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명(17)

6부. 여명

by 소냐

3.

“여명아, 나와봐.”

경찰이 화장실 밖에서 나를 불렀다. 최대한 다정하게 말하려고 노력한 목소리였다. ‘싫어요.’라고 답하려 했지만 말보다 눈물이 먼저 터졌다. 터져 나오는 눈물을 감당할 수 없어 손으로 얼굴을 가리고 끅끅거리며 울었다. 내가 왜 울고 있는지도 모르는 채. 끈적한 액체가 손을 가득 적셨다.

“여명아, 나와서 얘기하자.”

경찰이 다시 한번 침착하게 말했다. 나는 목 놓아 울었다. 최선을 다해, 있는 힘껏.

으허어엉-

그건 소심한 반항이자 솔직한 표현이었다.

“이렇게 계속 안 나오면 문을 따고 들어갈 수밖에 없어.”

이 문이 열리는 것이 죽을 만큼 싫었지만, 한편으로는 경찰이 나를 포기하고 가버리면 어떡하나 걱정이 되었다. 숨바꼭질에서 마지막까지 숨어 있는 아이처럼 혼자 남겨질까 봐 마음이 조급해졌다. 나는 경찰이 떠나지 못하도록 계속 엉엉 우는 수밖에 없었다. 그러다 울음을 잠깐 그치고 칸막이에 귀를 대 경찰이 그 자리에 계속 있는지 살피고, 있는 걸 확인하면 또 울었다. 이런 나를 이해할 수도, 주체할 수도 없었다.


얼마나 더 울었을까, 칸막이 너머에서 어떤 여자의 단호한 목소리가 들렸다.

“아가, 다른 손님들도 계셔서 더 이상 소란 피우면 안 돼. 스스로 나올 시간을 줄게. 지금 안 나오면 문 따고 들어갈 거야.”

뜨거웠던 숨결이 싸늘하게 식었다. 이 순간에도 다른 사람에게 피해를 주는 아이 취급을 당하는 것이 지긋지긋했다. 나는 울음을 멈추었고, 화장실에 정적이 흘렀다. 얼굴을 흥건하게 뒤덮은 눈물을 닦고 칸막이 밖으로 나왔다. 화장실 안에 있던 사람들이 모두 나를 쳐다봤다. 밀려오는 수치심을 숨기기 위해 도리어 당당한 표정을 지어 보이며 얼굴을 헹궜다. 밖으로 나가자 경찰이 화장실 앞에 쭈그려 앉아 있었다. 그는 나를 보자마자 서둘러 일어나 내 손목을 잡고 말했다.

“집에 가자. 아저씨가 데려다줄게.”

나에게 돌아갈 집 같은 건 없었다. 나는 가지 않겠다는 의미로 고개를 내저었다. 더 이상 말하기가 싫었다.

“이모가 걱정하고 계셔. 가야지.”

나는 더 세차게 고개를 저었다. 이모는 나를 걱정하는 게 아니라 자기 자신을 걱정하는 거겠죠. 내가 잘못되면 본인의 책임이니까. 내가 보육원에 들어가면 어떤 일을 당하든 관심이나 있을까요? 마음껏 비아냥거리고 싶었지만 꾹 참고 침묵을 지켰다.

경찰은 난감한 듯 한숨을 쉬었다. 그리고 이모에게 전화를 걸었다. 나를 기차역에서 찾았지만 내가 돌아가지 않으려고 한다는 내용이었다. 경찰의 휴대폰에서 어쩔 줄 몰라하며 연신 감사하다고 말하는 이모의 목소리가 새어 나왔다. 코가 막히고 잠긴 목소리, 울고 있던 사람의 목소리였다. 이모가 도대체 어떤 마음인지 감도 오지 않았다. 놀라서였을까, 정말 나를 걱정해서였을까. 장례식장에서 나에게 캔 음료와 떡을 건네던 이모의 모습이 떠올랐다. 그때만큼은, 그리고 지금 이 순간만큼은 이모가 나를 진심으로 걱정했다고 믿고 싶었다.

경찰이 편의점에서 사준 팩 음료를 마시며 대합실의 의자에 나란히 앉았다. 경찰은 더 이상 나에게 말을 걸지 않았다. 각자의 음료를 빨며 이모를 기다렸다. 어색한 시간이 소리 없이 천천히 흘러갔다. 마침내 이모가 잘 때 입는 늘어난 티셔츠와 반바지 차림으로 저 멀리서 다가왔다. 머리카락이 땀에 전 채 가닥가닥 이마에 붙어 있었고, 입술에는 혈색이 없었다. 이모는 경찰에게 감사하다고 몇 번이고 다시 인사를 한 후 내 쪽으로 시선을 옮겼다.

