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부. 지연
3.
곧이어 현관문을 두드리는 소리가 들렸다.
“경찰입니다. 김지연씨 댁 맞나요?“
나는 신발장으로 달려 나가 문을 열었다. 앳되어 보이는 작은 키의 한 남성이 경찰 제복을 입고 문밖에 서 있었다.
“아동 실종 신고가 들어와서 방문했습니다. 한여명 어린이 보호자되시죠?”
경찰이 자신의 명함을 건네며 말했다. 경찰에게서 여명의 이름을 듣자 상황이 더 긴박하게 느껴졌다.
“네 맞아요. 저희가 아이 사진이 없어서 어쩌죠…….”
경찰이 사진에 대해 먼저 물어보면 답할 면목이 없었기 때문에 나는 먼저 말을 꺼냈다.
“예, 안 그래도 그것 때문에 방문했습니다. 사진이 없으면 인상착의라도 확보돼야 수색을 할 수가 있습니다.”
인상착의, 수색, 확보 같은 단어 하나하나가 내 귀를 때렸다. 아이의 사진 한 장 없고 인상착의마저 모르는 게 무관심한 보호자라는 확실한 증거처럼 느껴졌다. 서윤에게 받은 종합장을 꼭 쥐었다.
“아이가 뭘 입고 나갔는지도 모르면 어떻게 해야 할까요?”
“cctv를 돌려보며 보호자님께서 여명이 맞는지 확인을 해주셔야 합니다. 아이가 실종된 지 시간이 좀 지났습니다. 빨리 경비실에 cctv 확인하러 가시죠.”
경비실에서 cctv를 확인해 보니 아침 7시경에 우리 집에서 여명이 나오는 모습이 찍혀 있었다. 우리 집에 가져왔던 제 등짝 만한 가방을 메고, 분홍색 티셔츠와 청색 반바지를 입고 복도를 지나가는 여명이 보였다. 도둑고양이처럼 가볍고 민첩한 걸음. 성민씨가 떠나던 날 마지막으로 본 걸음과 겹쳐 보였다.
“분홍색 옷 입은 저 아이 맞아요?”
경찰의 질문에 실종된 아이를 찾고 있었다는 차가운 현실이 다시 피부로 느껴졌다.
“아 네…… 저 아이예요.”
“그럼 주변 cctv 확보해서 아이 찾고 연락드리겠습니다. 보호자 분께서는 댁에서 기다리고 계세요. 아이 연락이 되는지 중간중간 시도해 보시고요.”
경찰에게 잘 부탁드린다고 허리 굽혀 인사한 후 다시 엘리베이터를 탔다. 경찰이 수색을 시작해서 마음이 조금 편해지긴 했지만, 이렇게 경찰에 맡길 수만은 없었다. 가만히 기다리기만 하면 죄책감에 먹혀버릴 것 같았다.
*
집에 오자마자 서윤에게 말했다.
“서윤아, 여명이 찾으러 나가자.”
서윤이 방에서 힘없는 목소리로 대꾸했다.
“여명이 어디로 갔을지 감도 안 잡히잖아. 경찰이 연락 줄 때까지 기다리자.”
문이 열려 있는 서윤의 방으로 들어갔다. 아이의 방에 발을 딛는 게 너무 오랜만이어서 낯선 세상으로 들어가는 것 같은 생경한 느낌이 들었다. 서윤은 침대를 등받이 삼아 바닥에 쪼그려 앉았는데, 침대와 책상 사이의 간격이 좁아 그 사이에 끼어 있는 것처럼 보였다. 나도 아이의 옆에 함께 끼어서 앉았다. 책상과 의자 때문에 시야가 꽉 막혀서 갑갑했다.
“지친 거 다 알아. 찾아달라고 강요할 권리 없는 것도 알아. 그런데 엄마는 이제라도 최선을 다해보고 싶어. 여명을 못 찾는다고 해도, 찾아다니려고.”
서윤이 생기를 잃은 창백한 목소리로 물었다.
“찾고 나면 어떡하게? 데리고 살 거야?”
엄마에 대한 불신에서 비롯된 질문. 질문과 함께 아이의 속에서 가득 찬 불안이 새어 나왔다. 저 말을 꺼내기 위해 얼마나 많이 망설였을까. 나는 흔들림 없이 대답했다.
“서윤아, 엄마 이제 도망치지 않아. 책임질 거야.”
서윤이 긴장과 낙담과 모든 부정적인 기운을 몰아내듯 긴 숨을 내쉬었다. 그러고는 벌떡 일어서며 말했다.
“나도 같이 찾을게.”
서윤의 당찬 저음이 방 안 가득 찰랑였다. 나도 아이를 따라 일어섰다. 방은 똑같이 작았지만 숨이 탁 트이는 것 같았다.
여명의 종합장과 생수 한 병을 챙겨서 출발했다. 서윤은 자전거를 끌고 동네 놀이터를, 나는 택시를 타고 시내를 향했다. 여명은 어디서 무얼 하고 있을까. 우리는 여명에 대해 아무것도 모른다는 서윤의 말이 떠올랐다. 우리는 여명이 무엇을 좋아하고 싫어하는지, 서울에서 어떤 나날들을 보냈는지, 외로울 땐 무얼 하며 길고 긴 시간을 견뎌내는지 알지 못했다. 학생들이 자주 간다고 서윤이 일러주었던 장소들을 하나하나 떠올려 보았다. '만화 카페, 코인 노래방, 즉석 사진관, 마라탕집, 햄버거 가게, 대형 문구점'
이 중에서 여명이 찾은 장소가 정말 있을까 걱정이 되었다.
