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부. 지연
1.
그 말을 내뱉어 버렸다.
짧은 정적이 찾아왔다. 서윤은 의자를 내 쪽으로 당겨 앉고 아이를 달래듯 나를 설득하기 시작했다.
“내가 너무 늦게 말했지. 엄마 근데 이렇게 보내는 건 아닌 것 같아. 걔 보내고 나면 평생 생각날 것 같아. 이제라도 취소하자. 응?”
지극히 상식적이고 윤리적인 말인데, 불쾌한 기류가 발끝을 타고 스멀스멀 올라왔다. 미안한 기색이라곤 없이 당당한 태도, 윤리라는 탈을 써서 거절할 수 없게 만드는 묘한 화법, 딸에게 휘둘려 올바른 결정을 하지 못했던 나에 대한 책망. 이 모든 요소가 머릿속의 어떤 끈을 툭 잘랐다. 하수구 철망 너머로 구정물이 역류하듯, 속에서 오래 부패한 말이 거침없이 쏟아져 나왔다.
“너는 엄마가 우습지? 나는 생각도 감정도 없는 사람인 줄 알아?”
“아니 그게 아니라……”
“내가 네 말에 다 따라야 하니? 못 견디겠다고 애를 보내자고 할 땐 언제고, 이제 와서 생각이 바뀌었다고 하면 내가 어떻게 반응해야 해? 넌 왜 그렇게 매번 마음대로야, 어?”
목에 잔뜩 힘을 주고 소리를 질렀다. 어깨 근육이 뭉치고 가슴께가 뻐근해져 왔다. 서윤은 처음 보는 나의 모습에 겁을 먹었는지 몸을 움찔했다. 열을 식히기 위해 앞에 놓인 얼음물을 들이켜고 있을 때, 서윤이 입을 뗐다.
“내가 매번 마음대로 한다고? 나한테 묻지도 않고 여명이를 데리고 온 게 누군데? 적어도 엄마는 나한테 그렇게 말하면 안 되는 것 아니야? 엄마가 나를 어떤 상황에 던져놨는지 알기는 해?”
아이는 눈을 매섭게 치켜뜬 채 숨 쉴 틈도 없이 말을 빠르게 토해내고는, 종지부를 찍듯 마지막 한마디를 던졌다.
“엄만 내가 진짜 모를 줄 알았어?”
머리가 차갑게 굳으며 말문이 막혔다.
“뭐……?”
“여명이 내 동생이잖아. 그게 숨겨질 거라고 생각했어?”
심장이 철렁 내리 앉았다. 아니, 나는……
일부러 속이려던 건 아니었다. 그저 서윤이 아빠에게 받은 상처를 다시 떠올리지 않길 바라는 마음이었다. 그러다 언젠가부터 여명이 그 이의 딸이라는 걸 잊어버렸고. 하지만 변명할 자격은 없었다. 아이의 말이 옳았다. 나의 무책임한 위선이 딸을 난처한 자리에 억지로 데려다 앉혔다. 상처와 죄책감, 자괴감이 한데 엉겨 붙은 그 자리에. 서윤의 앙칼진 목소리가 다시 들려왔다.
“엄만 나랑 여명이 얼마나 마음 고생 했는지 절대 몰라. 엄마의 대책 없는 선택 때문이야 다.”
딸에게 머리를 세게 맞은 듯 멍해지며 앞에 있는 서윤이 흐릿하게 보였다. 내 안에서 올라오는 뜨거운 기운만이 선명하게 느껴질 뿐. 그것은 가슴에서 움튼 모멸감의 아지랑이였다. 살결 위로 한기가 스치며 털이 곤두섰다.
“대책이 없다고? 그게 네가 할 말이니?”
서윤의 얼굴은 여전히 서리 낀 유리창을 통해 보는 듯 흐리게만 보였다. 그 희미한 형체에 대고 말했다.
“공부 포기하고 몰래 배달 알바나 하는 건 대책이 있는 거고?”
서리가 걷히고 딸의 상처받은 얼굴이 드러났다. 입술이 파르르 떨리고 있었다. 서윤은 내게 하는 말인지 혼잣말인지 구분이 안 되는 목소리로 중얼거렸다.
“내가 왜 아르바이트하는지 알지도 못하면서.”
이어질 말을 듣기가 두려웠지만 나는 잠자코 서윤의 다음 말을 기다렸다.
“이 집구석 뜨려고. 나 자취하려고 돈 버는 거야.”
