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부. 서윤
1.
“밥 잘 챙겨 먹고 있어.”
엄마가 평소에 잘 입지 않는 검은색 블라우스를 걸치며 말했다. 엄마는 여느 아줌마들과는 다르게 화사한 파스텔 톤의 옷을 좋아한다. 흰 피부에 축 처진 무해한 눈매, 둥근 얼굴과 아담한 키를 가진 소녀 같은 엄마에게는 그런 옷이 퍽 잘 어울린다. 나는 솜사탕 같은 엄마의 옷을 볼 때마다 씁쓸하다. 우리가 사는 세상은 그렇게 천진한 빛깔이 아니니까.
그런데 그날은 엄마에게서 밝은 기운이 보이지 않았다. 좀 전에 걸려 온 전화 때문이다. 주방 테이블에서 늦은 아침으로 시리얼을 먹고 있는데, 방문 너머로 엄마의 흐느끼는 목소리가 들려왔다.
“어떻게 그런 일이 있어. 어떻게……”
전화를 끊고 방에서 나왔을 때 엄마의 눈 언저리가 붉게 물들어 있었다.
“무슨 일이야?”
“엄마 초등학교 동창이 갑자기 세상을 떠났대. 서울로 장례식장 다녀올게.”
엄마는 급하게 기차표를 예매하더니, 방문을 연 채로 옷을 입으며 밥을 잘 챙겨 먹으라고 당부했다. 그리고 대답을 들을 틈도 없이 집을 나섰다. 다시 숟가락을 드니 시리얼은 어느새 퉁퉁 불어 우유 위를 힘없이 떠다녔다. 나는 젖은 종이 같은 식감의 시리얼을 입안으로 밀어 넣으며 엄마의 초등학교 동창에 대해 생각했다.
돌아가신 분은 학창 시절 친하게 지내던 친구였을까, 엄마의 첫사랑이었을까. 확실한 사실은 내가 모르는 사람이라는 거다. 엄마는 나 몰래 외출을 하진 않았지만 누구를 만나러 간다고 말한 적도 없었다. “어디 나갔다 올게.” “밥 잘 챙겨 먹고 있어.” 이런 말들이 전부였다. 엄마가 저렇게 슬퍼할 정도로 가까운 사람도 알지 못하다니. 엄마가 완전한 남이 된 것처럼 낯설어졌다.
*
시계를 보니 11시가 조금 넘었다. 헐렁한 스포츠 브랜드 반팔티에 무릎까지 내려오는 회색 추리닝 반바지를 입고 자전거와 함께 집을 나왔다. 토요일 오후의 햇살이 뜨겁게 내리쬐고 있었다. 여름이 되면 강렬한 태양의 열기에 세상이 말랑말랑해져서 어떤 모양이든 될 수 있을 것 같은 느낌이 든다. 무슨 일이든 일어날 것만 같은 묘하게 불길한 기운.
휴대폰으로 배달 앱의 알림이 울렸다.
새 배달 요청이 도착했습니다!
별로 탐탁지 않았으나 15초 내에 수락하지 않으면 다른 라이더에게 배정이 되기 때문에 재빠르게 수락 버튼을 눌렀다. 알림을 보낸 곳은 건너편 아파트 단지 상가에 있는 양식집이었다. 흔한 디자인의 신축 아파트이지만 그 앞에 서면 괜히 위축된다. 내가 사는 구축 단지와 신축 단지가 거울을 사이에 둔 도형처럼 대로를 기준으로 서로 마주 보고 있기 때문이다. 매끈한 자태의 고층 건물 앞에서 우리 아파트는 어린아이가 잘못 그린 듯 어색하고 어정쩡하다. 내가 태어나기 10년도 더 전에 지어진, 우리 동네에서 가장 오래된 건물. 어디에 놓아도 오답처럼 보이는 아파트.
배달 장소는 그 아파트 단지 내의 오피스텔이었다. 식당과 배달 장소가 같은 단지에 있어 이번 배달은 운이 좋은 편이다. 그런데 누군가의 귀찮은 일을 대신해 주는 심부름꾼이 된 것 같아 공연히 심술이 났다.
