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명(10)

4부. 서윤

by 소냐

2.


“내리자.”

택시가 멈춘 곳은 보건소 앞이었다.

“네? 여기서요?”

무의식 중에 당황과 불신이 입 밖으로 터져 나왔다. 기사님이 뒤를 돌아보며 다그치듯 말했다.

“급할 땐 여기가 제일 빨라. 얼른 내려.”

어찌해야 하나 고민이 되어 여명을 보니 입술이 하얗게 변해 있었다. 일단은 기사님을 믿는 수밖에 없었다. 차에서 내라자 비가 그친 후의 축축한 물비린내가 풍겼다. 기사님이 젖은 공기를 뚫고 휘적휘적 앞장서 걸어갔다. ‘정신건강복지센터’라 적힌 파란색 간판이 보였다. 문을 열자 하얀 형광등 조명과 여기저기 붙어 있는 안내문, 회색 대리석 바닥이 눈에 띄었다. 그곳은 병원보다는 우체국이나 은행 같은 공공기관과 비슷해 보였다.

기사님이 우리 보고 옆에서 기다리라 하더니 접수처에서 능숙하게 상황을 설명했다. 여명은 사람들 틈새에 있는 게 힘든지 눈을 질끈 감고 손바닥으로 얼굴을 감쌌다. 나는 아이의 볼을 잡고 내 쪽을 보도록 살짝 들어 올렸다.

“여명, 괜찮아?”

마주 본 눈과 맞닿은 피부로 아이의 두려움이 전해졌다.

기사님이 내 팔을 툭툭 쳤다.

“학생, 엄마한테 다시 전화해 봐 봐.”

정신을 차리고 휴대폰을 꺼내 엄마에게 전화를 걸었다. 수신음이 끈질기게 지속된 후 익숙한 기계음이 나왔다.

“지금 고객님께서 전화를 받을 수 없어……”

기사님을 보고 고개를 내저었다. 곧이어 쩌렁쩌렁한 목소리가 귀를 찔렀다.

“애들 엄마가 연락이 안 돼요. 지금 쟤 상태를 봐봐. 급하니까 애가 진정되게만 해줘요. 응?”

보건소 직원은 곤란한 듯 옆에 있는 직원에게 눈짓을 보내고는 내게 종이 한 장을 내밀었다.

“원래는 보호자 동의 없이 진료가 안 되는데, 긴급한 상황이니 심리 안정 진행하고 사후에 연락하도록 할게요. 보호자 연락처 작성해 주세요.”

나는 엄마의, 전화번호를 적은 뒤 여명을 데리고 의자에 앉았다. 택시 기사님은 돈도 받지 않고 유유히 떠났고 여명과 나, 둘만 남았다. 우리는 머리 위로 쏟아지는 흰색 조명 아래 나란히 앉아 여명의 이름이 불리기만을 기다렸다. 둘만이 존재하는 텅 빈 시공간을 함께 통과하는 것처럼 느껴졌다.


*


여명의 이름이 불렸다. 우리는 널찍한 테이블과 빼곡한 책장만 있는 작은 사무실 같은 검사실로 안내받았다. 자신을 선생님으로 지칭하는 상담사가 여명에게 심호흡을 가르쳤고, 여명의 숨은 서서히 원래의 속도를 되찾기 시작했다. 상담사는 여명에게 어떤 증상이 있었는지 간단히 물어보고 연필과 종이 몇 장을 건넸다.

“이건 여명이의 마음을 알아볼 수 있는 검사지야. 선생님이 여명이를 도와주려면 솔직하게 답해야 해. 알겠지?”

여명이 고개를 끄덕였다. 상담사가 부드럽게 미소 지으며 나에게 말했다.

“보호자분은 나가서 대기해 주세요.”

여명을 이곳으로 데리고 온 것으로 나의 역할은 끝났다. 지금부터는 여명이 스스로의 마음을 들여다볼 시간이었다. 여명의 내밀한 공간에서 쫓겨나는 것만 같은 기분이 들었다. 의자에서 일어나려고 하는데, 여명이 내 손목을 붙잡으며 물었다.