금요일 오후의 시내는 생각보다 한적했다. 북적이는 인파가 없으니 아이를 더 잘 찾을 수 있겠다는 희망도 잠시, 어딜 먼저 가야 할지 감이 오지 않아 막막해졌다. 깊이 생각하지 않고 현재 서있는 곳에서 가까운 순서대로 돌아보기로 했다. 만화카페, 코인노래방, 문구점, 서점, 그리고 햄버거 가게 두 군데에 들어가 분홍색 옷을 입은 단발머리의 여자아이가 왔는지 물었다. 아이는 어디에도 없었다. 땀과 함께 희망이 몸 밖으로 계속 새어나갔다.
햄버거 가게 옆에 빨간 간판의 마라탕 가게가 보였다. 요즘 학생들에게 마라탕이 유행이라는 것쯤은 알고 있었다. 서윤도 종종 마라탕을 시켜 먹곤 하니까. 기대를 품고 마라탕 가게에 들어갔다. 구석에 있는 테이블에서 교복 입은 아이들이 깔깔거리며 대화하고 있었다. 서윤의 또래로 보이는 서글서글한 인상의 여자아이가 나를 맞아주었다.
“어서 오세요. 혼자 오셨나요?”
“아이를 찾고 있는데요, 혹시 분홍색 옷 입은 초등학생 보셨나요? 검은색 단발머리예요.”
여자아이의 눈빛이 반짝였다.
“어? 아까 혼자 있었던 아이 같은데요? 저쪽 테이블에 앉았었어요.”
여자아이가 학생들이 앉아 있는 테이블의 반대쪽을 가리켰다. 구석에 위치한 2인석이었다. 아이의 말에 심장이 동당거렸다.
“언제 왔는데요?”
“오픈 하자마자니까, 11시였어요. 두 시간 정도 됐네요.”
두 시간이라는 말을 듣자 다리에 힘이 풀렸다. 두 시간은 떠나기 충분한 시간이었고, 쫓아가기엔 턱없이 버거운 시간이었다. 나는 마라탕 가게를 나와 시내의 벤치에 쓰러지듯 주저앉았다. 이렇게 해서는 절대 아이를 찾을 수 없었다. 한낮의 뜨거운 태양이 나를 무심하게 비추었다.
*
손에 들고 있던 종합장이 눈에 띄었다. 종합장의 첫 장을 펼치자, 빨간색 색연필로 투박한 직선을 마구 덧댄 불길하고 강렬한 그림이 나왔다. 모르고 본다면 야수파 화가의 그림처럼 감각적으로 보이지만, 아이가 그렸다는 사실을 깨닫는 순간 아이의 정신 건강이 걱정되는 그런 그림이었다. 자세히 보니 그림의 세부 사항이 보였다. 질끈 묶은 머리와 헐렁한 추리닝, 지쳐 보이는 얼굴이 영락없는 서윤이었다. 그림 속에서 서윤은 정면을 응시하고 있었다.
손에 힘을 잔뜩 주고 그린 이 과격한 그림에서 서윤을 향한 여명의 분노와 거부감이 느껴졌다. 그런데 역설적으로 그 그림은 서윤을 향한 관심과 호기심의 증거이기도 했다. 여명은 당차고 굳센, 하지만 속에는 울분을 품고 있는 서윤을 빨간색으로 표현했다. 여명이 서윤을 무서울 정도로 날카롭게 파악했다고, 어쩌면 나보다 딸을 더 정확히 보았을지도 모른다고 생각했다. 서윤을 지켜보는 나는 관찰하는 여명을 따라가지 못할 테니. 그림을 들여다보며 어떤 장면을 떠올렸다. 서윤을 바라보며 그림을 그리는 여명과 여명의 눈에 맺힌 서윤의 상을.
종합장을 넘기니 몇 장에 걸쳐 쭈그려 앉아 있는 서윤의 모습이 나왔다. 얼굴을 확대해서 그린 앞의 그림과 달리 이 장면들에서는 전신을 그려 표정이 강조되지 않았다. 웅크린 자세에서 짙은 외로움이 느껴졌다. 이때 여명은 서윤과 동질감을 느꼈을 것이다. 외로운 사람이 그리는 외로운 대상, 서로 다른 두 외로움이 그림 속에서 공명하고 있었다.
마지막 그림에서 서윤은 웃고 있었다. 딸의 다정한 미소가 낯설었다. 투박한 직선이 마구 덧대진 첫 그림과 달리 마지막 그림은 옅고 가는 선이 겹겹이 쌓여 단단한 층을 이룬 듯해 보였다. 여명과 함께 밥을 먹으며 느꼈던 묘한 기류가 이거였구나. 내가 모르는 사이 둘은 이미 가족이 되었구나. 눈앞에서 그림이 아득히 흐려지며 목이 메어 왔다.
*
벤치 위에 올려놓은 휴대폰이 울렸다. 휴대폰에 담당 경찰관이라는 글자가 화면에 나타났다. 자리에서 벌떡 일어나 초록색 전화기 아이콘을 손가락으로 밀었다. 여보세요,라고 말할 겨를도 없이 경찰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아이 찾았습니다. 기차역에서 발견했습니다.”
이야기를 들어보니 가까운 기차역까지 지하철을 타고 이동했던 것이었다. 여명은 담당 경찰관이 데리고 있다고 했다. 긴장이 한숨을 타고 입 밖으로 빠져나갔다. 금방 가겠다고 이야기하며 전화를 끊으려 했는데, 경찰이 뜸을 들이며 말을 덧붙였다.
“저… 그런데 문제가……”
“네?”
“아이가, 집에 절대 안 돌아간다고 버티고 있습니다. 오셔서 해결하셔야 할 것 같아요. 알아두시는 게 좋을 것 같아 말씀드립니다.”
꿈속의 여명이 달리던 그 길이 떠올랐다. 나는 그대로 몸을 일으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