“이 정도 거리면 배달료를 길바닥에 버리는 수준인데.”
음식물이 담긴 봉지를 받아 들고 구시렁거리며 오피스텔 동을 찾아갔다. 현관에서 호출 벨을 눌렀는데 문이 열리지 않았다. 배달 봉지에 붙어있는 주소를 다시 확인했다. 101동, 맞는데. 배달을 시켜 놓고 문도 제때 열어주지 않는 무책임한 태도에 열이 뻗쳤다. 그때 얇은 바람막이에 레깅스 차림을 한 젊은 여자가 나를 흘끔 쳐다보고는 카드키를 찍고 들어갔다. 여자를 따라 들어가 보니 1층 현관에 엘리베이터가 총 세 대나 있었다. 입구에서 바로 보이는 엘리베이터 2대, 안쪽으로 더 들어가면 분리된 공간에 있는 엘리베이터 한 대. 여자는 익숙하게 세 대의 엘리베이터 층을 모두 확인하고서 1층과 가까이에 있는 두 대의 엘리베이터 버튼을 모두 눌렀다.
5층에 서있던 엘리베이터가 도착했지만 여자는 휴대폰을 만지며 딴청을 부렸다. 내가 먼저 엘리베이터에 올라타 열림 버튼을 눌렀는데도 여자는 꿈쩍도 하지 않았다. 문이 닫히고 나서야 손에 든 배달 봉지가 눈에 띄었다. 나랑 같이 타는 게 싫었던 거구나. 배달 음식 따위는 먹지 않는 고결한 사람인 양 대놓고 나를 피하는 태도가 우습기도 했고 한편으론 걱정도 됐다. 이렇게 계속 배달을 하다가 온갖 음식 냄새가 몸에 영영 배어버려 건 아닐까. 꺼림칙한 기분에 봉지를 몸에서 최대한 떨어뜨렸다.
음식을 문 앞에 내려놓고 앱에 접속해 ‘배달 완료’ 탭을 눌렀다. 휴대폰 화면 한가운데에 황금색 동전이 펑 터지며 라이더 계정에 포인트가 적립되었다. 눈앞의 엉성한 반짝임에 헛웃음이 나왔다. 악착같이 돈을 버는 고등학생에게 보내는 엉성한 격려 같아서.
*
두 번째 배달 식당인 중국집에 가던 중 엄마한테 톡이 왔다.
‘딸 엄마 늦으니까 저녁 혼자 먹고 있어~ 이따 출발할 때 연락할게~~^^’
서울까지 갔으면 당연히 늦을 줄 알고 있었다. 밤까지 엄마의 눈치를 보지 않고 배달을 뛸 수 있는 흔치 않은 기회다. 특히 지금 같은 방학 때 엄마의 한나절 외출은 듣던 중 반가운 소식이었다. 동화 작가인 엄마의 출퇴근 시간은 유동적이라 배달 일을 할 때 들키지 않으려면 엄마의 스케줄을 확인해야 했는데, 그건 늘 은근한 스트레스였다. 그렇지만 한창 공부에 매진해야 할 열아홉의 나이에 아르바이트로 시간을 허비하는 줄 알면 엄마가 무너져버릴지도 모르기 때문에 조심해서 행동할 수밖에 없다.
엄마는 돈이 없어 학원을 보내주지 못해 자주 미안해하지만 사실 그럴 때마다 더 미안한 사람은 나다. 성적이 낮은 이유는 내가 노력하지 않았기 때문인걸. 나도 내 인생이 어떻게 될지 모르겠다. 한 가지 확실한 게 있다면 성인이 되자마자 아르바이트를 하며 모은 돈으로 독립을 하겠다는 것. 엄마와 나는 좀 떨어질 필요가 있다. 엄마도 자유롭게 살아야지. 나한테 못 해준 걸 의식하지 말고. 연애도 하고, 글도 더 열심히 쓰고, 행복하게.