“언니도 여기 있으면 안 돼요?”

“보호자가 옆에 있으면 검사에 영향을 줄 수 있으니, 밖에서 기다려달라고 하자.”

상담사는 다정하지만 단호하게 거절했다.

“언니가 없으면 더 불안해질 것 같아요. 언니도 여기 같이 있으면 안 돼요?”

여명이 끝까지 고집을 부리자 상담사는 난처한 기색을 보였다. 결국 그는 알았다고 하고는 여명의 검사지가 보이지 않게 떨어져 앉으라고 당부했다. 나는 여명이 검사를 받는 동안 아이의 뒤통수를 바라보며 생각했다. 이 아이는 왜 이렇게까지 나와 붙어 있으려 하는 걸까, 내가 뭐 그리 믿을 만한 사람이라고.

검사가 끝난 후, 결과가 나올 때까지 밖에서 대기하라는 안내에 따라 사람들 틈새에 다시 자리를 잡았다. 옆에 앉은 여명의 얼굴이 한결 편안해 보였다. 마음이 놓임과 동시에, 여명이 시설에 들어가서 잘 지낼 수 있을지 걱정이 되었다. 복잡한 생각을 떨치기 위해 아이에게 말을 걸었다.

“여명, 배 안 고파?”

여명은 나를 물끄러미 보더니 말했다.

“배고파요. 끝나고 떡볶이 먹으러 가요.”

네가 살 거냐며 농담으로 받아치자 여명이 피식 웃었다. 항상 어두운 모습만 보이다 이렇게 웃으니 제 나이답고 귀여웠다. 그런데 웃을 때 올라가는 입매, 연하게 패는 인디언 보조개, 살짝 접히는 눈 모양이 묘하게 낯설지가 않았다. 가만, 어디서 봤더라? 비슷한 이미지를 찾아보려 머릿속을 더듬어봐도 어렴풋한 분위기만 맴돌 뿐 생각이 나지 않았다. 잠시 후 직원이 또다시 여명을 불렀다. 가려움을 품은 채 여명과 함께 상담실에 들어갔다.


*


“불안도와 우울감이 상당히 높네요.”

상담사가 결과지를 모니터 화면으로 보여주며 설명했다.

“부모를 한 번에 잃은 슬픔은 보통 사람들이 상상할 수 없을 정도로 큽니다. 병원에서 꾸준한 상담과 약물치료를 받는 것을 권장해요. 또 이 시기를 무사히 넘기기 위해서는 주변 사람들의 도움이 많이 필요해요. 아이가 제2의 애착 관계를 형성할 수 있도록 말이죠.”

상담사는 여명이 아닌 나를 바라보며 묵직하게 한 음절 한 음절 내뱉었다. ‘부모를 잃은 슬픔’, ‘주변 사람들의 도움’, ‘제2의 애착 관계’ 같은 말들이 나를 찔렀다. 전문가의 정제된 언어로 들으니 여명의 증상이 더 위급하게 느껴졌다. 상처를 당장 치료하지 않으면 균이 피부 조직 속으로 깊숙이 침투해 결국 곪아 터지고 만다. 여명의 상처도 가만히 내버려 두면 그렇게 돼버릴까 두려운 마음이 일었다.


보건소에서 나온 뒤 엄마에게 전화할까 고민하다 굳이 먼저 얘기하지 않기로 했다. 이 모든 일을 설명하려면 아르바이트를 하는 것도 말해야 하기 때문이다. 보건소에서 연락을 받으면 어련히 먼저 물어보겠지. 엄마에 대한 고민을 애써 털어내고 여명과 근처 프랜차이즈 떡볶이집에 들어갔다.

“오늘은 언니가 쏠 테니까 맘껏 먹어.”

