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명(18)

7부. 서윤

by 소냐

7부. 서윤



소파에 앉아 엄마와 여명을 기다렸다. 시계 초침 소리가 더없이 한가하게 들렸다. 불과 몇 분 전까지만 해도 기차역에서 여명이 발견되었다는 엄마의 전화를 받고 심장이 철렁했었는데. 가출이 성공했다면 여명은 어떻게 살아가게 됐을까. 엄마와 나는…… 그건 우리에게 정말로 일어날 수도 있었던 일이다.

여명이 집을 나간 건 누구의 명백한 잘못도 아니었지만, 동시에 모두의 책임이었다. 우리는 각자가 처한 난감한 상황에서 벗어나기 위해 서로를 궁지에 몰아넣었다. 우리의 행동이 연쇄적으로 얽히고 얽혀 이런 결과를 만들어 버렸다. 다시 돌아간다면 여명이 나가는 걸 막을 수 있을까. 그럴 수 없을 것 같다. 우리는 모두 자신의 안에 갇혀 있기 때문에. 세상을 이해하기 위해선 결국 자기의 몸을 거쳐야 하기 때문에.


*


밖에서 비밀번호를 누르는 소리가 들렸다.

“서윤아, 우리 왔어.”

엄마가 신발을 벗으며 먼 곳으로 여행을 다녀온 사람처럼 말했다. 소파에서 일어나 엄마와 여명에게로 다가갔다. 여명이 엄마 뒤에서 쭈뼛대며 신발을 벗었다. 나는 신발장 앞에 어중간하게 서서 여명에게 잘 왔다고, 기다렸다고 말했다. 평소에 하지 않던 낯간지러운 말을 입안에 머금으니 얼굴 근육 하나하나가 부자연스럽게 움직이는 것 같았다.

“얼른 뭐라도 먹자. 배고프다.”

엄마가 아이의 어깨에 팔을 감싸고 다정하게 거실로 들어왔다. 둘 사이에 감도는 어색한 기류를 무시할 순 없었지만, 엄마의 노력하는 모습이 마음을 찡하게 했다. 엄마는 여명에게 쉬고 있으라고 말하고는 서둘러 주방으로 향했다. 여명이 거실 바닥에 가방을 내려놓고 소파에 앉았다. 엄마처럼 아이에게 살갑게 다가가고 싶어 그 옆에 앉았는데 무슨 이야기를 해야 할지 몰라 입술만 달싹거렸다.

냉장고를 뒤적이며 먹을 것을 준비하던 엄마의 휴대폰에서 전화벨이 울렸다. 전화번호를 확인한 엄마는 당혹스러운 기색으로 나와 여명을 쳐다보더니 안방으로 들어가 문을 닫았다. 우리 앞에서 받기엔 껄끄러운 전화인 듯했다. 하지만 거실이 너무 조용했기 때문에 엄마의 목소리가 선명히 들려왔다.

“오늘 오시기로 약속했는데 죄송해서 어쩌죠.”

“아니요, 그냥 보내지 않기로 했어요.”

“네, 그게 사정이 있어서.”

“철회 서류는 다음 주에 제출할게요. 정말 죄송합니다.”

여명의 표정이 점점 굳어졌다. 실제로 시설 입소가 예정되었던 것이 적잖이 충격인 모양이었다. 나 역시 숨이 막혔다. 시설이라는 말을 먼저 꺼낸 사람은 나였기 때문에. 아이의 얼굴을 살피다 손에 들려 있는 종합장을 보고 말을 걸었다.


“다시 주인에게로 돌아갔네.”

“그러게요. 이거 언니한테 선물한 건데.”

여명이 나에게 종합장을 건네며 중얼거렸다.

“이 안에 나만 그려져 있더라고. 그래도 네 소중한 작품들인데 왜 나한테 준 거야?”

할 말이 없어서 가볍게 물었는데, 의미심장한 대답이 돌아왔다.

“그냥, 오해를 풀고 싶어서요. 저는 일부러 그런 말을 한 게 아닌데……”

오해? 그런 말? 여명의 말을 하나도 이해할 수 없었다.

“무슨 말이야? 여명아 내가 뭔가 오해했어?”

“음.”

여명이 인상을 찡그린 채 생각에 빠졌다. 속으로 할 말을 정리하는 것처럼 보였다. 하긴, 초등학교 3학년에게 말로 오해를 푸는 건 쉽지 않은 일일 것이다. 그게 어려워서 나도 풀어야 할 오해가 쌓여 있는걸.


마침내 여명이 입을 열었다.

“떡볶이 먹은 날 기억나요? 언니가 저 병원 데려다준 날.”

나는 고개를 끄덕였다.

“그날 제가 물었었잖아요. 언니는 왜 아빠랑 같이 살지 않냐고. 그때 언니가 어떤 기분일지는 전혀 생각하지 못했어요. 너는 그래도 아빠가 있었잖아,라는 말을 듣고 나서야 언니가 얼마나 상처받았는지 깨달았어요. 저 일부러 아빠 얘기 꺼낸 게 아니에요. 언니에 대해서 더 알고 싶어서 그랬던 거예요. 정말로.”

알아, 여명아 다 알아. 내가 답하기도 전에 여명이 이어서 말했다.

“언니가 그때 저한테 충격받아서 저를 내보내기로 결심한 것 알아요. 죄송해요…… 저는 버려져도 할 말이 없어요.”

