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명(2)

1부. 서윤

by 소냐

2.


혼돈의 한가운데서도 잠은 잘 왔다. 다만 늘 똑같이 되풀이되던 악몽을 꾸었을 뿐. 먼지 한 톨 없는 넓은 집 현관에 엄마와 아빠가 서있고, 나는 2층 난간에 매달려 그들을 지켜본다. 아빠가 떠나려고 하자 엄마가 아빠의 팔을 붙잡고 막아선다. 아빠는 엄마의 손을 살며시 내려놓고 발소리도 없이 유유히 사라진다. 엄마는 그 자리에 붙박여 통곡을 한다. 나는 엄마의 눈물이 마룻바닥에 떨어질까 노심초사하며 엄마를 부르려 하지만 뜻대로 입이 움직여지지 않는다. ‘엄마’라는 말은 소리가 되어 입 밖으로 나가지 못한다.


끝없이 추락하는 기분 나쁜 느낌과 함께 눈이 떠졌다. 머리카락과 옷이 땀으로 다 젖어 있었다. 집안은 공기마저 멈춘 듯 잠잠했다. 거실로 나가 보니 엄마는 여명에게 방까지 양보하고 소파에서 모로 누워 잠들어 있었다. 어제 여명을 우리 집에서 재워주는 건 엄마 마음이라고 했던 게 후회가 됐다. 그냥 내보내자고 강하게 말할걸. 나는 닫힌 안방 문을 바라보다 주방에서 그릇을 꺼내 일부러 시끄럽게 시리얼을 부었다. 엄마가 잠에서 깼다.

“딸, 언제 일어났어?”

“방금.”

나의 비딱한 대답에도 아랑곳하지 않고 엄마는 같이 시리얼을 먹겠다고 하며 맞은편에 앉았다. 심지어 큰 소리로 여명도 불렀다.

“여명아, 일어났으면 같이 시리얼 먹어.”


여명이 무거운 발걸음으로 나와 엄마의 옆자리에 앉았다. 어제는 경황이 없어 자세히 보지 못했는데 까무잡잡한 피부에 큰 눈이 돋보이는 꽤 예쁘장한 얼굴이었다. 어딘가 모르게 익숙한데…… 생각해 보니 비슷하게 생긴 아역배우가 있었던 것도 같다. 하지만 TV 속 생기 있는 아역배우들과는 달리 무기력하고 공허해 보이는 모습이 영 신경 쓰였다. 나는 시리얼 그릇으로 황급히 시선을 돌렸다. 나마저 동정심에 휩쓸려 버리면 겨우 서 있는 우리 가족의 중심축이 흔들려버릴 수 있으니까.

엄마는 여명의 눈치를 살피느라 어쩔 줄을 몰라했다.

“여명아, 잠은 잘 잤니?”

“몇 시에 일어났어?”

“어제 먼 길 오느라 피곤했지?”

“필요한 거 있으면 이모랑 언니한테 다 말해.”

여명은 앞에 있는 의자를 발끝으로 밀며 ‘네, 뭐’라고 웅얼거렸다. 엄마의 말이 끊기면 의자가 밀리면서 나는 '드르륵' 소리가 더 크게 들렸다. 신경을 예민하게 곤두세우는 소리. 엄마는 할 말이 떨어졌는지, 숨 돌릴 구실이라도 찾는지 화장실에 간다며 자리를 떴다. 나는 엄마가 없는 틈을 타 여명에게 물었다.

“너 전에 우리 엄마 본 적 있어?”

“없는데요. 왜요?”

방금까지의 어눌함은 온데간데없이 또렷한 목소리가 돌아왔다.


“제가 싫어요?”

여명이 나를 똑바로 응시하며 날카롭게 말했다. 싫고 불편한 게 당연한데 솔직하게 말하면 내가 이상한 사람이 되어버리는 이 상황. 여명은 대화에서 우위를 점할 줄 아는 아이다. 그 맹랑함에 말문이 막혔다. 어떻게 대응해야 할지 고민하던 중 화장실에서 변기물 내리는 소리가 났고, 여명은 다시 고개를 떨구었다. 이 아이, 보통이 아니었다. 자리로 돌아온 엄마는 여명과 나 사이의 냉랭한 기류를 알아채고는 얼른 공부하러 가라며 나를 채근했다. 아침을 먹다 말고 가방에 아무 책이나 몇 권 쑤셔 넣어 집을 나왔다. 집에서 쫓겨난 것 같은 기분이 들었다.


*


여명과 함께 산 지도 벌써 일주일이 지났다. 생판 모르는 남과 함께 사는 것은 예상보다 훨씬 까다로웠다. 화장실을 쓰는 사람이 한 명 더 늘어나 겹치는 일이 빈번하게 생겼고 집에서 옷을 함부로 벗을 수도 없으며, 무엇보다도 어색한 공기를 깨기 위해 누군가의 노력이 필요했다. 우리 집에서는 그렇게 노력하는 주체가 언제나 엄마였다. 엄마는 사근사근하고 따뜻하지만 안타깝게도 외향적인 성향은 아니다. 엄마가 지칠 때 나타나는 은근한 그늘은 아무리 애써도 감춰지지 않았다. 밥을 할 때, 소파에 앉아 가만히 책을 읽을 때 알 수 있었다. 여명을 데리고 사는 게 힘에 부친다는 걸.


