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명(7)

3부. 지연

by 소냐

3부. 지연


1.


여명은 한참을 울었다. 세상을 전부 잃은 것처럼 서럽게. 여명의 울음은 암담하고 끔찍한 세상을 향한 절규였다. 그 앞에서 나는 어찌할 줄을 몰라 가만히 아이의 어깨를 쓸었다. 이 비극은 어디에서부터 시작되었을까, 우리는 어디로 흘러가고 있는 걸까. 먹먹한 물음이 머릿속을 어지럽혔다.

자전거 바퀴를 찢은 것은 자신을 받아주지 않는 서윤을 향한, 더 넓게는 우리 가족과 세상을 향한 여명의 적개심의 표현이라는 것을 알고 있었다. 하지만 여명은 집에 돌아가고 싶다고만 할 뿐, 자신의 속마음은 이야기하지 않았다. 나는 여명에게 마음을 꺼내놓는 것을 강요하는 대신 함께 자전거 수리소에 갔다. 함께 책임을 지겠다는 나만의 표현 방식이었다. 아이는 수리된 자전거를 끌고 집으로 돌아오는 길에 서윤에게 직접 사과하겠다며 나지막이 말했다. 엄중한 공기가 아이와 나의 어깨를 짓눌렀다.


서윤은 밤이 늦어서야 터덜터덜 들어왔다. 방석에 앉아 노트북 화면을 멍하니 바라보고 있던 나는 비밀번호 누르는 소리에 얼른 일어나 서윤을 맞았다. 여명의 공범이 된 것처럼 안절부절못하며 딸의 얼굴을 살폈다.

“딸, 왔어? 밥은 먹었고?”

서윤은 경멸의 눈빛을 보내더니 나를 그대로 지나쳐 자기 방으로 들어갔다. 모두 내 탓이다. 딸의 편을 들어주지 않은 내 탓, 아무런 계획 없이 여명을 데려온 내 탓, 남편과 이혼하고 딸에게 충분한 애정을 쏟지 못한 내 탓.


*


글은 내게 유일한 탈출구였다. 현실에서 나는 끊임없이 말라가고 쪼그라들었다. 홀로 자식을 키우는 엄마로서, 안정적이지 않은 수입을 가진 동화책 작가로서, 계약직 글쓰기 교사로서 자신감이 부족해질 때면 사랑과 정의가 항상 승리하는 동화 속으로 숨어버렸다. 우습게도 동화 속에서 나는 다시 피어났다. 그리고 다시금 세상을 살아볼 용기를 얻었다.

처음부터 살기 위해 동화를 쓴 건 아니었는데. 나의 동화가 누군가에게 건강한 영향을 주기를 바라는 마음에서, 자선의 마음에서 동화를 쓰던 시절이 있었다. 나는 남들보다 더 행복하진 않더라도 보통의 행복과 보통의 만족을 누리며 살아가던 초등학교 교사였다. 처음 책을 출간하던 순간, 너무 기쁜 나머지 사랑까지 해버린 게 문제였던 걸까. 내 책의 담당 편집자였던 성민씨와 나는 책에 대해 이야기하는 공적인 사이에서 서로의 일상과 취미에 대해 말하는 사이로, 그리고 은밀한 삶의 고민과 미래 계획을 나누는 사이로 발전했다. 우린 결혼했고, 그때까지만 해도 인생이 내 편인 줄 알았다. 성민씨는 동화 작가로서의 삶을 전폭적으로 지지해 주었다. 나는 그의 응원에 힘입어 교사를 포기하고 전업 작가가 되었다. 그 달콤한 선택이 불러올 쓰라림은 눈치채지 못하고.

서윤이 태어나고 성민씨는 가정에 무관심해졌다. 말을 빨리 배운 서윤이 가장 많이 하는 말은 '아빠 언제 와?'와 '아빠 어디 가?'였다. 그때마다 '서윤아 아빠 금방 오실 거야' '아빠 일 나가셨어. 서윤이랑 엄마를 위해 열심히 일하고 계셔'라며 내가 믿고 싶은 대로 답했다. 서윤과 나는 하염없이 성민씨를 기다렸다. 그 결과 그는 우리를 떠났다. 다른 여자가 생겼다는 건 뒤늦게 알게 된 사실이지만. 우리의 기다림은 그렇게 허망하게 끝이 났다.

성민씨가 떠난 사건은 지울 수 없는 상처를 남겼지만, 인생에서 누구나 한 번쯤 겪는 사고 내지는 재해라고 생각했다. 그건 참을 수 있었다. 나를 뒤흔드는 결정적인 어려움은 돈이 없다는 거였다. 우리의 결혼생활은 성민씨의 경제력 위에 쌓아온 것이기 때문에, 이혼 소송에서도 나는 하루가 다르게 커가는 딸을 뒷받침해 줄 만큼 충분한 돈을 받지 못했다. 그제야 깨닫게 되었다. 성민씨와의 헤어짐이 하나의 사건이 아니라 남은 인생의 전제라는 사실을. 그가 없다는 건 우리 가정을 지탱할 경제력이 사라졌다는 뜻과도 같으니까.

