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명(16)

6부. 여명

by 소냐

2.


뛰는 내내 애타게 찾은 사람은 서윤 언니였다. 언니가 나를 발견해 “야, 괜찮아?”라고 물어주길 바랐다. 미안하다며 나를 꼭 안아주는 결말까지 상상하면서. 그러나 시내로 뛰어오는 동안 나를 구해준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시내의 거리 안에서 보이지 않는 하나의 점이 된 것만 같았다. 배가 고팠다. 텅 비어있는 속을 무언가로 채워 넣어야만 했다.

당장 들어갈 만한 가게가 있는지 확인하기 위해 주위를 살폈다. 다행히 문을 연 가게들이 보였다. 나는 한 치의 고민 없이 마라탕 가게에 들어갔다. 마라탕을 한 번도 먹어본 적이 없어 궁금했기 때문이다. 학교나 학원이 끝나고 친한 애들끼리 모여 마라탕을 먹으러 갈 때 나는 낄 데가 없어서 혼자 집으로 돌아오곤 했다. 엄마에게 이런 사실을 말하기가 창피해 집에서도 마라탕을 먹고 싶다고 한 적이 없다. 어떤 맛일지 상상해 봤지만, 직접 먹어보지 않으니 그 얼얼함을 이해할 수 없었다.


깨끗하게 닦인 투명한 유리문을 열고 들어가자 알싸한 마라 냄새가 코를 찔렀다. 동시에 떠들썩한 대화 소리가 들렸다. 나보다 나이가 더 많아 보이는 초등학생들 여럿이 음식을 기다리며 대화하는 거였다. 거친 말들이 오갔지만 그들의 얼굴은 더없이 행복해 보였다. 나는 조용히 구석 자리에 앉았다. 직원이 나에게 다가와 상냥하게 물었다.

“혼자 오셨어요?”

“네……”

“메뉴판 보고 카운터에서 주문해 주세요.”

카운터로 가보니 마라탕을 주문하는 방법이 단계별로 친절하게 적혀 있었다.

1. 바구니에 먹고 싶은 재료를 담습니다.

2. 계산대로 가서 저울 위에 올려놓습니다.

3. 계산 후 주문번호를 부르면 자리에서 손을 들어주세요.

마라탕은 생각보다 많은 판단을 필요로 하는 음식이었다. 재료를 담고, 고기를 선택하고, 매운 단계를 조절하는 것까지. 사람들이 마라탕을 먹는 까닭은 마라의 향 때문만은 아닐 것이다. 재료부터 맛까지 직접 선택할 수 있는 작은 자유가 마라탕을 더 찾게 되는 이유일 거라고, 재료를 담으며 속으로 짐작했다. 나는 햄과 소시지 같이 익숙한 재료부터 옥수수면이나 분모자 같이 생소하고 흥미로운 재료들을 그릇에 차례차례 담았다. 맵기 단계는 고민하다 1단계로 주문했다. 나의 배를 채워줄, 오롯이 나만을 위한 한 그릇이었다.

드디어 주문 번호가 불리고, 나는 마라탕을 한 입 맛보았다. 마라탕은 기대한 만큼 특별하지 않았다. 부대찌개 내지는 매운 샤브샤브에 특이한 향을 넣은 맛이었다. 오히려 마라탕보다 더 기억에 남는 건 옆 테이블 초등학생들의 대화 소리였다. 초등학생들은 쉴 틈 없이 떠들며 내가 혼자 있다는 걸 끊임없이 일깨워주었다. 어제 게임 몇 시까지 했어? 야, 마라탕은 야채 다 빼고 소시지랑 분모자로 다 채워 줘야 돼. 맞다 너 걔한테 고백받았잖아. 그래서 받아줄 거야? 등등…… 그들의 대화는 정해진 방향 없이 자유롭게 흘렀다. 나도 대화의 물살에 올라타 그들의 삶을 함께 누비는 것 같았다.

왁자지껄 떠들던 그들은 먼저 자리를 떠나버렸다. 매장에서 내동 흘러나오던 노랫소리가 그제야 들리기 시작했다. 빠르고 신나는 아이돌 노래였다. 하지만 노래는 사람들이 떠난 빈자리를 채워주지 못했다. 텅 빈 의자와 테이블 위를 떠도는 공허한 노래가 한없이 쓸쓸하게 들렸다. 그때 깨달았다. 마라탕을 한 그릇 다 먹고도 여전히 허기가 진다는 걸. 나의 허기는 음식과는 관련이 없다는 걸.


돌아갈까.


속마음이 입 밖으로 새어 나왔다. 그 생각이 떠오르자 내가 너무 연약하게 느껴졌다. 스스로가 실망스러웠다. 여기까지 왔는데, 이제 와서 돌아갈 순 없다. 어른들의 뜻대로 모든 걸 지켜보기만 할 순 없다. 누군가에게 발견되는 한이 있더라도 절대 내 발로 돌아가지 않을 거다. 그렇게 되뇌며 지하철역을 향해 걸어갔다.

