 인정해 줘야 존재하는 대상이 아니라
이미 나에게 윤리적 요구를 하는 존재입니다.
물론 현실 사회에서
모든 타자에게 무한한 책임을 질 수는 없습니다.
그런데 레비나스는 왜 이런 말을 했을까요?
저는 그 이유를 이렇게 생각합니다.
우리는 서로에게 타인이기 때문입니다.
내가 존중받기 위해서는
타자에 대한 존중이 먼저 시작되어야 합니다.
모두가 이 원칙을 지키면
'내가 존중받지 못하면 어쩌지?'
이런 걱정은 사라지게 됩니다.
실제로 현재 세계 대다수 국가는
이미 고립되고 외로운 현대인들로 넘쳐나고 있습니다.
번역 - 외로움 부서 : 외로움을 말합시다. 그 어느 때보다도 행동하는 것이 중요합니다.
실제로 영국은 2018년
세계 최초로 ‘외로움 부 장관(Minister for Loneliness)’을 임명하며
고독을 사회 문제로 다루기 시작했습니다.
레비나스는 이런 사회적 현상을 미리 염려했다고
저는 생각합니다.
그래서 문명은 자기 붕괴를 방지하기 위해,
권리 요구에 대하여 윤리적 이상과 현실 사이에서
늘 균형점을 찾으려고 합니다.
그러나 오늘날 사회에서
권리의 언어는 빠르게 확장되고 있습니다.
새로운 권리가 계속 등장하고
그에 따라 새로운 권리 투쟁이 이어집니다.
겉으로 보면 이것은 진보처럼 보입니다.
그러나 동시에 흥미로운 사회 현상이 나타납니다.
권리가 늘어났는데도
사회는 더 안정되기보다는
오히려 더 많은 갈등과 모순이 커집니다.
이에, 사람들이 서로 불신하면서
차라리 외로움을 선택하기도 합니다.
왜 이런 일이 생길까요.
현대 권리 담론은 크게
개인과 집단 두 가지 차원에서 작동합니다.
첫째는 개인의 권리입니다.
기본권, 선택과 표현의 자유.
이는 개인의 삶을 보호하기 위한 권리입니다.
둘째는 집단의 권리입니다.
집단 정체성, 집단 보호, 집단 차별 철폐.
이는 집단을 보호하기 위한 권리입니다.
문제는 이 두 권리가 서로 충돌할 때입니다.
개인의 자유가
어떤 집단에게는 차별로 보이기도 하고,
집단의 권리가
어떤 개인에게는 억압으로 느껴지기도 합니다.
이런 사회 현상이 심화되면
사회는 결국 붕괴로 이어지게 됩니다.
권리는 애초에 타인을 보호하기 위해 등장했습니다.
그러나 세월이 흐르면서
권리는 또 다른 방식으로 사용되기 시작합니다.
사람들은 이제 자신의 욕망을
권리의 언어로 표현하고 있습니다.
“내 권리를 보장하라.”
“내 선택을 제한하지 말라.”
“내 자유를 침해하지 말라.”
그럴 때마다 다음과 같은 질문을 하는 게
필수라고 저는 생각합니다.
오늘날 사회는
사람들이 권리의 언어를 내세울수록
타자의 삶을 고려하지 않는 경우가 많아지고 있습니다.
그리고 어느 순간
권리는 서로를 겨냥한 무기가 되기 시작합니다.
권리는 서로를 보호하기 위해 등장했다.
그러나 권리가 서로를 향한 무기가 되는 순간
사회는 갈등 속에 분열을 시작한다.
문명은 끊임없이 우리에게
다음과 같은 질문들을 던집니다.
이 질문에 답하지 못하면
권리는 문명을 지탱하는 규칙이 아니라
갈등과 분열을 심화시키는 언어가 될 뿐입니다.
오늘날 사회에서는
권리의 언어는 크게 확장되었습니다.
그러나 그와 동시에
연관된 다른 하나의 언어는 점점 약해지고 있습니다.
이 변화는 우리 사회의 관계와 공동체에
어떤 영향을 미쳤을까요.
다음 글에서는
책임의 언어가 사라진 이유를 이야기해 보겠습니다.
- 계속
2025년 11월 7일 초안 작성
숙고 및 퇴고 후,
2026년 3월 8일 업로드
Son the writer (aka 엠마네오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