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부. 여명
2.
이모의 집은 범죄 드라마 속 현장 같았다. 가느다란 체구, 하늘하늘한 걸음의 이모와는 어울리지 않는 으스스한 아파트. 그러고 보니 나는 고등학교 3학년인 딸이 한 명 있는 것 외에 이모에 대해 아는 것이 없었다. 이모가 앞장서서 건물 안으로 들어갔다. 엘리베이터 앞의 주황색 전등은 꺼질 듯 희미했고, 벽에 달린 거울은 손때와 먼지로 뿌옇게 얼룩져 있었다.
이모네 집에서 내가 무슨 일을 당해도 아무도 구해줄 사람이 없었다. 엘리베이터 문이 닫히자 그 생각이 현실이 된 듯 섬뜩해졌다. 칸이 더 좁아지는 것 같았고 숨이 막혀왔다. 나는 모서리에 서서 양손으로 엘리베이터의 봉을 잡고 몸을 뒤로 기댔다. 괜찮냐고 묻는 소리가 웅웅 울리며 탁하게 들렸다. 숨이 잘 쉬어지지 않는다고 하자 이모가 내 손을 잡아 주었다. 이모의 손을 꽉 쥐고 눈을 감자 엘리베이터가 11층에서 멈췄다.
이모와 나는 엘리베이터에서 내렸다. 이모의 집은 통로 끝이라 그곳까지 걸어가는 짧은 거리가 영원 같았다. 복도 끝에는 빨간 자전거 한 대가 세워져 있었다. 다른 집들은 복도에 쓰레기 봉지나 종이 박스를 놓던데, 칙칙한 쓰레기들 사이에서 오래된 빨간 자전거만 홀로 빛났다. 그 자전거를 보니 이상하게 숨이 서서히 돌아왔다. 이곳에도 사람들이 숨을 쉬며 살고 있다는 신호 같았다.
*
이모가 비밀번호를 누르고 문을 열었다. 집 안은 어두웠다.
“딸 자고 있어? 엄마가 좀 늦었지.”
서윤 언니는 깊게 잠들었는지 이모의 말에 대답도 하지 않았다. 이모를 따라 선뜻 들어가지 못하고 신발장에서 머뭇거렸다. 이모가 들어오라고 손짓했다. 나는 운동화를 벗고 이모를 따라 집 안으로 들어갔다.
불을 켜자 거실이 또렷해졌다. 좁지만 아파트 외관을 보고 예상했던 것보다는 훨씬 쾌적했다. 가죽이 군데군데 벗겨진 낡은 황토색 소파가 한눈에 들어왔다. 나는 소파에 앉아 천천히 그곳을 둘러보았다. 맞은편엔 밝은 나무 책장과 검은색 스탠드가, 거실 한가운데에는 유리가 덮인 나무 탁자와 꽃무늬 방석이 놓여 있었다. 가구들은 모두 이모처럼 소박하고 포근한 분위기를 뿜어냈다. 그리고 탁자 위에 누구의 것인지 모를 노트북이 올려져 있었다.
이모가 서윤 언니를 한 번 더 불렀다.
“서윤아 나와 봐. 얘기할 게 있어.”
잠에서 덜 깬 서윤 언니가 방문을 열고 터벅터벅 걸어 나왔다. 큰 키와 대충 걸친 반팔티, 헐렁한 추리닝 바지, 가슴까지 내려오는 길고 푸석푸석한 머리가 눈에 띄었다. 서윤 언니는 이모와 달리 어딘가 모르게 거칠고 듬직한 느낌이 났다. 왠지 멋있었다. 그게 언니에 대한 첫인상이었다.
내가 인사를 하자 언니의 눈가에 순간 당황이 스쳤지만 곧 아무 감정도 없는 얼굴로 돌아왔다. 이모가 말했다.
“서윤아 인사해. 한여명이라고 해. 엄마 초등학교 동창 딸이야. 초등학교 3학년이고.”
“이 시간에 애를 왜 데려온 거야?”
날 선 질문에 입이 바싹 말랐다. 이모가 대답했다.
“여명이는…… 엄마 아빠 두 분 다 사고로 돌아가셨어. 당분간 우리 집에서 함께 지낼 거야. 동생이라고 생각하고 잘 돌봐줘. 서윤아 부탁해.”
언니가 나를 거절할까 봐 초조해졌다. 얼마간의 정적이 흘렀다. 언니는 대답을 하지 않고 방에 들어갔다. 나는 소파에 앉아 언니의 얼굴을 그려 보았다. 화가 난 걸까, 짜증이 난 걸까, 아니면 그저 얼떨떨한 걸까. 어느 쪽이든 나를 반기지 않는 것만은 분명했다.
이모가 괜찮다고, 피곤할 텐데 씻고 오라고 상냥하게 이야기했다. 나는 세면도구를 챙겨 화장실로 들어갔다. 눈물이 나지 않는 나 자신에게 놀랐다. 장례식장에서 했던 생각이 다시 떠올랐다. 슬픔을 반복하다 보면 잊히긴 하는구나. 하지만 이제는 비가 오는 대신 찬바람이 불었다. 따뜻한 물을 끼얹어도 마음속까지 데울 수는 없었다.
샤워를 마치고 나오자 서윤 언니의 방에서 말소리가 났다. 하지만 내용은 들리지 않았다. 그냥 지나치려고 했지만 발걸음이 언니의 방 앞으로 향했다. 나는 아무도 모르게 방문에 귀를 붙였다.
