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부. 여명
1.
나는 다 들었다. 그날 밤 서윤 언니와 이모가 하는 이야기를.
쟤가 무슨 유기 동물이야?
나는 쟤를 내 동생이라고 생각 안 해.
서윤 언니의 그 말이 귓속에서 맴돌았다. 나는 정말로 그들에게 유기 동물처럼 보였을지도 모른다. 이모와 언니는 내가 방에서 뭘 하든 별로 관심 갖지 않았으니까. 심장이 점점 쪼그라드는 것 같았다. 딱딱해진 덩어리가 안쪽을 찌르는 듯, 가슴이 쿡쿡 쑤셨다. 장례식장에서 느꼈던 그 낯선 통증처럼.
*
“정말 휑하네.”
“이렇게 조용한 장례식은 또 처음이여.”
“애는 불쌍해서 어쩐디야.”
구석에서 상 차리는 아줌마들의 소곤거림이 들렸다. 작은 이모와 큰 이모는 드문드문 찾아오는 손님들을 맞으며 어색하게 웃었다. 바쁠 일도, 울 일도 없는 장례식 같았다.
나는 장례식장 홀 구석 자리에 앉아 못 들은 척 색연필로 그림을 그렸다. 아줌마들의 말은 무인도에서 듣는 육지의 목소리같이 멀게만 느껴졌다. 갈색 색연필을 꺼내 주변에 있는 식탁과 의자를 그렸다. 그리고 검은색으로 구석에 앉아 있는 나를 작게 그렸다.
엄마는 이모의 말처럼 하늘 어딘가에서 나를 지켜보고 있을까. 엄마는 어디에, 어떤 색으로 그려야 하지. 검은색으로 그려진 내 위에 파란색으로 엄마를 그렸다. 이게 아닌데. 그 위에 하늘색으로 다시 덧그렸다. 이것도 아니야. 옆 자리에 하얀색으로 엄마를 그렸다. 하얀 도화지 위에 검은 나, 그리고 눈에 보이지 않게 흰 엄마.
사고가 난 당일, 집에 혼자 있을 때 누군가 다급하게 문을 두드렸다.
“여명아 큰 이모야. 문 좀 열어줘.”
낯선 어른을 함부로 들이면 안 된다고 배웠지만 이번엔 문을 꼭 열어야 할 것 같았다. 내가 문을 열어주자 큰 이모가 허둥거리며 들어왔다. 검은색 티셔츠 위에 짙은 회색 조끼를 걸친 큰 이모는 엄마보다 체구가 훨씬 컸지만, 뾰족한 코와 얇은 입술이 엄마와 똑같았다.
“엄마 아빠 병원에 있으니까 이모랑 같이 병원으로 가자.”
큰 이모가 다 갈라진 목소리로 말했다. 자세히 보니 눈가에 화장이 번져 얼룩덜룩했다.
“네?”
나는 엄마 아빠에게 끔찍한 일이 벌어졌다는 걸 직감했다.
“너도 필요한 것 있으면 얼른 챙겨. 가면서 설명해 줄게.”
큰 이모가 내 방에 들어가 투박한 손으로 속옷과 옷가지들을 챙겼다. 처음 보는 어른이 다짜고짜 내 짐을 챙기니 당황스러웠지만, 나도 서둘러 배낭 안에 종합장과 색연필을 넣었다.
차에서 큰 이모는 엄마 아빠가 대형 화물 트럭에 치여 죽었다고 돌려 말했다. 엄마 아빠가 함께 하늘나라에 갔다고, 그곳에서 나를 지켜볼 거라고. 그 말이 묵직한 돌덩이처럼 나를 짓눌렀다. 아프기보다 숨이 막혔다.
엄마는 살아있을 때 이모들과 연락을 끊었다. 나는 이모들이 엄마를 버린 사람인 줄로만 알았다. 엄마가 죽고 나서야 뒤늦게 찾아오는 이모들을 이해할 수 없었다.
입관을 마친 이모들과 이모부는 어른들끼리 이야기할 시간이 필요하니 잠깐 들어가서 쉬고 있으라고 했다. 나는 어른들이 내 이야기를 하려는 것을 바로 눈치채고 방으로 터덜터덜 들어갔다. 그때부터였던 것 같다, 가슴이 쑤시기 시작한 건.
방 안에서는 어른들의 대화가 들리지 않았다. 멍하니 벽을 쳐다봤다. 엄마는 정말 나를 하늘나라에서 지켜보고 있을까? 그런 곳이 있긴 한 걸까? 나를 보면서 엄마는 울고 있을까? 그럼 아빠는? 아빠는 차마 나를 보기가 미안해서 등을 돌리고 있을까? 끝없이 떠오르는 질문 속을 헤매다 깜빡 잠이 들었다.
