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필로그
우리는 새로운 이름을 가지게 되었다. 김서윤, 그리고 김여명. 여명을 입양한 뒤 엄마의 성씨를 따르기로 한 까닭이다. 한 지붕 아래 같은 성을 가진 세 사람. 우리는 제법 가족다워졌다. 아직 여명이 엄마를 이모라고 부르긴 하지만.
선선하던 날씨는 금세 쌀쌀해졌고, 어느덧 한 해의 마무리만을 앞두고 있다. 10대의 끝자락에서 나는 매일 밤 설렘인지 불안함인지 모를 떨림으로 뒤척인다. 여명을 가족으로 맞이한 후 알바를 그만두고 입시를 위한 공부를 시작했다. 내가 뭘 잘하는지, 무엇에 관심이 있는지 모르겠어서 선택할 수 있는 길이 공부밖에 없었다. 당연히 지금까지 포기했던 성적이 단번에 오를 리는 없었고, 수능 시험에서 형편없는 점수를 받았다. 시험장을 나오며 재수를 결심했다. 나도 미래를 꿈꿔 보고 싶었다. 내 또래의 여느 아이들처럼, 그리고 여명처럼.
뚜렷한 재능을 가진 여명에게 남몰래 질투심을 느낀다. 여명의 그림은 엄마가 이야기했던 것처럼 초등학생의 작품에서 보기 드물게 구체적인 감정을 담고 있다. 슬픔, 우울, 외로움, 분노와 같은 무거운 감정들이 투박한 색연필 선과 강렬한 색채에 녹아 있다. 신기한 점은 여명의 그림을 보다 보면 부정적인 감정에 전염되는 게 아니라, 내가 느꼈던 격한 감정이 받아들여지는 일종의 치유를 경험하게 된다는 것이다.
엄마는 여명의 재능을 눈여겨보고는 함께 동화책을 만들자고 제안했다. 여명의 야수적인 그림은 엄마의 부드럽고 따뜻한 소설과 묘한 부조화를 이루었고, 그 부조화는 동화책이 담아내기 어려운 깊이를 만들었다. 나는 공부하다 머리가 지끈거리면 둘의 작품을 보며 그들이 만들어낸 아스라한 세계에 빠져들었다.
엄마와 여명의 옆에서 내가 유독 작아지는 날이면 자전거를 타고 강변의 산책로를 하염없이 달렸다. 칼바람에 발가락과 콧잔등이 얼어붙을 때 열등감도 함께 마비됐다. 그 해방감은 과연 중독적이었다. 그렇게 시작된 자전거 타기는 별것 없는 일상에 활기를 불어넣었고 하루 중 가장 기다리는 시간이 되었다. 나는 비로소 혼자의 시간을 사랑하게 되었다.
*
“아직도 자취가 하고 싶어?”
밥을 먹다 말고 엄마가 묻는다. 몇 달 전 카페에서 했던 대화가 내동 마음에 걸렸나 보다. 여명이 눈을 동그랗게 뜨고 나를 본다.
“글쎄.”
혼자의 시간이 매력적인 한편, 여명과 함께 사는 것은 여전히 불편하다. 현재 여명과 나는 안방에서, 엄마는 내 방에서 생활하고 있다. 그래서 밤늦게 도서관에서 돌아오면 여명이 깨지 않게 조용히 잘 준비를 해야 하고, 바닥에 이불을 깔고 누우면 등이 배겨 불편하다. 또 여명의 코 고는 소리에 잠들기 힘들 때도 있다. 솔직히 이런 사소한 불편함보다 여명과 비교되어 초라해지는 게 더 견디기 힘들다. 그 마음을 이겨내려 얼마나 오랜 시간 자전거를 타고, 잠자리에서 뒤척였던가.
엄마와 함께 사는 것은 또 어떻고. 집에서 쉴 때마다 은근하게 눈치가 보이고, 나의 수험생 스트레스와 엄마의 마감 기간 예민함이 만나면 냉전이 벌어진다. 나만 빼고 여명과 엄마 사이가 부쩍 가까워진 것 같아 질투가 날 때도 있다. 이런 점들을 생각하면 분명 나가고 싶다.
그렇지만,
공부하다 밤늦게 들어왔는데, 스탠드를 켜놓고 소파에서 졸고 있는 엄마가 보일 때,
식탁에 셋이 둘러앉아 라면을 끓여 먹으며 맛있다고 호들갑을 떨 때,
여명이 그려준 우리 가족의 그림을 안방 벽면에 붙일 때,
함께 집 앞 카페에서 바닐라 라떼를 마시며 은은하게 내리쬐는 햇살을 받을 때면
이 가족을 떠날 수 없을 것만 같다.
나는 가볍게 한마디를 덧붙인다.
“지금이 좋아.”
“웬일이래. 언니가 변했어, 여명아”라고 장난스레 말하며 은근히 안도하는 엄마와 그늘 없이 맑은 웃음을 짓는 여명을 보며 기분 좋은 포만감을 느낀다. 어쩐지 나는 혼자보다 새로운 ‘우리’가 더 끌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