내가 능글맞게 한 마디 던지자 여명의 얼굴에 장난스러운 웃음기가 어렸다. 우리는 떡볶이와 순대, 어묵을 주문하고 작은 테이블에 자리를 잡았다. 떡볶이 국물 색과 같은 빨간색 테이블이었다. 얼룩을 감추기 위해 빨간 테이블을 쓰는 거겠지만 테이블에 묻어있는 작은 얼룩은 감춰지지 않았다. 휴지로 얼룩을 닦고 여명과 마주 앉았다.

“여명아, 근데……”

여명은 눈을 동그랗게 뜨고 나를 쳐다봤다. 말간 얼굴 앞에서 입이 쉽게 떨어지지 않았다.

“오늘 일 엄마한테는 말하지 말자.”

여명은 이유를 궁금해하지 않고 바로 알겠다고 말했다. 그 흔쾌한 태도에 마음이 한시름 놓였다.

할 말이 생각나지 않아 어색하게 눈을 굴리던 중, 여명이 먼저 말을 꺼냈다.

“언니, 저 궁금한 거 물어봐도 돼요?”

딱히 다른 대화거리가 있는 것도 아니고, 여명이 부탁을 들어주었으니 나도 흔쾌히 답해줄 준비가 되어 있었다. 무엇보다 이번에는 나를 골탕 먹이려고 했던 이전의 질문들과는 결이 다른 것임을 알았기 때문이다.

“궁금한 거?”

그 순간 주문한 음식이 나와 우리의 시선이 일제히 음식으로 향했다. 자연스럽게 대화도 끊겼다. 그때 멈추었어야 했다. 이 대화를, 여명의 궁금증을, 그리고 지나친 솔직함을.


떡을 한 개 찍어 입에 넣자마자 여명이 물었다.

“언니는 왜 엄마랑 둘이 살아요?”

생각보다 직설적인 질문에 헛기침이 나왔다.

“진짜 궁금해? 너는 잘 이해 못 할 텐데.”

“말하기 싫으면 안 해도 돼요. 근데 저 웬만한 건 다 이해할 수 있거든요.”

모든 걸 이해할 수 있다고 믿는 어린아이의 순수함과 삶의 풍파를 일찍이 겪은 이의 씁쓸함이 동시에 느껴져 혼란스러웠다. 이 아이가 나보다 짧은 시간 동안 더 오랜 세월을 살았을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아빠가 바람났어. 다른 여자랑. 너 바람이 뭔지는 알아?”

나는 여명 앞에서 짐짓 어른답게, 아무렇지 않은 듯 말했다.

“바람이요?”

여명은 되물었다. 바람, 그저 스쳐 지나가는 공기쯤으로 이해하려나. 스쳐 가는 게 맞긴 하다. 자연적인 현상이 아니라 본인의 의지가 들어갔다는 것만 다를 뿐.

“언니 아빠가 바람을 폈어요?”

다시 한번 묻는 여명의 목소리에는 격렬한 경멸이 담겨 있었다. 이 아이 바람이 뭔지 이해하고 있구나. 그걸 알고 나니 이 이야기를 하는 것이 문득 수치스러워졌다.

“조용히 해. 아빠가 바람난 게 뭐 자랑이라고.”

나의 날 선 반응에 여명이 민망한 듯 입을 다물었다. 나는 곧바로 경직된 분위기를 풀어보려 너스레를 떨었다.

“근데 초3이 바람이란 건 어떻게 알아? 드라마에서 봤나. 요즘 애들 참 빠르다.”

가볍게 웃으며 넘길 줄 알았는데 여명의 표정이 얼어붙었다.

“뒤에서 그런 말이 들렸어요.”

“맞아, 어른들 다른 사람들 일에 되게 관심 많지. 본인들이나 잘할 것이지.”

나의 우스갯소리에도 여명의 얼굴은 여전히 굳어 있었다. 혹시 말실수를 했나 싶어 멋쩍게 물었다.

“왜 그래?”

여명이 무겁게 입을 뗐다.

“저한테 한 말이었어요. 애들도, 어른들도.”

여명은 잠깐 뜸을 들이더니 덧붙였다.


“쟤네 엄마 아빠, 바람나서 결혼한 거잖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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