다시 교직으로 돌아가기 위해 임용 시험 교재를 사서 한 달 정도 공부를 했었다. 안타깝게도 어린아이를 키우면서, 잡다한 일을 하면서 임용 시험까지 공부하는 건 사람의 한계를 넘어서는 일이었다. 눈이 짓무르도록 울며 임용 시험 교재를 버린 날, 나는 비로소 안정과는 거리가 먼 내 팔자를 받아들였다. 하지만 딸이 나의 팔자에 물들어가는 것을 보면 마음이 미어졌다. 서윤이 내 눈치를 보며 도서관에 간다고 거짓말하고 아르바이트를 하는 걸 다 알고 있었지만, 엄마로서 서윤을 위해 해줄 수 있는 게 없어 입을 다물고 모르는 체했다.


*


나에게 책임을 질 기회가 생긴 건, 그날 장례식장에서였다. 제 몸에 맞지 않는 상복을 헐렁하게 걸치고 제 나이에 맞지 않는 슬픔을 머금고 있던 그 아이, 친척들마저 등을 돌려 한껏 움츠러든 그 아이에게 떡 한 덩이 쥐어 주기만 할 순 없었다. 이 아이를 외면하는 순간 지금껏 보여왔던 힘없고 무기력한 모습이 진짜 나로 굳어져 버릴 것만 같아 나는 여명의 손을 잡았다. 여명을 위해서가 아닌 나를 위한 이기적인 선택이었다.

한 생명을 보살피는 과정은 쉽지 않았다. 상처받은 아이에게 어떻게 다가가야 할지, 처음 보는 아이를 어떻게 돌보아야 할지 몰라 그저 밥만 열심히 해 먹였다. 거실에서 동화를 쓰면서도 머릿속으론 무엇을 먹일지 생각하고 있었다. 좋은 음식을 해먹이기 위해 그렇게 귀찮아하던 장을 보고, 정성껏 재료를 손질하고, 근사한 상을 차리고. 밥을 먹으며 아이가 알아서 따뜻함을 느끼길 바랐던 것은 나의 욕심이었을까.

이런 노력에도 불구하고 여명의 눈빛과 얼굴색, 말과 행동은 전부 탁해져만 갔다. 결국 여명이 자전거를 망가뜨린 것을 고백했을 때, 병원에 데려가야 하나 고민이 되었다. 병원에 가면 아이가 더 나아질까. 자신을 골칫덩어리로 취급해서 내가 병원에 데려가는 것으로 오해하면 어쩌지. 더 이상 돌이킬 수 없을 정도로 오해가 쌓여버리면, 그땐 내가 상황을 바로잡을 수 있을까. 생각이 더해질수록 어깨 위로 부담감이, 두려움이 하나 둘 쌓여만 갔다. 나는 병원을 검색하던 휴대폰을 내려놓았다.


*


금요일, 방과 후 글쓰기 교실이 끝난 후 집에 돌아가는 길에 서윤을 만났다. 정확히는 만난 게 아니라 서윤이 아파트 입구에서 나를 기다리고 있었다. 땀에 젖은 긴 머리를 질끈 묶고, 굳은 표정으로 서 있는 딸이 멀리서부터 눈에 띄었다. 서윤이 드디어 제 감정을 솔직하게 말하려는 게 반갑기도, 여명을 내보내자 하면 어쩌나 불안하기도, 얼마나 힘들었으면 이 숨 막히는 더위 속에서 나를 기다렸을까 싶어 짠하기도 한 마음으로 손을 흔들었다.

지금이 딸의 목소리에 귀를 기울여줄 마지막 기회라고 생각했다. 서윤이 나에게 중요한 이야기를 하는 것이 너무 오랜만이었기에 그 기회를 놓치고 싶지 않았다. 서윤은 나에게 카페에 들어가서 이야기하자고 말했다. 사실 서윤의 얼굴에 적힌 결연함이 그 아이의 마음을 모두 대변하고 있었다.

아파트 상가를 지나가며 한 번도 궁금해하지 않았던 작은 무인 카페에 들어갔다. 벽면을 노랗게 칠하고 창에 흰색 레이스 커튼을 달아둔, 꽤 아기자기하고 조금은 촌스러운 카페. 서윤은 들어가자마자 바로 왼쪽에 있는 키오스크로 아이스 바닐라 라떼를 담았다. 이런 음료를 좋아하는구나, 처음 알게 된 딸의 취향을 곱씹으며 같은 메뉴를 주문했다.

