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명(9)

4부. 서윤

by 소냐

4부. 서윤


1.


- 여명이 입소 서류 접수했어

엄마의 문자를 받고 해방감과 죄책감 사이를 오가며 겉으로 크게 다름없는 날들을 보냈다. 여명을 피하기 위해 집에 들어가는 시간이 점점 늦어진 걸 제외하면. 여명이 곧 떠난다고 생각하니 후련하면서도 아이를 내보내는 게 못내 마음에 걸렸다. 여명이 보육원에 가기 전에 아르바이트비로 좋은 선물이나 하나 사 주어야겠다고 마음먹었다.

그날도 어김없이 배달 앱을 켜고 알림을 수락했다. 우리 아파트 상가에 있는 중국집이었다. 상가 앞에 도착하자 휴대폰에서 삐익, 기분 나쁜 신호음이 울렸다. 확인해 보니 긴급재난문자가 와 있었다.

- 오늘 11시 폭염경보. 야외 활동을 자제하세요. 충분히 물을 마시고 그늘에서 휴식을 취하는 등 건강관리에 유의하세요. [행정안전부]

경보가 울릴 정도로 뜨거운 날씨 때문에 아파트 단지에는 사람이 거의 보이지 않았다. 날씨를 확인해 보니 현재 기온이 35도에 육박했다. 더 돌아다니다가는 큰일 나겠다 싶어 이 건만 완료하고 오늘 배달을 접기로 했다.


중국집에 들어가자마자 시큰둥한 “어서 오세요” 소리가 들렸다. 머리가 절반 정도 희끗하게 샌 아저씨가 새콤한 탕수육 소스 냄새를 뿜어내며 주방에서 나왔다.

“학생 혼자 왔어?”

“저는 배달 기사예요. 배달 건 주세요.”

주인은 나를 빤히 쳐다보더니 퉁명스럽게 말했다.

“고등학생 맞지? 학생이 무슨 아르바이트야. 날 더우니까 얼른 하고 들어가.”

아저씨가 무슨 상관인데요, 라며 톡 쏘아붙이고 싶었지만 어른이 해 주는 걱정이 마냥 싫지만은 않았다. 주인이 건넨 얼음물 한 잔을 마시고 중국집을 나섰다. 딸랑, 문에 달린 종소리가 청량하게 울렸다.

상가 앞 주차장에 서서 자전거 바구니에 배달 봉지를 넣던 그때, 편의점에서 걸어 나오는 익숙한 형체가 시야에 걸렸다. 구부정한 자세, 힘없이 터벅터벅 내딛는 걸음걸이. 여명이었다. 피할 겨를도 없이 아스팔트를 닮은 검고 깊은 눈과 마주쳤다. 여명은 편의점 문 앞에 멈춰 서서 나를 응시했다. 발가벗겨진 채로 누군가에게 발견된다면 이런 기분일까.

배달 봉지에서 뒤늦게 손을 떼고 서둘러 자전거에 올라타 페달을 힘껏 밟았다. 여명이 오늘 본 것을 엄마에게 말하는 장면이 머릿속에서 생생하게 재생됐다. 이모 그게 사실은요…….

자전거를 돌려 여명을 뒤쫓아갈까 싶었지만 바구니에 배달 중인 음식이 담겨 있어 포기했다. 페달을 밟으며 내내 엄마에게 둘러댈 핑계만 생각했다. ‘엄마 그게 사실은’으로 시작하지만 사실이 아닌 말, 상대의 상처를 최소화할 수 있는 그럴듯한 거짓. 사고 싶은 게 있어서? 이건 엄마도 거짓인 줄 뻔히 알 거다. 여행을 가려고? 고3이 여행은 무슨. 금방 들통날 거짓이다. 여명에게 쥐어 줄 돈을 마련하려고? 이건 엄마를 무능한 어른으로 만들어 버리는 말이다. 그냥 용돈이 필요해서로 둘러대야겠다. 엄마가 더 캐물으면 입을 다물어 버리지 뭐.

더 이상 일을 못할 거라고 생각하니 그 많은 시간을 어떻게 보내야 할지 막막해졌다. 나갈 데도 없이 집에만 있는 여명은 지금도 그런 기분을 느끼고 있겠지. 그 아이는 버겁도록 긴 하루하루를 어떻게 감당할까.

