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부. 여명
1.
“이모랑 언니보다 더 좋은 분들이 보살펴 주실 거야. 더 잘해주지 못해 미안해.”
비겁한 변명이다. 나를 데려온 걸 후회하고 있으면서. 다 알고 있었다. 서윤 언니와 병원을 다녀온 후부터 언니는 나를 계속 피하고 이모의 얼굴은 잿빛으로 물들었으니까. 나는 이제 어떻게 되는 걸까. 나를 돌보겠다는 어른은 있을까.
있다고 해도 순순히 따르기 싫었다. 나를 위하는 척, 걱정하는 척은 이제 필요 없다. 아무도 모르게 사라지고 싶었다. 그러려면 떠나야 했다. 어른들이 찾지 못하는 곳으로.
지갑을 열어 보았다. 장례식장에서 받은 용돈과 지연 이모에게 받은 용돈으로 두툼했다. 30만 원. 엄마 아빠가 살아있을 땐 한 번도 받아본 적 없는 큰돈이었다. 그 돈이 이젠 네가 스스로를 책임지라며 등을 떠미는 것 같았다. 나는 누군가 떠밀면 그대로 밀려날 준비가 되어 있었다. 반장 후보로 추천받은 아이가 못 이기는 척 선거에 나가는 것처럼. 이렇게 된 김에 흔적도 없이 떠나보겠다고 결심했다.
시내까지 혼자 가본 적이 없어 휴대폰을 켜고 어디를 갈지 검색했다. 내 휴대폰으로 위치 추적을 할 수도 있으니 길을 미리 외우고 휴대폰은 꺼놓은 채로 집에 두어야 했다. 나는 시내까지 가는 버스와, 시내에서 지하철을 타는 장소 같은 것들을 외웠다. 길을 외우는 건 예전부터 자신 있었다. 엄마에게 칭찬도 많이 들었는데.
여명이는 공간 감각이 참 좋아. 그림도 잘 그리고 길도 잘 외우고.
엄마의 목소리가 어렴풋이 들렸다. 뚜렷하게 들리지 않는 이유는 벌써 엄마의 목소리가 정확하게 기억나지 않는다는 뜻이겠지. 나는 엄마를 잃어가고 있다. 하얀색이었던 엄마는 점점 투명해져서 사라져만 갔다. 내가 기댈 수 있는 사람은 이제 나밖에 없다. 엄마가 어딘가에서 속상해하고 있겠지만 어쩔 수가 없었다.
첫날 이모네 집에 들고 왔던 배낭에 지갑과 옷들을 모두 챙겼다. 마지막으로 종합장을 넣다가 멈칫했다. 그 종합장은 서윤 언니로 가득 채워져 있었다. 언니에게 마지막으로 선물을 남겨야겠다고 생각했다. 가방에서 색연필을 꺼내고 종합장의 마지막 장을 펼쳤다. 떡볶이 가게에서 오늘은 언니가 살 테니까 마음껏 먹으라던 장난스러운 얼굴이 떠올랐다.
나는 빨간색 색연필로 언니를 그렸다. 웃고 있는 언니의 얼굴이 생각한 것보다 너무 강렬했다. 좀 더 따스한 느낌이면 좋겠는데. 빨간색 선 위에 주황색 색연필로 선을 한 겹 더 그렸다. 아까보다 더 따뜻해졌다. 마지막으로 노란색 선을 그 위에 겹쳐 그렸다. 완성된 모습은 햇살 같기도 하고 불길 같기도 했다. 언니가 나에게 따스한 햇살이었는지 나를 태워버린 불길이었는지 도무지 알 수 없었다.
잠자리에 누웠지만 내일이 걱정되어 쉽게 잠들지 못했다. 버스 정류장까지 가는 길과 지하철역의 입구를 계속 떠올렸다. 지하철을 타고 어디까지 갈지도 생각하지 못했는데. 언제까지 떠돌아다닐지, 잠은 어디서 잘지, 발견되면 어떻게 행동할지 자세히 정한 것이 하나도 없었다. 어둠 속에서 뜬눈으로 걱정을 반복하던 그때, 방문이 벌컥 열렸다. 나는 눈을 꼭 감고 자는 척을 했다. 다정하게 이불을 정리해 주는 손길을 뿌리치고 싶었다. 착한 척 그만하라고, 이게 다 무슨 소용이냐고…… 다시 머릿속에서 지도를 그리자 울컥하던 마음이 겨우 진정됐다. 그러는 사이 사람의 온기가 점점 멀어졌고, 방문이 닫혔다. 나는 한참을 뒤척이다 겨우 잠에 들었다.
