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명(13)

5부. 지연

by 소냐

2.


해는 소리 없이 저물었다. 나는 소파에 앉아 빛이 멀어지는 광경을 지켜보았다. 소파를 비추던 빛이 발끝으로, 거실 한가운데로, 귀퉁이로 점차 멀어져 마침내 눈앞에서 사라졌다. 집안에 어둠이 완전히 스밀 때까지 서윤의 연락은 오지 않았다. 여명과 남은 갈빗살을 구워 저녁을 먹은 후 거실 귀퉁이에 놓인 스탠드 조명을 켰다. 전원 버튼을 누르자 노란빛을 받은 먼지가 사방으로 흩어졌다. 아무도 없는 무대 위에 핀 조명을 밝힌 듯.

사실 밝은 곳에서 여명을 마주할 용기가 나지 않았다. 나는 무대 뒤에서 대사를 반복해 읊조리는 배우처럼 스스로에게 하고 싶은 말을 계속해서 되뇌었다.

이 순간만 잘 견디면 모두가 행복해질 수 있어.

그래야만 해. 그래야만……


방에서 나온 아이는 평소와 다른 거실의 분위기에 어리둥절해하더니 이내 무언가를 감지한 듯 표정이 굳었다. 어린아이에게서 볼 수 없는 처연함이 여명의 얼굴에 자리 잡았다.

“여명아, 이모 옆에 앉아볼래?”

여명은 주춤거리며 소파에 걸터앉았다. 집에 처음 왔을 때의 모습과 겹쳐 보였다.

“여기서 지내는 거, 힘들었지?”

아이는 단발머리를 축 늘어뜨린 채 바닥만 쳐다봤다. 머리에 가려 아이의 얼굴이 보이지 않았다.

“언니 눈치 보랴, 이모 눈치 보랴 힘들었지. 여명아.”

검은 머리칼 아래로 눈물이 떨어졌다. 여명의 눈물은 가는 빗방울이 떨 듯 여리게 떨어져 바닥에 고였다. 가슴이 저며왔다. 나는 아이를 안아주고 싶은 충동을 누르려 손으로 무릎을 쓸었다. 아이의 앞에서 준비했던 말들이 모두 무력해졌다. 내가 할 수 있는 말은 한 가지뿐이었다.

“미안해, 여명아. 이모가 다 미안해.”

짭조름한 눈물이 입안으로 흘러내렸다. 소금을 머금은 듯 강렬한 짠맛이 목울대를 찔렀다.


조용한 시간이 흘렀다. 귓전에서 모든 것을 놓은 듯 망연한 아이의 목소리가 들렸다.

“저는 이제 다른 곳으로 가나요?”

나는 축축하게 젖은 아이의 손을 잡으며 말했다.

“이모랑 언니보다 더 좋은 분들이 보살펴 주실 거야. 더 잘해주지 못해 미안해.”

여명이 잡은 손을 슬그머니 빼더니 고개를 돌려 나를 정면으로 응시했다. 마지막으로 하고 싶은 말이 남은 듯해 보였다. 마음의 근육을 조였다. 아이의 입에서 어떤 원망의 말이 나오든 감내해야 한다.

“언니는요?”

전혀 예측할 수 없었던 말. 나의 벙찐 얼굴에 대고 여명은 다시 한번 물었다.

“언니는 제가 가는 거 알아요?”

그 질문에 난 뭐라 답해야 했을까. 어떻게 답하든 여명의 상처를 후벼 파는 최후의 한마디가 될 터인데. 그때 비로소 아이에게 용서받을 수 없는 치명적인 잘못을 저질렀다는 걸, 그리고 되돌릴 수도 없다는 걸 깨달았다. 나는 허공을 바라보며 무겁게 고개를 끄덕였다.

여명은 벌떡 일어나 뒤돌아섰다. 아이의 손에 주먹이 쥐어졌다. 아이의 주먹이 품은 분은 어디도 향하지 못하고 고스란히 제 몸으로 돌아왔다. 여명은 그렇게 소파 앞에서 한참을 서 있었다.


여명이 방에 들어간 뒤 소파에 쓰러지듯 누웠다. 흐느끼는 소리가 들렸다. 현실에서 들리는 소리인지 죄책감이 만들어낸 소리인지 구분할 수 없었다. 눈의 초점이 서서히 흐려지더니, 상복을 입은 여명이 보였다.

나는 여명에게 무엇을 줄까 고민하다 떡과 캔음료를 건넨다. 여명은 내가 건넨 간식을 못 본 척 딴청을 피운다. 나는 간식을 여명의 손에 억지로 지운다. 여명이 울며 떡을 던진다. 캔 음료를 바닥에 부어 버린다. 나는 화가 나서 여명의 손을 잡고 장례식장을 나선다. 손이 어느 순간 스르르 빠진다. 여명이 뒤에 홀로 남겨진다. 아니, 여명은 내가 걷는 반대 방향으로 죽을힘을 다해 달려간다. 상복을 벗어던지고 속살만 남은 채 내달린다. 거긴 낭떠러지였다. 여명을 쫓아 달려간다. 하지만 낭떠러지의 끝에서 여명은 보이지 않는다. 허망하게 여명아, 여명아 목 놓아 외친다. 차고 건조한 바람만이 볼을 스치고 지나간다. 그 바람 속에서 여명의 체온은 느껴지지 않는다. 피부에 닿는 공허한 감촉에 화들짝 놀라 눈을 떴다.