여명의 눈시울이 붉어졌다. 이전에도 본 적 있는 모습. 나는 눈물을 보이는 아이 앞에서 이전처럼 속절없이 얼어버렸다. 오해를 한 사람은 내가 아닌 너인데 이걸 어떻게 설명해야 할지 모르겠다. 말을 잘못 꺼내서 또다시 오해를 사면 어떡하지. 그럼 정말 만회할 수 없을 것만 같은데……

불현듯 몸 안에 갇힌 우리가 할 수 있는 건 몸부림뿐이라는 생각이 스쳤다. 어떻게든 타인에게 닿기 위해 애쓰는 것. 눈을 맞추고, 대화를 나누고, 손을 잡는 것. 오해를 받더라도, 헛된 몸짓이어도 상관없다. 이런 시도마저 없으면 우리는 서로에게 가까이 다가가지 못한 채 끝끝내 외로울 테니.

“오해야, 여명아.”

여명이 그렁그렁한 눈으로 나를 바라봤다.

“그때 널 내보내기로 결심한 게 아니야. 그땐 내가 내 상처에 혼자 베였던 거야.”

여명에게 가까이 다가가 아이를 꼭 안았다. 여명의 몸은 힘이 잔뜩 들어간 채 뻣뻣하게 굳어 있었다.

“네 잘못 아니야 여명아. 미안해, 미안해.”

나는 미안하다는 말밖에 할 수 없었다. 내 마음을 전부 나타내지는 못하지만 진심에서 우러나온 말이었다. 여명이 힘을 풀고 내 어깨에 기대 훌쩍였다. 여명이 숨을 내뱉을 때 내 몸도 아이와 함께 들썩였다. 그 순간, 우리는 같은 호흡을 나눴다. 각자의 몸에서 벗어나 서로를 만났다.


*


날이 저물고 우리의 소란도 잦아들었다. 엄마와 나, 여명은 식탁에 둘러앉았다. 된장찌개와 밑반찬이 차려진 소박한 식탁이었다. 앞서 일어났던 일이 모두 꿈같기도 하고, 함께 둘러앉은 이 시간이 꿈같기도 했다. 저녁 밥상에 내리 앉은 침묵을 먼저 깬 사람은 엄마였다.

“여명아, 오늘 혼자서 뭐 하면서 돌아다녔어?”

그냥요, 라며 둘러댈 줄 알았던 여명은 생각보다 흔쾌히 답을 했다.

“공원에서 산책하고 마라탕 먹었어요. 저 한 번도 마라탕 먹어본 적 없거든요. 다들 마라탕 타령을 해서 뭔가 특별할 줄 알았는데, 생각보다 그냥 그랬어요. 재료 담는 재미만 있지 맛은 좀 실망이었어요.”

생각보다 직설적인 여명의 말에 웃음이 터져 나왔다. 이 아이, 은근한 날카로움이 있단 말이지.

“맞아, 나도 마라탕 별로더라. 여명이가 뭘 좀 아네.”

내가 맞장구치자 여명이 우쭐한 표정을 지어 보였다. 엄마는 우리를 보며 킥킥 웃더니 무언가 생각난 듯 말을 꺼냈다.

“아참, 여명이 그림 잘 그리더라. 이모가 지금까지 본 학생 그림 중에서 제일 인상 깊었어. 잘 그리는 아이들은 많은데 감정을 담아낼 수 있는 아이는 정말 드물거든.”

“엄마가 옛날에 초등학교 선생님이었어. 나도 말로만 들었는데.”

“정말요? 왜 그만두신 거예요?”

엄마가 멋쩍게 웃었다.

“벌써 20년이 넘었네. 서윤이 낳기 전에 그만뒀어. 동화 쓰는 것에 전념하려고 포기했는데, 지금 생각해 보면 왜 그렇게 성급히 결정했나 싶어. 그냥 도망치고 싶었던 것 같아. 매일 사람들을 만나 복닥거리는 게 징글징글하게 느껴졌거든. 반면 내 공간에서 홀로 글을 쓰는 건 안전하고 평온하기만 했지. 그런데 그 혼자의 자리가 나를 세상으로부터 서서히 고립시키더라. 그걸 깨달았을 땐 이미 사람들과 너무 멀어져 있었어. 여명아, 네가 그 자리에 겁먹고 서 있던 이모를 한 발짝 떼게 한 거야.”


처음이었다. 엄마가 나의 엄마가 아니라 인간 김지연으로 보인 건. 왜 엄마가 동화 속 세상을 그토록 고집했는지 알게 되었다. 고집한 게 아니라 그 속에 갇힌 거였다. 동화에서 빠져나와 사람들과 연결되고 싶던 엄마를 꺼내준 사람이 아빠도 나도 아닌 여명이라니. 삶은 참 알 수 없는 거구나. 엄마를 바라보며 물었다.

“그럼 여명이는 앞으로 쭉 우리랑 함께 사는 거지?”

엄마는 여명을 보며 말했다.

“그건 여명이한테 물어야 할 것 같은데? 여명아, 우리의 가족이 되어줄래?”

여명이 수줍게 웃었다. 해가 떠오르는 순간을 닮은 미소였다. 그제야 알 수 있었다, 십 년 전 아빠가 느꼈던 감정을.

새벽녘의 어슴푸레한 푸른빛이 얼마나 아름다운지, 그리고 또 슬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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