작은 이모가 홀에 손님이 오셨다며 나를 깨웠다. 자면서 눈물을 흘렸는지 눈이 잘 안 떠졌다. 나는 단단하게 말라붙은 눈곱을 떼고 홀로 나갔다. 검은색 블라우스를 입은 고운 아주머니가 나를 안쓰럽게 보며 인사를 건넸다.
"얘가 여명이에요, 성민씨 딸."
작은 이모가 나를 소개하자 큰 이모가 내 옆으로 다가오며 말했다.
“여명아 뭐 해, 인사해야지. 아빠 친구분이셔.”
“안녕하세요.”
나는 어색하게 고개를 숙였다. 아주머니는 뭐 좀 먹으라고 하며 나에게 콩백설기랑 캔음료를 내밀었다. 이모들은 자연스럽게 아주머니와 한 테이블에 앉았고, 나도 그 옆에 슬쩍 다가갔다. 혼자 방에 들어가 봤자 엄마 생각만 나니까.
작은 이모가 멀리서 오느라 고생하셨다며 대화를 열었다. 여자 어른들은 이미 다른 손님들에게 여러 번 했던 이야기를 아주머니에게 또다시 설명했다. 일을 하던 도중 경찰에게서 전화가 왔던 것부터 시작해서 자세한 사고 상황과 연락이 두절된 동생을 여기서 보게 되었다는 넋두리까지. 순서는 살짝 달랐지만 내용은 똑같았다. 문득 궁금해졌다. 왜 저렇게 똑같은 이야기를 반복할까? 슬픔은 자꾸 말하면 옅어지는 걸까?
대화는 자연스럽게 홀로 남은 나에 대한 내용으로 흘러갔다.
“여명이는 이제 어디서 살게 되는 거예요?”
아주머니가 물었다. 지금 우리 가족의 분위기를 읽지 못한 게 확실했다. 작은 이모와 큰 이모의 시선이 부딪혔다. 큰 이모가 얼버무리며 대답했다.
“아, 함께 고민 중이에요. 여명이가 가장 편안하게 자랄 수 있는 곳으로 가야죠…….”
작은 이모가 덧붙였다.
“맞아요. 성장에 정말 중요한 시기잖아요. 신중하게 생각해야죠.”
아주머니의 눈이 휘둥그레졌다.
“아직 정해지지 않았다니요?”
큰 이모의 입매에서 친절한 웃음기가 사라졌다. 이모는 냉랭하게 설명했다.
“아직 장례식이 끝날 때까지 시간이 좀 남았고, 그때까지 결정하면 되죠. 아시다시피 그렇게 간단하게 결정될 문제가 아니니까요.”
이 대화를 듣는 동안 내가 죄인이 된 것 같았다. 너무 불쌍해서 모두를 곤란하게 만드는 죄. 모두가 나를 데려가지 않으려고 서로 미루고 있다는 걸 느낄 수 있었다. 그런데 어른들은 내가 너무 불쌍하기 때문에 그 말을 대놓고 하지도 못한다. 눈앞이 캄캄하게 흐려지며 가슴이 옥죄어왔다.
“여명아 괜찮니?”
아주머니가 걱정스레 묻자 이모들이 동시에 나를 쳐다봤다.
“그러게, 얼굴이 하얘졌네.”
“여명아, 괜찮아?”
이모들의 말소리가 멀리에 있는 것처럼 아득하게 들려왔다. 나는 겨우 입을 열었다.
“가슴이 답답해요. 숨이…… 잘 안 쉬어져요.”
그 후의 기억은 마치 빨리 감기를 한 것처럼 흘러갔다. 아주머니가 나를 데리고 소아과에 갔고, 그곳에서 당장 큰 이상은 없지만 상태가 계속되면 정신과에 가보라는 진단을 받았다. 다시 장례식장에 돌아와서 이모들과 아주머니가 길고 진지한 대화를 한 끝에 나는 배낭 한 개를 매고 장례식장에서 나오게 되었다. 아주머니가 내 가방을 가져가 자기 어깨에 메면서 말했다.
“이제 우리 집에서 지낼 거야. 이모라고 불러.”
입술을 오므려 ‘이모’라고 따라해 보았다. 둥글게 말린 입술 사이로 부드러운 소리가 새어 나왔다. 아직은 낯설었지만 '엄마'와 비슷한 소리를 가진 그 말이 싫지 않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