*


이상하게 고요한 아침이었다. 불길한 예감에 서둘러 휴대전화를 확인하니 열 시였다. 아홉 시에 방과 후 수업이 있는 날이다. 방과 후 실장으로부터 부재중 전화가 다섯 건과 문자가 와 있었다. 문자 채팅창에 들어갔다.

‘김지연 선생님 어디십니까?’

‘아이들 교실에 다 모여 있습니다. 연락 바랍니다.’

‘아이들 집에 보냈습니다. 문자 확인하는 즉시 전화 주십시오.’

눈을 질끈 감았다. 그때 서윤이 공책 같은 것을 들고 방에서 나왔다. 서윤은 나를 쌩하니 지나쳐 무언가에 홀린 듯 안방으로 향해 문을 두드렸다. 아무런 기척이 없었다. 여명아, 부르며 다시 한번 문을 두드려도 여전히 반응이 없었다. 아직 자고 있는 애를 왜 깨우냐고 한 마디 하고 싶었지만 어제의 기억이 내 입을 막았다. 서윤은 문고리를 잡았다. 금속으로 된 문고리에서 덜컹대는 소리가 났다. 나는 숨죽여 서윤을 지켜보았다. 문고리가 서서히 돌아가며 안방 문이 열렸다.


창문에 달린 흰색 리넨 커튼이 펄럭였다. 서윤은 안방으로 들어갔고, 나는 문밖에서 서윤의 반응을 기다렸다. 몇 초가 지나도 아무 반응이 없는 서윤 때문에 초조해졌다. 여명의 목소리도 들리지 않았다. 나는 조심스럽게 물었다.

“무슨 일 있어?”

서윤은 질문에 답을 하지 않고 여명의 휴대폰으로 전화를 걸었다. 통화가 시작되기도 전에 서윤은 휴대폰을 들고 있던 손을 툭 떨구었다. “…원이 꺼져 있어……” 익숙한 기계음이 휴대폰 너머로 건조하게 들려왔다. 서윤이 모든 것을 알고 있는 듯 초연하게 말했다.

“여명이, 나갔어.”

내가 잘못 알아들었기를 바라면서 다시 물었다. 설마.

“나갔다니. 어딜?”

서윤이 환멸을 담아 나를 쏘아보았다.

“그걸 내가 어떻게 알아?”

머릿속에서 최악의 상황이 생생하게 재생되며 손이 떨려왔다. 휴대폰 화면을 터치해서 잠금 해제를 하려는 순간, 부재중 전화 탭이 잘못 눌려 방과 후 실장에게 전화가 걸렸다.

“여보세요, 김지연 선생님?”

방과 후 실장의 목소리에는 짜증이 한껏 배어 있었다. 얼른 끊고 실종 신고를 해야 하지만 여기서 끊어 버리면 일자리를 잃을 수도 있었다. 나는 다급하게 잠시만요, 외치고 서윤에게 대신 실종 신고를 해달라고 부탁했다. 서윤이 한숨을 쉬며 자기 휴대폰을 찾아 방으로 들어갔다.

“여보세요. 죄송합니다 실장님.”

다시 전화를 받으니 실장의 목소리가 한층 근엄해졌다.

“선생님, 무슨 일이 있는지는 모르겠지만 이런 식으로 연락도 없이 빠지면 학교 측에서 정말 곤란해요. 교사 경력도 있으신 분이 이러시면 안 되죠.”

짜증을 억누르고 교양 있게 말하려는 노력이 느껴졌다. 귀에서 붉은 열기가 일었다.

“죄송합니다. 다음 주부턴 이런 일 없도록 하겠습니다. 정말 죄송합니다.”

“예 알겠습니다. 이번 일은 평가에 반영된다는 점 잘 아실 거라 생각합니다. 들어가세요.”

네 감사합니다, 말하던 도중 전화가 끊겼다. 귀에서 맴돌던 열기가 얼굴 전체로 넓게 번졌다.

- 실격이다.

익숙한 목소리가 속삭거렸다. 나는 중얼거렸다. 알아. 나도 알아.


서윤의 방에 찾아가 보니 웬일로 방문이 열려 있었다. 서윤은 의자에 앉아 아침부터 들고 있던 종합장을 들여다보고 있었다. 나는 서윤의 방 앞에 서서 말했다.

“방금 급한 전화가 와서…… 경찰에 신고했어?”

서윤은 여명의 실종에 대한 단서라도 되는 듯 종합장에 시선을 고정하며 답했다.

“어 신고했어.”

“고마워 딸……”

“근데 엄마.”

서윤이 고개를 들어 나를 지긋이 쳐다봤다.

“여명이 사진 있어? 경찰이 사진 있냐고 묻더라.”

사진 같은 게 있을 리 없었다. 사진은 어떤 시간을 포착하고 기억하기 위한 것이다. 우리 모녀는 무의식 중에 여명과 보낸 시간을 우리의 삶에서 사라져 버릴 시간으로 여긴 듯했다. 그러니까 함께 살고 있는데도 여명과 사진 한 장 찍을 생각을 못했겠지. 서윤이 희미한 조소를 띠며 물었다.

“엄만 여명이 어디로 갔을 것 같아?”

여명이 어디로 갔을지 상상도 되지 않았다. 여명은 우리의 삶에서 완전한 이방인이었기 때문에.

“나도 모르겠어. 여명이 어디로 갔을지. 우린 걔에 대해 아무것도 몰라.”

서윤은 손에 들고 있던 종합장을 천천히 내밀었다. 표지에 매직으로 두꺼운 글씨가 적혀 있었다.

‘한여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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