“여명아, 이모랑 가자. 이모가 잘못했어.”

이모가 떨리는 목소리로 말하며 나에게 손을 뻗었다. 나는 바닥을 쳐다보며 양손으로 다 마신 주스를 쥔 채 쪽쪽 빨았다. 이모의 눈빛이 흔들렸다. 경찰이 당황하며 이모에게 말했다.

“무슨 일이 있었는지는 모르겠지만, 아이가 진정할 시간이 더 필요한 것 같아요. 어른들이 막 쫓아가고 화장실 문 두드리면서 나오라고 해서 많이 놀랐을 거예요.”

하지만 이모와 나는 둘 다 그 문제가 아니라는 걸 알고 있었다. 이모가 씁쓸한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

“그랬군요. 저희 여명이 찾아주셔서 감사합니다. 바쁘실 텐데.”

“아니에요. 저는 그럼 먼저 가보겠습니다. 아 그전에 서명 한 번.”

경찰이 건넨 서류에 이모가 사인을 했다. 짧은 인사가 오가고 경찰은 떠났다. 기차역에 이모와 나, 둘이 남겨졌다.

이모가 내 옆자리에 앉았다. 나는 이모와 한 칸 떨어진 의자로 자리를 옮겼다. 이모가 담담하게 물었다.

“왜 기차역으로 온 거야?”

“…”

“서울로 가고 싶었니?”

“…”

일부러 고개를 이모의 반대 방향으로 돌렸다. 이모가 나를 읽을 수 없도록. 이모 옆에서 느끼는 안도감을 들키지 않도록.

“여명아, 이거.”

이모가 내 무릎 위로 무언가를 올려놓았다. 서윤 언니에게 마지막으로 선물한 종합장이었다. 이모한테서 받으니 종합장이 낯설게 보여 표지에 적힌 ‘한여명’이라는 글씨를 손가락으로 쓸었다.

“서윤이가 너한테 받은 거라며 보여줬어. 이 종합장 보고 이모가 얼마나 부끄러웠는지 몰라. 여명이 네가 나보다 서윤이를 더 잘 아는 것 같아서……”

이모가 말을 잠시 멈추고는 숨을 골랐다. 진정하려는 노력과는 달리 이모의 손은 산만하게 움직였다. 이모는 힘겹게 말을 이었다.

“그런데, 우리는 너에 대해 아는 게 없어서.”

나는 종합장을 꼭 쥐었다. 내 안에서 단단한 무언가가 한 번에 무너져 내리는 느낌이 들었다. 통쾌하기도, 허탈하기도, 슬프기도 한 처음 느껴보는 감정이었다. 이모가 내 옆자리로 다가왔다. 땀에 젖은 거칠고 차가운 손이 내 손을 덮었다.

“여명아 이모가 미안해. 너에 대해 몰라서 미안해.”


이모의 말과 함께 아무도 알지 못하는 수많은 내가 눈앞을 지나갔다.

방 안에서 가출을 계획하던 나

종합장에 서윤 언니를 그리던 나

여유로운 공원을 홀로 거닐며 행복해하던 나

장례식장 한구석에서 소리 없이 울던 나

서윤 언니의 자전거를 망가뜨리던 나

슬픔을 머금은 아빠를 지켜보던 나

엄마 앞에서 해맑은 척 연기하던 나

그리고 아무도 몰래 아파했던 나.


이모를 바라봤다. 눈앞에서 이모의 얼굴이 엄마의 얼굴로, 아빠의 얼굴로, 선생님의 얼굴로 바뀌었다. 모두 후회로 뒤범벅된 쓸쓸한 눈빛을 하고 있었다. 대답 대신 고개를 끄덕였다. 세상이 위아래로 흔들리며 가벼운 울렁임이 느껴졌다. 고개를 들어 대합실을 바라보자 지나다니는 사람들과 눈이 마주쳤다. 걱정스럽게 나를 보는 할머니, 옅은 미소를 짓고 지나가는 외국인 관광객, 호기심 가득한 눈빛을 보내는 어린아이. 나는 사라지지 않았다. 그 사실이 마음 한구석을 조용히 밝혔다.

“여명아, 우리 이제 집에 갈까?”

이모가 나지막이 물었다. 내 손을 덮고 있던 이모의 손을 맞잡았다. 이모는 소중한 것을 쥐듯 나의 손을 꼭 쥐었다. 기차역을 나서자 초가을의 선선한 바람이 아직 덜 마른 땀과 눈물 위로 스쳐 지나갔다. 나는 조그맣게 말했다.

“시원해요.”

이모가 싱긋 웃으며 대답했다.

“그러게. 이제 가을인가 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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