중간에 편의점에서 삼각김밥과 컵라면으로 끼니를 해결하고 배달 30건을 채우니 저녁 9시였다. 하루 동안 9만 원이라는 최고 기록을 경신하고 집으로 돌아왔다. 집안에는 어둠이 깔려 있었다. 찬 물로 씻고 침대에 눕자 종아리가 터질 듯이 욱신거리며 피로가 몰려왔다. 한창 잠에 취해 있을 때 현관 도어락 소리가 들렸다.
“딸, 자고 있어? 엄마가 좀 늦었지.”
나는 눈을 감은 채 어어, 대강 대답했다. 보통의 엄마 같았으면 깨우지 않았을 텐데, 엄마가 한 번 더 나를 불렀다.
“서윤아 나와 봐. 얘기할 게 있어.”
*
비몽사몽간에 거실로 나가니 소파에 앉아 있던 엄마가 벌떡 일어났다. 엄마 옆에 처음 보는 단발머리의 여자아이가 앉아 있었다. 살집 없이 깡 마른 몸집 때문에 소파가 훨씬 넓어 보였다. 여름밤의 풀벌레 소리가 나직이 울려 퍼졌다. 내가 지금 꿈을 꾸고 있는 건가……
여자아이가 나를 보고 꾸벅 인사했다. 엄마가 아이의 어깨에 손을 올리며 말했다.
“서윤아 인사해. 한여명이라고 해. 엄마 초등학교 동창 딸이야. 초등학교 3학년이고.”
나는 여명에게 고개를 살짝 끄덕였다.
“이 시간에 애를 왜 데려온 거야?”
“그게, 여명이 엄마 아빠 두 분 다 사고로 돌아가셨어. 당분간 우리 집에서 함께 지낼 거야. 동생이라고 생각하고 잘 돌봐줘. 서윤아, 부탁해.”
갑자기 동생이라니. 눈앞에서 세상의 모양이 이상하게 변하고 있었다. 이게 무슨 상황인지 따져 묻고 싶었지만 부모님을 잃은 어린애 앞에서 차마 그럴 수가 없었다. 애원하는 눈빛으로 쳐다보는 엄마와 달리 여명은 고개를 숙이고 입술을 꼭 깨물었다. 차분한 상체와는 대비되게 아이의 다리가 달달 떨렸다. 나는 아무 말도 하지 않고 방으로 들어갔다.
여명이 씻으러 가자 엄마가 내 방문을 두드리고 들어왔다. 엄마는 책상 의자에 앉아 변명을 늘어놓기 시작했다.
“서윤아 미안해. 장례식장에서 여명이 이모들이 서로 그 애를 데려가지 않으려고 미루는 거야. 그 이모들도 참 못됐지. 어떻게 애 앞에서 그런 내색을 할 수가 있니. 그 어린애가 무슨 잘못이 있다고. 서윤아, 사람 한 명 구하는 셈 치고 잘 좀 돌봐주면 안 될까? 응? 부탁해.”
엄마에겐 착함이 무기이자 족쇄다. 상대를 곤란하게 만들면서 입까지 막아버리는 그 패턴이 지긋지긋했다.
“아니 쟤가 무슨 유기 동물이야? 갑자기 데려와서 잘 돌봐주라니. 엄마 혼자 사는 것도 아니고 내 의견도 물어봐야 하는 것 아니야?”
엄마는 할 말이 없는지 잠자코 듣기만 했다.
“그렇게 착한 일 하고 싶으면 엄마나 해. 나까지 같이 끌어들이지 말고. 나는 쟤를 내 동생이라고 생각 안 해. 우리 집에서 재워주는 건 엄마 마음대로 해. 근데 내 도움은 기대하지 마.”
나는 보란 듯이 홱 돌아누웠다. 뒤통수에 끝까지 나긋한 엄마의 음성이 닿았다.
“딸, 미안해. 네 마음 알 것 같아……. 잘 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