흔히들 부모 가슴에 대못을 박는다고 표현한다. 그 표현이 부모의 마음을 대변하는 정확한 표현임을 알게 됐다. 그건, 피를 흘리며 느끼는 끔찍한 고통보다 차가운 물체가 심장을 뚫을 때의 시린 감각에 가깝다. 가슴이 너무 시렸다.
“너, 그 말 진심이야?”
진심인 줄 알면서도 나는 구걸하듯 물었다. 그러나 딸은 넋이 나간 것처럼 제 앞에 놓인 유리잔을 응시하기만 했다.
“알았어. 네 마음대로 해, 나는 무책임하고 무능력한 엄마니까. 자취할 거면 하고 여명이 시설 철회할 거면 네가 직접 찾아가서 철회해.”
서윤은 꿈쩍도 하지 않았다. 아이가 어떤 생각을 하는지 더 이상은 읽히지 않았다.
“오늘 저녁에 여명이한테 시설 얘기할 거니까 네가 책임지고 취소할 거면 그전에 말해.”
말을 마친 후 의자를 소리 나게 빼면서 일어나 곧장 카페를 나왔다. 서윤의 앞에서 더는 무너지고 싶지 않았다.
*
집 앞 공원을 정처 없이 걸었다. 원래 부모란 이렇게 외로운 존재였던가. 시간을 거꾸로 돌려보며 내가 어떻게 행동했어야 했는지 되짚었다. 장례식장에서 여명을 외면했어야 하는 걸까. 서윤에게 연락해서 아이를 데려간다고 미리 허락을 받았어야 하나. 그날 카페에서 서윤에게 좀만 더 참으라고 설득했어야 하나. 서윤의 변심을 꼬임 없이 받아들이고 여명의 시설 입소를 취소했어야 하나. 끝내 답을 찾을 수 없었다. 어떤 선택을 했어도 결국엔 이런 결말을 맞았을 것만 같았다.
서윤에게 따져 묻고 싶었다. 내가 못 해준 게 무엇이냐고. 남편 없이 너를 키우느라 얼마나 힘들었는지 알기는 하냐고. 엄마를 이리도 비참하게 만들 수가 있냐고. 아마 서윤과 나는 서로를 결코 이해할 수 없을 것이다. 우리가 거센 물살에 휩쓸려 서로 닿을 수 없는 육지에 도달한 것만 같아 아찔해졌다.
시계를 보니 오후 2시가 다 되어갔다. 이 와중에도 밥때가 찾아오고 무엇을 먹어야 하나 고민하는 상황에 신물이 났다. 여명은 영문도 모른 채 나를 기다리고 있을 거였다. 아이가 떠나기 전, 잘 먹여야겠다는 생각에 마트에서 갈빗살 한 근과 쌈 채소를 샀다.
집에 도착했을 때 역시나 신발장에 서윤의 운동화가 보이지 않았다. 휴대폰으로 전화를 걸어봐도 묵묵부답이었다. 감정이 격해진 상태로 어디서 무얼 할지 걱정이 되어 밥을 하면서도 정신은 온통 서윤에게 가 있었다. 프라이팬에 고기를 올려두고 딴생각을 하다 탄 내를 맡고 나서야 서둘러 고기를 뒤집었다. 검게 탄 부분을 가위로 도려냈지만 검은 부분은 군데군데 남아 누더기 같은 모양새를 띠었다. 터져 나오려는 울음을 꾹 누르고 고기를 접시에 옮겨 담아 상을 차렸다.
“서윤 언니는요?”
여명은 자리에 앉자마자 뜬금없이 서윤을 찾았다.
“서윤이는 밖에서 먹을 것 같은데. 갑자기 왜 찾아?”
“아니, 언니 없이 고기 먹는 게 좀 그래서요. 언니도 같이 먹으면 좋을 텐데……”
여명은 그렇게 말하고는 접시에서 고기를 한 점 집어 갔다. 나는 어리둥절해져 여명을 쳐다보았다. 둘 사이의 온도가 확실히 변했다. 내가 모르는 새 어떤 일이 있었던 걸까.
“언니도 챙겨주고, 여명이 다 컸네.”
여명의 얼굴이 붉어졌다. 설명할 수 없는 말이 아이의 안에 맺혀 있는 듯했다. 하지만 내게는 그 말을 받아낼 힘이 더는 남지 않았기에, 못 본 체하며 상추에 밥과 고기를 올렸다. 여명도 묵묵히 밥을 먹는 데 집중했다. 적막 속에서 음식 씹는 소리와 식기가 부딪히는 소리만 들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