권리가 커질수록 책임은 왜 작아졌을까
오늘날 사회에서는
권리라는 말을 매우 자주 듣습니다.
“그것은 나의 권리다.”
“내 자유를 침해하지 말라.”
“내 선택을 존중하라.”
권리는 현대 사회에서
가장 강력한 언어가 되었습니다.
그러나 흥미로운 사실이 있습니다.
권리를 이야기하는 목소리는 커졌지만
책임을 이야기하는 목소리는
점점 더 작아지고 있습니다.
왜 이런 일이 생겼을까요.
문명은 처음부터
권리만 이야기하지 않았습니다.
권리와 책임은
항상 함께 존재하는 개념이었습니다.
권리는
우리가 보호받아야 할 것을 말합니다.
책임은
우리가 감당해야 할 것을 말합니다.
그런데 책임에는
권리와 다른 특징이 있습니다.
책임은
시간을 요구합니다.
노력을 요구합니다.
때로는 희생을 요구합니다.
그래서 인간은
가능하다면 권리는 최대화하고
책임은 최소화하려 합니다.
이런 현상은
개인에게만 나타나는 것이 아닙니다.
현대 사회에서는
정부와 기업 역시
비슷한 방식으로 움직입니다.
책임은
여러 단계의 절차 속에서 분산됩니다.
누군가는 정책을 만들고
누군가는 결정을 승인하고
누군가는 집행을 합니다.
그 결과 문제가 발생하면
책임의 주체는 쉽게 보이지 않게 됩니다.
책임이 쪼개져서 분산되었기 때문입니다.
“그것은 우리 부서 책임이 아닙니다.”
“규정에 따른 결정이었습니다.”
“그건 저희 관할 아닙니다.”
이런 말들은
현대 사회에서 자주 들리는 표현입니다.
권리는 분명하지만
책임의 주체는 흐려지는 구조가 만들어집니다.
한편
책임을 서로 전가하는 장면도
동시에 나타납니다.
예로,
개인과 집단은
자신의 권리를 주장하며
사회에 책임을 요구합니다.
그러나 사회 역시
자신의 구조적 책임을
개인이나 집단에게 전가합니다.
개인의 처지는
개인의 선택이 되고
노동 문제는
개인의 경쟁력 책임이 되고
개인의 불안정한 삶은
개인의 준비 부족으로 설명합니다.
책임 전가의 싸움에서
개인이나 집단이 잠시 승리하는 것처럼 보일 때도 있습니다.
그러나 사회는 훨씬 더 은밀하고 강력한 방식으로 대응합니다.
개인에게는 개인책임론을,
집단에게는 반사회 낙인을 씌우기 때문입니다.
이런 구조 속에서
현대 사회의 또 다른 특징이 나타납니다.
사회에서 발생하는 위험을
점점 더 먼 곳에 배분하여 전가하는 것입니다.
독일 사회학자 울리히 벡은
현대 사회를 이렇게 말했습니다.
산업사회에서는
부의 분배가 중요한 문제였습니다.
지금도 부의 분배는 중요합니다.
그러나 현대 사회에서는
위험이 어떻게 분배되는지가
훨씬 치명적이고 중요한 문제입니다.
위험은 생존에 직결되어 있는데,
이미 발생한 위험은 사라지지 않습니다.
다만, 다른 먼 곳으로
눈 앞에 보이지 않게 이동할 뿐입니다.
오늘날 한국 사회에서도
이 현상을 쉽게 볼 수 있습니다.
예로,
서울과 수도권에서 발생한 쓰레기의 상당량은
오랫동안 인천의 수도권 매립지에서 처리되었습니다.
그러나 매립지 포화와 환경 문제로
인천 주민들의 반발은 점점 커졌습니다.
대기질 악화와 환경 부담을 이유로,
인천은 더 이상 서울 경기 쓰레기 반입을 거부했습니다.
문제는 그 다음입니다.
수도권에서 발생하는 쓰레기는 사라지지 않았습니다.
이제 그 쓰레기들은 충북 청주, 충남 공주 등
다른 지역의 소각 시설로 이동하기 시작했습니다.
이 과정에서
지방자치단체와 지역 주민들은 이렇게 묻습니다.
이 질문은 단순한 환경 문제가 아닙니다.
현대 사회에서
위험이 어떻게 이동하는지를 보여주는 장면입니다.
도시의 편리함은
도시 안에서 소비됩니다.
그러나 그 도시가 만든 위험은
다른 지역으로 보내집니다.
위험은 사라지지 않기에
단지 더 멀리 보내 버리는 것입니다.
그 결과,
사용한 권리도 없이 쓰레기 처분 책임만 떠안은
지방자치단체와 지역주민들의 고통만 늘어납니다.
'서울 경기는 쾌적한 삶을 살 권리가 있지만,
지방은 서울 경기의 쓰레기를 책임져 받아주는 곳..?'
이렇게 생각하는 사람들이 없어도
실제 선택은 다음과 같은 사고로 이뤄집니다.
그러나, 사회 전체 시선에서 보면
이익의 사유화를 하면서 불경제의 책임과 위험을
외부에 전가하려고 드는 책임 전가 싸움은
결국 사회적 손실입니다.
만약,
모두가 책임 전가 싸움을 할 때,
승자는 누가 될까요.
개인은 권리를 내세워 사회에 책임을 요구하고,
사회는 개인에게 자신의 구조적 책임을 전가하고 있습니다.
정부와 기업의 책임은 절차 속에서 분산되고
위험은 다른 지역과 다른 사람들에게 이동합니다.
책임의 주체는 잘게 쪼개지고 분산되어
정확히 누구에게 책임을 물을 수 없는 구조가
되어가고 있습니다.
이런 구조 속에서
문명은 우리에게 다시 질문합니다.
이 질문에 답하지 못하는 사회, 집단, 개인은
이미 울리히 벡이 말한 '위험사회' 요건을
충분히 충족한다고 저는 생각합니다.
지금까지 사회, 집단, 개인은
책임을 서로 상대방에게 떠넘기며
사회의 위험을 증폭시킬 수 있다는
사실을 확인했습니다.
다음 글에서는
관계의 문제로 넘어가 보겠습니다.
- 계속
2025년 11월 9일 초안 작성
숙고 및 퇴고 후,
2026년 3월 10일 업로드
Son the writer (aka 엠마네오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