*
아침 6시 반, 알람 소리를 듣고 일어났다. 잠을 너무 적게 자서 그런지 눈이 퉁퉁 부어 잘 떠지지 않았다. 밖에서는 아무 소리도 들리지 않았다. 이모와 서윤 언니는 아침잠이 많아 절대 이 시간에 일어나지 못할 거라고 예상했었다. 종합장을 들고 곤히 잠든 이모를 지나 서윤 언니의 방 앞으로 갔다. 웬일로 방문이 살짝 열려 있었다. 언니는 인상을 잔뜩 쓴 채 자고 있었다. 왜 언니는 자는 모습도 저렇게 힘겨워 보일까. 책상 한가운데에 종합장을 두고 언니가 덮고 있는 이불을 살짝 올려주었다.
다시 안방으로 돌아와 휴대폰을 끄고 이모의 화장대 서랍 속에 넣어둔 후, 미리 챙겨놓은 배낭을 메고 집을 나섰다. 현관문을 여니 선선한 공기가 코끝에 닿았다. 드디어 길고 긴 여름이 끝나가는구나. 후련함과 동시에 마음 한구석이 아려왔다. 길고 아픈 여름이었어. 하지만 이제 나는 새로운 계절을 맞을 준비가 되어 있다. 어른들의 간섭 없이 마음껏 먹고, 걷고, 구경할 수 있는 시간. 그 시간을 떠올리자, 불안과 서글픔이 단숨에 가라앉았다. 버스 정류장 뒤편에 심긴 나무에서 싸라락 잎이 스치는 소리가 들렸다. 그 소리가 지금은 너의 때라고 속삭이는 것처럼 들렸다.
나는 대답하는 대신 나무를 보며 고개를 끄덕였다. 뒤를 돌아보니 내가 타야 할 버스가 다가오고 있었다. 모든 타이밍이 완벽하다. 심호흡을 한 번 하고 버스에 올라탔다. 창밖은 마치 다른 세계 같았다. 이모네 아파트 단지는 늘 낡고 삭막해 보였는데, 지금 보니 따스하고 정겨운 동네의 모습이었다. 떠날 때 보이는 풍경은 푸르고 아름다운 거구나, 처음으로 느꼈다.
버스에서 내려보니 아침 일찍의 시내는 텅 비어 활기가 없었다. 사람들은 거리를 통과하여 다른 목적지를 향할 뿐, 시내의 건물 안으로 들어가지는 않았다. 이 시간에 시내로 나와본 것이 처음이었기 때문에 이렇게 가게가 문을 열지 않았을 줄은 몰랐다. 문이 열린 가게를 확인할 겸 시내를 한 바퀴 쭉 둘러보았다. 카페와 옷 가게, 인형 뽑기 가게로 가득 찬 익숙한 구역부터 늘 궁금했지만 그동안 발도 디디지 않았던 술집과 노래방의 거리까지 가리지 않고 모두 돌아다녔다. 내가 가지 못할 곳은 어디도 없다는 자신감이 솟구쳤다.
편의점 외에는 들어갈 공간이 없어 그냥 주변 공원을 걷기로 했다. 목적지를 정해놓지 않고 무작정 걸어보고 싶었으니까. 어제 지도를 찾아봤을 때 시내에서 두세 정거장 떨어진 곳에 중앙공원이라는 이름의 공원이 있었다. 공원에 도착하자 약도가 그려진 팻말 너머로 보도블록이 정갈하게 깔려 있는 길과 양옆으로 늘어선 무성한 나무들이 보였다. 특별하지 않은 곳이었지만, 고요하고 나른한 분위기가 마음에 들었다. 사람들은 그곳에서 말없이 저마다의 산책과 운동을 즐기고 있었다. 그들의 틈새에서 걷다 보니 나도 어엿한 어른이 된 것 같았다. 부푼 마음을 안고 하늘을 바라보았다. 나뭇잎 틈새로 주황빛이 내리쬐는 모습이 환상처럼 아름다워 보였다. 그 빛이 기억 저편에 갇혀 있던 슬픔을 불러일으켰다.
작년 여름의 어느 토요일이었다. 평소 같으면 아빠는 일을 하러 나가거나 거실 한구석에 늘어져 있었겠지만, 그날은 웬일인지 나에게 먼저 놀러 가자고 말을 꺼냈다.
“여명아, 능소화 보러 가자. 부천 중앙공원에 능소화가 예쁘게 폈대.”
아빠의 말에는 어린아이와 같은 기대감이 담겨 있었다. 나는 엄마의 눈치를 살폈다. 엄마는 모든 것이 귀찮다는 표정으로 다녀오고 싶으면 둘이 다녀오라고 말했다. 엄마와 아빠는 내가 초등학교에 입학한 뒤로 자주 싸우고 서로를 없는 사람처럼 취급했는데 그날도 그중 하루였다. 아빠는 엄마를 쳐다도 보지 않고 나를 데리고 집을 나왔다.
“여명아, 능소화의 꽃말이 뭔지 알아?”
차에서 아빠가 한껏 들뜬 목소리로 물었다.
“뭔데?”