서윤과 나는 2인 테이블에 자리를 잡고 앉았다. 서윤은 할 말이 많아 보였지만, 말들이 엉켜 쉽게 내뱉지 못하는 눈치였다. 어린아이일 때부터 서윤은 답답할 때마다 미간을 잔뜩 구기며 인상을 썼다. 나는 서윤에게 먼저 물었다.

“서윤아 무슨 일인데 그래?”

서윤은 미간을 잔뜩 구긴 채 속에 있는 생각의 매듭을 하나하나 풀어나가는 듯했다. 나는 그 매듭이 다 풀릴 때까지 기다려 주었다. 딸은 입술을 꼭 깨물고는 마침내 결심한 듯 입을 뗐다. 그러고는 머릿속으로 수십 번을 되뇌었을 그 말을 내뱉었다.

“엄마, 여명이 시설로 가는 게 좋을 것 같아.”

“시설로 가다니?”

“보육 시설 있잖아. 내가 찾아봤어. 요즘 시설 옛날 같지 않아. 밝고 깨끗하고 애들도 많지 않아. 우리 집에서 사는 것보다 거기서 사는 게 여명이한테 더 좋을 것 같아. 엄마, 우리 여명이 시설로 보내자."

서윤이 정사각형의 냅킨을 만지작대며 조심스럽게 말했다. 어느 정도 예상했던 말이었지만, 실제로 들으니 가슴이 철렁했다.

“서윤아, 여명이 때문에 많이 힘드니?”

“엄마 지금 내가 힘들어서 걔를 내쫓고 싶어 하는 것처럼 보여?”

서윤의 목소리가 날카로워졌다. 아이는 들고 있던 냅킨을 꼭 쥐어 구겼다.

“엄마는 왜 나만 나쁜 사람 만들어? 여명이를 데리고 왔는데 책임 못 진 건 엄마잖아. 걔가 얼마나 불안하고 화가 나면 내 자전거를 그 지경으로 만들어 놨겠어. 지금 우리가 여명이를 데리고 있는 건 걔한테 전혀 도움이 안 돼. 아니, 오히려 애 정신건강만 망칠 뿐이라고. 엄마도 알잖아.”

끝까지 솔직하게 자기 감정을 이야기하지 못하는 서윤이 안쓰러웠다. 내가 딸의 입을 계속 막아왔구나 하는 죄책감도 함께 느껴졌다.


“서윤아, 엄마는 여명이 상황 말고 네 마음이 궁금해.”

서윤은 공연히 빨대만 저었다. 얼음이 부딪히며 짤랑거리는 소리가 났다. 나는 용기를 내어 딸에게 다시 질문했다.

“여명이랑 사는 게 많이 힘드니?"

서윤은 눈물을 그렁그렁 머금은 채 고개를 끄덕였다. 다 커 보였던 딸이 아직 어린아이라는 걸 체감했다. 내가 이 아이에게 그동안 어떤 짐을 지웠던 걸까. 하지만 이제 와서 여명을 보낼 수 있을까. 두 번씩이나 세상에서 버림받은 그 아이를 밀어낼 수 있을까. 비록 틀린 것일지라도 누군가 해답을 내려주었으면. 하지만 이 문제는 나에게 주어진 것이니 선택은 나만의 몫이었다. 나는 앞에 앉은 딸을 보며 지금이라도 서윤을 위한 선택을 하기로 결심했다. 여명의 이모가 아닌, 선량한 시민이 아닌, 서윤의 엄마가 되자고.

“서윤아, 엄마 봐봐. 여명이는 시설로 보내도록 해볼게. 그런데 당장은 힘들어. 엄마한테도 여명이한테도 시간이 필요해. 너를 힘들게 만들어서 엄마가 정말 미안해……”


서윤의 얼굴이 장례식장에서 본 여명과 겹쳐 보였다. 내가 지금 무슨 선택을 한 거지. 오히려 결정을 내리고 난 뒤에 더 혼란스러워하는 스스로가 당황스러웠다. 나의 혼란이 커진 와중에 서윤은 한층 밝아졌다. 서윤은 가벼워진 목소리로 약속을 꼭 지키라 당부하고는 남아 있는 바닐라 라떼를 한입에 들이켰다. 그러고는 먼저 일어나 카페를 나갔다.

나의 컵에는 음료가 절반이 넘게 남아 있었다. 남아 있는 바닐라 라떼를 멍하니 바라보다 자리에서 일어났다. 카페 밖으로 나가자마자 라떼를 담은 차가운 속이 무더운 공기와 만나 울렁거렸다. 이 울렁거림이 평생 끝나지 않을 것만 같은 불안한 예감에 숨이 막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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