나는 우리의 삶에 무단으로 침투한 여명의 사소한 행동들이 하나둘씩 거슬리기 시작했다. 그중에서 가장 싫은 건 사람의 눈을 쳐다보지 않고 말하는 습관이었다. 처음 여명이 우리 집에 왔을 때 그 아이가 내내 눈을 내리깔았던 걸 똑똑히 기억한다. 새로운 환경에서 기가 죽어서 그럴 거라 생각했는데 그냥 그 애의 습관이라는 걸 같이 살며 알게 되었다. 예를 들어 어제 엄마가 여명에게 혼자 있는 동안 무엇을 하는지 물어볼 때 여명은 바닥에 시선을 고정한 채로 대답했다. 손톱가에 일어난 거스러미를 뜯으며.

“그냥, 시간 보내요.”

여명이 이렇게 반응을 보일 때 엄마가 무안해하는 꼴을 보기 싫었다. 나는 이런 부류의 사람을 잘 견디지 못한다. 다른 사람의 기분 따위 생각하지 않는 사람, 본인이 세상의 중심인 사람. 우리 아빠가 그런 사람이었기 때문이다. 여명이 우리 집에 들어온 뒤 아빠와 함께 묻어 두었던 감정이 다시 고개를 들었다.


너무 어릴 때라 아빠에 대한 기억이 선명하지는 않지만, 그리고 왜곡되지 않았으리란 보장은 없지만 지금까지 남아 있는 기억의 파편들이 있다. 가령, 아빠가 엄마의 말을 무시하는 모습 같은 것.

아빠가 출판사 사람들과 술을 많이 먹고 늦게 들어온 날이면, 엄마는 아빠에게 왜 이렇게 술을 많이 마셨냐며 특유의 나긋한 말투로 핀잔 아닌 핀잔을 주곤 했다. 그럴 때면 아빠는 엄마가 없는 것처럼 행동했다. 미안하다는 말은 고사하고 피곤하니까 자기를 좀 내버려 두라는 말도 하지 않고, 엄마를 피해 안방이나 화장실로 직행했다. 그럴 때마다 엄마는 서글픈 기색을 보이곤 했는데, 그 장면은 내 어린 시절의 몇 안 되는 기억 중 하나이다.

아빠를 마지막으로 본 날, 나는 제대로 된 인사도 하지 못했다. 나는 일부러 방에 들어가 있지 않고 아빠가 짐을 싸고 집을 나서는 내내 거실을 서성거리며 나에게 이 상황에 대해 설명해 주길 기다리고 있었다. 그런데 아빠는 나를 외면하고 분주하게 돌아다녔다. 마지막으로 집을 나가기 직전 바닥만 보며 '잘 있어' 한마디 남기곤 도둑고양이처럼 홀연히 떠났다. 눈을 맞추지 않는 건 나에게 있어서 무례함을 넘어 상대방의 존재를 지우는 행위이다.


*


아이러니하게도 여명의 견디기 힘든 또 다른 지점은 바로 나에 대한 지나친 관심이었다. 우린 전혀 관계가 없는 남이니 피차 서로 신경을 끄고 모른 체하면 좋을 텐데, 여명은 틈이 날 때마다 내 방문을 두드리고 말을 걸었다. 그 한마디 한마디가 나의 신경을 긁었다.

“언니 공부 잘해요?”

한 날은 여명이 순수한 체하며 질문을 했다.

“아니. 왜.”

퉁명스럽게 받아 치자 여명은 히죽 웃었다.

“아 궁금해서요. 언니 인서울 못하겠네요 그럼.”

내가 너 같은 애한테도 그런 말을 들어야겠니 싶어 울컥했지만 흥분하면 지는 것을 알기에 싸늘하게 답했다.

“어 맞아. 시비 걸지 말고 가.”

여명이 나를 찾아올 때마다 내 속을 어떻게 뒤흔들어야 되는지 알고 있는 것 같았다. 이 아이는 사람의 열등감과 수치심을 건드릴 줄 알았다. 여명은 나의 성적이 낮은 것에 대해, 친구가 없는 것에 대해 명랑하게 물었고 나는 그 앞에서 속수무책으로 당할 수밖에 없었다. 엄마에게 알려 봤자 여명이 내 관심을 받고 싶어서 그러는 거니 좀 참으라고 말할 것이 분명하기 때문에, 나는 여명이 확실히 선을 넘을 때까지 기다렸다. 그땐 엄마에게 여명을 내보내자고 제대로 말해볼 수 있을 것이다. 화를 삼키고 여명이 원하는 짜증스러운 반응을 보여줄 때마다 아이의 죽은 듯한 눈동자는 생생하게 반짝였다. 사람이 철저히 영악한 동시에 한없이 여릴 수도 있다는 걸 이 아이를 보며 알게 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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