나는 시큰둥하게 되물었다. 살면서 능소화를 본 적이 없을뿐더러 아빠의 꾸며낸 명랑함이 못마땅했다.
“그리움이래. 옛날 궁궐에서 소화라는 궁녀가 임금의 사랑을 듬뿍 받았는데, 임금이 자신을 찾지 않자 담장가에 묻어달라는 유언만 남기고 세상을 떠난 거야. 그 궁녀를 묻은 자리에 피어난 꽃이 바로 능소화래.”
능소화의 꽃잎은 노란빛과 맑은 주황빛이 섞여 신비하고 오묘했다. 아빠가 들려준 이야기 때문인지 능소화 터널을 지나갈 때 누군가의 눈물 사이로 걸어가는 느낌이 들었다. 옆에서 함께 걷는 아빠를 쳐다보았다. 모든 걸 잃은 듯한 처량한 얼굴이 가여워 보였다.
아빠는 왜 나에게 능소화를 보러 가자고 한 걸까. 자기 슬픔을 누군가는 알아주길 바라는 마음이었을까. 문득 아빠는 엄마와 나 이전의 삶이 그리웠던 게 아니었을까 하는 생각이 스쳤다. 곁에 있던 모든 사람을 불행하게 만들고는 자기 자신도 행복하지 않다니. 아빠도 어딘가에서 꽃으로 피었을 것이다. 가는 줄기 끝에 무거운 꽃잎이 달려 축 처진 우스꽝스러운 모양으로. 그 꽃말은 아마 미련이지 않을까.
*
시간 가는 줄 모르고 걷다 보니 다리가 저리고 목이 말라왔다. 하지만 근처에 편의점이 어디 있는지도 모르겠고, 시내까지 걸어갈 체력도 없었다. 날씨가 슬슬 더워져서 그런지 지나다니는 사람도 보이지 않았다. 우선 눈앞에 보이는 벤치에 앉았다.
멀리서 어떤 아저씨가 걸어왔다. 물을 한 모금 얻어 마셔야겠다고 생각했다. 일어나서 아저씨가 있는 방향으로 가려했는데, 뜻밖에도 아저씨가 나를 향해 먼저 다가왔다. 나는 멀뚱히 서서 아저씨가 오는 모습을 지켜봤다. 머리가 군데군데 희끗하게 샌, 아빠보다 나이가 더 많아 보이는 아저씨였다. 내 앞에 선 아저씨가 나긋하게 물었다.
“여기 혼자 온 거니?”
“네, 아침에 산책할 겸 나왔어요.”
나는 마른침을 삼키고 용기 내어 물었다.
“혹시 물 한 모금만 마셔도 될까요?”
아저씨가 빙그레 웃으며 물통을 건넸다. 온화해 보이는 미소였다. 나는 목을 젖히고 정신없이 달콤한 물을 삼켰다. 물통을 돌려주려고 앞을 보자 방금 서 있던 자리에 아저씨가 없었다.
“나도 물 좀 마시자.”
목소리는 내 뒤에서 들렸다. 뒤를 돌아보니 아저씨가 벤치에 앉아 손을 뻗고 있었다. 나는 감사하다고 인사하며 아저씨에게 물통을 돌려주었다. 아저씨는 남아 있는 물을 단숨에 들이켰다. 아저씨의 목 안으로 물이 꿀렁꿀렁 넘어가는 소리가 확성기를 댄 것처럼 요란하게 울렸다.
“이 시간에 여기서 산책을 자주 하니?”
아저씨는 물기로 축축하게 젖은 입을 벌려 물었다. 분명 도움을 준 감사한 분인데, 아저씨가 묘하게 불편해졌다.
“아니요, 여기 근처에 살지 않아서요……”
아저씨가 씨익 웃었다. 얼굴 주름 하나하나가 소름 끼치게 생생히 움직였다.
“그래? 근데 이 시간에 여긴 왜 온 거야? 계속 혼자 걷고 있던데.”
“아, 그냥요.”
주변을 둘러봤지만 여전히 지나가는 사람이 없었다. 벤치를 둘러싼 그늘이 한층 더 짙어 보였다.
“여기 앉아서 아저씨한테 무슨 일이 있었는지 말해봐. 이야기해야 마음이 풀려.”
아저씨가 자기 옆자리를 툭툭 치며 말했다. 그 손짓이 너무 꺼림칙하게 느껴졌다. 나는 가야 할 곳이 있다고 얼버무리며 돌아섰다. 그 순간 뒤에서 친구야, 하는 끈적하고 섬뜩한 목소리가 들려왔다. 뒤돌면 안 된다는 걸 몸이 알아챈 듯, 다리 근육이 멋대로 달리기 시작했다. 친구야, 아가, 어디가 같은 말들이 귀에서 웅웅거렸다. 그때 나도 모르게 누군가를 간절히 불렀다. 엄마도 아빠도 아닌 이름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