*
침대에 누웠는데 잠이 오지 않았다. 눈을 감으니 이모와 대화하는 언니의 퉁명스러운 기색이 떠올랐다. 나를 동생으로 받아들이지 않겠다는 단호함을 어떻게든 꺾어주고 싶었다. 언니를 끊임없이 귀찮게 해서라도 내가 이 집에서 함께 사는 사람이라는 걸 똑똑히 알려줄 것이다.
서울에서 다니던 학교에서 써왔던 방법이 있다. 누군가 나를 대놓고 무시하거나 나의 상처를 놀림거리로 삼으면 나도 그 사람의 아픈 곳을 찌르는 것이다. 학교에서 어떤 아이가 다른 애들이 보는 앞에서 우리 엄마 아빠를 입에 올리며 나를 조롱한 적이 있었다. 그때 나는 당황하지 않고 그 아이의 중심을 꿰뚫는 한마디를 던졌다.
“너는 아무리 노력해도 나만큼 잘하는 게 없잖아. 미술학원을 아무리 다니면 뭐 해. 학원 안 다니는 내가 너보다 훨씬 잘하는데.”
그 애는 얼굴이 새빨개져서는 교실을 나갔다. 그 후로는 내 앞에서 대놓고 엄마 아빠 이야기를 하는 아이가 없었다. 여전히 뒤에서 속닥이긴 했지만 아무도 나를 만만하게 보지 않았다. 그것만으로도 만족했다.
이모네 집에 도착한 다음 날, 아침 일찍 눈이 떠졌다. 휴대폰으로 좋아하는 아이돌의 영상을 틀었다. 언니들은 예능 프로그램에서 여섯 명 중 한 명도 빠짐없이 환하게 웃었는데, 진행자가 재미없는 이야기를 해도 다른 멤버가 선 넘는 농담을 날려도 웃음은 깨지지 않았다. 언니들이 너무 열심히 노력하는 것 같아 마음이 불편했다. 나는 종합장에 회색 색연필로 언니들의 우울한 모습을 그렸다. 눈동자를 반짝이는 빛 없이 회색으로 가득 메우고 입꼬리는 살짝 내려 그렸다. 그러다 마지막 여섯 번째 언니를 그리던 중 색연필이 똑, 부러졌다.
짜증이 밀려와 그림 위에 회색 색연필을 마구 뭉갰다. 색연필과 애써 그린 그림이 모두 망가졌지만 속이 시원했다. 점점 신나서 손에 힘을 잔뜩 주고 더욱 거칠게 회오리를 그리고 있었는데 이모가 나를 불렀다.
“여명아, 일어났으면 같이 시리얼 먹어.”
자는 척을 할까 고민하다 배가 고파 방에서 나갔다. 식탁엔 이모와 서윤 언니가 앉아 있었다. 두 사람은 어제와 달라 보였다. 다정한 척 웃는 이모, 시선을 피하는 언니. 모두가 나를 피곤해하는 것 같았다.
어색한 공기에서 시리얼을 먹다 이모가 화장실에 간 사이 서윤 언니가 나에게 말을 걸었다.
“너 전에 우리 엄마 본 적 있어?”
무슨 의도로 한 말인지 모르겠지만 순순히 대답해 주기가 싫었다. 나는 어른들이 가장 싫어하는 두 글자를 붙여 기분 나쁘게 답했다.
“없는데요. 왜요?”
예상치 못한 반응에 언니가 벙찐 채로 굳어버렸다.
“제가 싫어요?”
언니의 말문이 막혔다. 이모가 화장실에서 돌아온 후 나는 다시 불쌍한 척, 얌전한 아이가 되었다. 이모에게 등 떠밀려 도서관으로 가게 된 언니는 꽤나 억울해 보였다. 그날 허를 찌르는 날카로운 질문이 언니에게 잘 먹힌다는 사실을 알게 됐다. 나보다 9살이나 많은 언니지만 생각보다 쉽게 흔들린다는 사실 또한.
*
언니와 함께 살면서 나는 끊임없이 언니를 관찰했다. 원래 상대를 제대로 흔들기 위해서는 상대에 대해 잘 알아야 하는 법이다. 그런데 언니는 방학이어도 거의 도서관에 있기 때문에 나와 마주칠 일이 별로 없다. 그래서 언니에 대해 파악하는 데 시간이 꽤 걸렸다.
나는 서윤 언니를 관찰하고 색연필로 그렸다. 약간 구부정한 자세에 생각이 투명하게 비치는 표정, 정돈되지 않은 긴 머리카락을 검은색 고무줄로 대충 묶은 모습, 밖에 나갔다 들어오면 눈썹 위까지 흘러내리는 땀방울, 그리고 빨갛게 익은 볼. 서윤 언니는 늘 검은색 아니면 흰색을 입었지만, 언니를 생각하면 어쩐지 빨간색이 떠올랐다. 그래서 종합장 속 언니는 언제나 붉었다.
언니는 큰 변화 없이 항상 지쳐 보이는데 이모가 대학이나 성적 이야기를 꺼낼 때마다 얼굴빛이 순식간에 달라졌다. 그게 언니가 제일 싫어하는 주제인 듯했다. 나는 언니의 꿈틀대는 눈썹과 불만스러운 입술을 종합장에 그려냈다. 또 언니를 유심히 지켜보니 언니는 방학인데도 늘 도서관만 오갔다. 친구나 남자친구를 몰래 만나러 나간다면 적어도 저렇게 대충 입고 나가진 않을 거다. 아마 언니는 친구가 없을 것이다. 나는 종합장에 홀로 웅크리고 있는 언니도 그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