배달을 마치고 동네 도서관에 들렀다. 아르바이트에 대해 엄마와 대화할 때를 최대한 늦추고 싶었다. 분명 금방 끝날 이야기가 아닐 테니. 편안한 열람실 의자에 앉아 에어컨 바람을 쐬자 뱃속 편하게도 잠이 왔다. 꿈속에서 나는 차의 뒷좌석에 타서 어떤 시골길을 달리고 있었다. 도로가 포장되지 않아 차가 덜컹거릴 때마다 속이 요동쳤다. 어지러움과 메스꺼움이 극에 달해 구토가 나오려고 하던 찰나에 눈이 떠졌다.

시계를 보니 오후 3시였다. 무얼 더 하며 시간을 때워야 할지 몰라 집으로 돌아갔다.


*


엄마는 얇은 담요 한 장을 덮은 채 소파에 웅크리고 누워 있었다. 창밖에서 매미 소리가 들려왔다.

“엄마 자?”

“안 자. 오늘 일찍 왔네?”

엄마가 눈을 감은 채 무기력하게 말했다. 요즘 엄마는 자주 누워 있는다. 표정도 어두워지고 말수도 전보다 더 줄었다. 여명을 시설로 보내는 것에 죄책감을 크게 느끼는 것 같았다. 아무리 그래도 내가 배달일을 하는 것을 알게 됐으면 당장 말할 텐데, 엄마는 미동 없이 누워 있을 뿐이었다. 나는 괜스레 엄마 곁에서 얼쩡거렸다. 엄마는 느릿하게 눈을 뜨며 나를 보고는 밖에 덥지 않냐고 빨리 씻고 오라고 했다. 뭐지, 여명에게 들었는데 말을 꺼내지 않는 건가, 여명이 말을 안 한 건가. 이제 나는 어떻게 해야 하는 걸까.

일단 이 상황에 대해 이해하기 위해서는 여명과의 대화가 필요했다. 그런데 여명과 나는 자전거 사건 이후 한 마디도 하지 않고 냉전 중인 상태였다. 먼저 말 걸기도 자존심 상하고, 나 때문에 떠나게 될 그 애를 똑바로 바라볼 자신도 없어 한숨만 나왔다.


*


“여명아 나와봐.”

엄마가 일을 나간 날, 굳게 닫힌 안방 문을 두드리며 여명을 불렀다. 어쩐지 기시감이 들었다. 자전거 사건이 일어났을 때도 여명을 이렇게 부르지 않았던가. 역시나 여명은 굼뜨게 문을 열고 나왔다. 나와 이야기하기 싫은 기색이 역력했다.

“여기 앉아서 얘기 좀 하자.”

내가 소파에 먼저 앉자 여명이 나와 멀찍이 떨어져서 앉았다. 나는 심호흡을 한 뒤 조심스럽게 말을 꺼냈다.

“여명아 혹시 엄마한테 이야기했어?”

여명은 고개를 푹 숙인 채 답을 하지 않았다. 아이의 팔을 잡고 다시 한번 물었다.

“여명, 엄마한테 나 아르바이트하는 거 얘기했어?”

여명은 그제야 우물우물 대답했다.

“안 했어요.”

“안 했다고? 왜?”

당황한 나머지 목소리가 커졌다. 마치 여명을 추궁하는 것처럼. 여명이 나를 쳐다봤다.

“숨기고 싶어 하는 것 같아서요, 언니가.”

아이의 목소리가 가늘게 떨렸다. 여명은 말을 내뱉고는 입을 꾹 닫았다.


큰 목소리 때문에 여명이 놀랐나 싶어 후회하고 있는데 아이가 나를 불렀다.

“서윤 언니.”

“응?”

“전에 말 못 했던 게 있는데요.”

여명이 손톱을 만지작대며 말을 이었다.

“언니 자전거 타이어 제가 망가뜨렸어요. 죄송해요, 언니. 죄송해요.”