평일 낮이라 그런지 지하철 안에는 사람이 별로 없었다. 대낮에 큰 배낭을 메고 혼자 지하철에 탄 여자아이를 사람들이 이상하게 생각하고 신고하지는 않을까 걱정이 됐다. 자리에 앉고 나서도 불안한 마음에 괜히 손톱에 붙은 살점을 뜯었다. 다음 역에서 유치원생인 것 같은 작은 여자아이와 엄마가 나의 맞은편 자리에 앉았다. 엄마는 무슨 일 때문인지 잔뜩 지쳐 보였고, 여자아이는 엄마에게 애교스럽게 조잘거렸다. 엄마는 여전히 피곤한 표정으로 아이의 얼굴을 쓰다듬으며 뭐라고 말했다. 그 장면을 보며 잊고 있었던 말이 떠올랐다.

‘여명이는 엄마의 희망이야.’

엄마는 내가 어렸을 때부터 이 말을 습관처럼 내뱉곤 했다. 주로 아빠와 싸웠을 때 이런 말을 했는데, 그때 엄마 곁에는 정말로 나뿐이었다. 나는 엄마가 초라해지지 않도록 ‘그치, 엄마는 나 같은 예쁜 딸이 있어서 좋겠다’라며 애교를 떨었다. 의기양양하게 말했지만 내 말은 언제나 나를 짓누르고 있었다. 나는 엄마의 예쁜 딸로서 항상 엄마의 곁을 지키며, 밝고 모범적인 아이여야 했다. 엄마에게 잘 보이려고 하던 노력은 습관이 되어 몸에서 쉽게 떨어지지 않았다. 어딜 가든 어른들의 눈치를 살피고 어른들이 바라는 대로 행동했다. 학교에서도, 학원에서도, 심지어 엄마와 아빠의 장례식장에서도. 나는 어른들의 사랑을 받기 위해 목소리를 잃어버린 아이였다.

지금 돌아가면 계속 목소리 없이 살게 될지도 모른다. 목소리를 되찾기 위해 내가 할 수 있는 일은 최대한 먼 곳으로 떠나는 것이다. 어른들의 손이 닿지 않는 곳으로, 돌아가고 싶다는 연약한 생각이 들지 않도록 먼 곳으로. 서울로 가야겠다고 결심했다. 어차피 거기에서도 발견되면 보육원에 들어가겠지만, 절대 여기서 이모가 보내는 보육원으로 가지는 않을 거다. 그건 버려지는 거니까. 사랑과 목소리를 둘 다 잃은 불행한 삶을 살진 않을 거야.


*

지하철에서 내려서 사람들이 우르르 가는 방향으로 따라가니 기차역에 도착했다. 지연 이모와 함께 왔을 때와는 느낌이 전혀 달랐다. 밤의 기차역은 무겁고 지친 분위기였는데 점심때의 기차역은 활기가 넘쳤다. 엘리베이터를 타고 올라가자 분주하게 다니는 사람들의 모습, 갓 구운 빵 냄새, 들뜬 사람들의 말소리 같은 것들이 정신없이 밀려들었다. 기차역은 살아있는 곳이었다.

사람들 틈으로 걸어 들어갔다. 캐리어를 끌고 도란도란 이야기하며 걷는 가족들, 서로 장난을 치며 활짝 웃는 커플, 손을 잡고 앉아 있는 노부부. 그곳에서 나를 보는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내 몸이 점점 더 작은 점이 되어 결국에는 사라진 듯했다. 이 많고 많은 사람들 중 나를 봐주는 사람은 왜 아무도 없는 걸까. 이 넓고 넓은 세상에 내 자리는 왜 없는 걸까. 마른침과 함께 북받쳐 오르는 설움을 삼켰다. 나는 기꺼이 혼자가 되기로 결심했으니까.

서울로 가는 기차표를 사기 위해 매표소를 찾았다. 가방은 갈수록 무거워지고 내 어깨는 점점 처져만 갔다. 어깨와 함께 허리까지 굽은 채 매표소를 찾아 돌아다니던 중 저 멀리서 경찰이 두리번거리며 누군가를 찾는 모습이 보였다. 그 경찰이 찾는 사람이 나라는 걸 직감적으로 알 수 있었다. 나는 경찰의 반대 방향으로 달리기 시작했다. 하지만 가방이 어깨를 누르고 있어 속도가 나지 않았다. “여명아”라는 외침과 함께 나를 뒤쫓는 소리가 들렸다. 나는 그 자리에 가방을 벗어던지고 공원에서 아저씨를 피해 달릴 때처럼 전속력으로 달렸다. 숨이 턱까지 차오르고 사람들의 시선이 한꺼번에 몰려왔다. 결국 다다른 곳은 여자 화장실이었다. 화장실의 칸 안으로 들어가 문을 걸어 잠갔다. 아무도 넘어올 수 없는 안전지대였다. 그 안에서 심장이 터질 것처럼 빠르게 뛰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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