여명의 커다란 눈망울이 붉어지더니 이내 쪼그려 앉아 무릎에 얼굴을 파묻고 훌쩍이기 시작했다. 등을 토닥여주어야 하나, 그냥 울게 놔둬야 하나, 이미 지난 일이니 괜찮다고 해줘야 하나. 우는 아이를 멍하니 바라보며 고민했다. 여명의 어깨는 점점 더 크게 들썩였고 숨을 힘겹게 들이마시는 소리가 났다.

“야, 너 괜찮아?”

아이의 어깨에 손을 올리고 물었다. 여명이 무릎을 감싸던 팔을 뻗어 내 손을 덥석 잡고 손이 아플 정도로 세게 쥐었다.

“왜 그래?”

“가슴이 답답해요.”

여명은 숨을 가쁘게 토해내며 말했다. 어린아이의 울음과 가쁜 숨. 살면서 처음 겪어보는 두 개의 사건으로 머리가 새하얘졌다. 겨우 정신을 붙잡고 엄마한테 전화를 걸었다. 신호음이 가는 내내 마음은 더욱 초조해졌다.

“고객님께서 전화를 받을 수 없어……”

그 와중에 여명의 쎅쎅거리는 숨소리가 점점 커졌다. 급하게 휴대폰을 집어 들고 ‘초등학생 호흡곤란’이라 검색했더니 소아 공황장애라는 결과가 보였다. 공황장애라는 게 초등학생에게도 오는 줄 처음 알았다.

“여명아 전에도 이랬던 적 있어?”

여명은 작게 고갯짓을 했다. 구급차를 부를까 고민하다, 검색창에서 조용한 곳에서 안정을 취한 뒤 병원에 가보라는 권고를 보고 집에서 가까운 정신과를 알아봤다. 차로 10분 거리에 위치한 병원이었다. 조금 진정될 때까지 여명의 손을 잡아 주다 내 얇은 남방을 하나 입히고 함께 집을 나섰다.


오후 들어 하늘이 갑자기 먹구름으로 뒤덮이더니, 뜨겁던 공기에 비가 얹혔다. 날씨를 확인할 겨를도 없이 급하게 나와 우산을 챙기지 못했지만, 여명을 데리고 다시 집에 들를 수도 없었다. 비를 맞으며 아파트 정문까지 걸어가는 동안 여명은 내 팔을 붙잡고 자기의 무게를 모두 실었다. 아이가 주저앉지 않도록 팔에 힘을 주었다. 여명은 홀로 감당하기 어려울 정도로 무거웠는데, 비쩍 마른 아이가 그렇게 무거웠던 이유는 아마 몸의 무게 때문이 아니었을 것이다.

대로변에 도착해 살면서 처음으로 택시를 잡았다. 달리는 차를 향해 손을 뻗는 일이 그렇게 어려운 줄 몰랐다. 내 몸에 실린 여명의 무게가 아니었으면 그런 용기를 낼 수 있었을까. 파란색 택시 표시등이 지나갈 때 도로로 손을 뻗어 택시를 잡았다. 다행히 비어있던 택시는 우리 앞에 섰고 엄마 또래쯤 되어 보이는 기사님이 우리를 맞이했다.

“학생 무슨 일이야?”

기사님이 백미러로 여명을 보며 물었다.

“동생이 공황이 온 것 같아요. 병원으로 가주세요.”

“부모님은 어디 계시고? 둘이 우산도 안 쓰고 서있어서 아줌마 놀랬잖어.”

우렁찬 목소리에서 진심 어린 걱정이 느껴졌다.

“엄마가 일 가셔서 전화를 안 받아요. 그래서 제가 빨리 데리고 나왔어요.”

기사님은 혀를 끌끌 차더니 자기가 병원 접수까지 도와주겠다고 나섰다. 간절했던 어른의 도움으로 온몸의 긴장이 한꺼번에 풀렸다. 빗방울이 유리창에 부딪치는 소리, 와이퍼가 왔다 갔다 하는 소리, 깜빡이의 딸깍딸깍 소리가 어우러져 더없이 평화롭게 들렸다. 검은 머리를 축 늘어뜨리고 창문에 기대 있던 여명도 기운을 찾았는지 창밖을 잠잠히 바라보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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