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년의 방문
마치 태초 이전의 상태인 양 어둠과 적막으로 감싸인 방에 누워, 나는 멍하니 허공을 바라본다. 오래된 마룻바닥과 창틈으로 새어 들어오는 겨울의 매서운 한기에 살끝이 떨려온다. 몸을 한껏 웅크리고 이리저리 뒤척이다, 이불을 들추고 일어나 두어 걸음 앞에 있는 책상으로 향한다. 이불이 스치는 소리와 나무 바닥을 묵직하게 누르는 발소리, 입에서 흘러나오는 메마른 기침 소리가 무거운 적막을 맥없이 가른다. 책상 위에 놓인 노란 독서 등을 켜자 상판에 희미한 빛이 고인다. 아무 데나 펼쳐진 채 놓여 있는 두꺼운 책들, 한쪽 다리만 접힌 금속테의 안경, 노트북과 먼지 쌓인 키보드, 글자가 빼곡하게 적힌 노트와 뭉툭하게 닳은 연필이 어지럽게 흐트러져 있다. 그 앞에 앉아 노트북을 열고 문서 파일에 들어간다. 흰 바탕 위에서 검은색 커서가 일정한 속도로 깜빡거린다. 몇 시간 전과 같이, 어제도 몇 달 전에도 십수 년 전에도 늘 그랬듯.
탕탕탕. 밖에서 철제 대문을 두드리는 창백한 소리가 들린다.
계세요?
이렇게 야심한 새벽에 나를 찾을 사람도 없을뿐더러 이 집은 산속 깊은 곳, 사람들이 밤중에 쉬이 찾아올 수 없는 곳에 있다. 얇은 잠옷 위에 겉옷을 대강 걸치고 손전등을 든 채, 눈발이 날리는 어둠 속으로 나아간다. 대문을 열자 기분 나쁜 끼익 소리가 나며, 계절에 맞지 않는 곤색 면 잠바를 입은 깡마른 소년이 모습을 드러낸다. 오랜 시간 바깥을 헤맸는지 코와 귀가 벌겋게 얼었고, 머리카락과 옷에는 흰 눈이 잔뜩 흩뿌려져 있다. 소년이 파르르 떨리는 입술을 열어 묻는다.
저, 홀 선생님이신가요?
그의 맑은 목소리에 털이 곤두서며 온몸이 굳는다. 이 소년은 나를 어떻게 아는 걸까.
30년 전부터, 그러니까 갓 성인이 되어 부모와 완전히 연을 끊은 이후로 나는 다 허물어져 가는 산속의 작은 집에서 살기 시작했다. 가장 어두운 시간, 가장 어두운 장소에 은닉하고 싶었던 나는, 언젠가부터 마음에 품고 있던―동이 트기 전 어두운 새벽을 뜻하는―‘홀‘자로 필명을 짓고 얼굴 없는 소설가로서의 활동을 시작했다. 첫 소설에서 실존의 순간을 다루며 고독과 우울의 정서를 깊이 있게 묘사한다는 문단의 호평을 받은 이후로 지금까지도 일부 애호가들의 지지를 받으며 활동을 이어가고 있다. 그렇게 아무도 방해할 수 없는 호젓하고 안전한 세계를 누리고 있었는데, 소년이 불쑥 나를 찾아온 것이다.
선생님, 부탁이 있어서 왔습니다…….
숨을 쎅쎅 몰아쉬며 들릴 듯 말 듯한 목소리로 말하는 소년을 보며 밖에 더 서있다간 자칫 동사할 수도 있겠다는 판단이 선다. 일단 집에 들어가자고 말하니 소년은 감사하다며 고개를 조아리고는 나를 따라 대문 안으로 들어온다. 따뜻한 물을 몇 모금 홀짝대자, 소년의 허옇던 입술에 생기가 돈다.
무슨 부탁이길래 이 시간에 찾아온 거냐?
소년이 들고 있던 컵을 식탁 위에 조심스레 내려놓고 입을 뗀다.
저…… 선생님, 제 이야기를 소설로 써주세요. 부탁드립니다.
말을 마치자마자 컵을 향하던 소년의 시선이 나의 눈동자 한가운데에 꽂힌다. 가늘고 힘없는 목소리와는 달리, 맑고 깊은 갈색의 눈동자는 비 온 뒤의 흙처럼 촉촉하고 생동감이 넘친다.
하지만, 지금은 한밤중이잖니.
이런 대화를 나누기에 이보다 더 적절한 시간이 어디 있겠어요?
소년의 당돌함이 마음에 든다. 그의 입에서 나올 이야기가 궁금하다. 하지만 동시에 절대 들어선 안 될 이야기가 나올 것처럼 어딘가 모르게 꺼림칙하다.
좋아, 어떤 이야기인지 들어보고 쓸지 말지 정하도록 하지. 그런데 왜 본인의 이야기를 나한테 써달라고 하는 건가?
소년은 입을 꾹 다물고 골똘히 생각하더니, 머릿속으로 정리한 말을 느릿하게 뱉는다.
선생님이 제 마음을 가장 잘 표현해 주실 것 같아서요. 오랫동안 케케묵어 썩은 냄새가 나는 감정을요. 목 끝에서 찰랑이는 이야기를 더 이상 삼킬 수가 없어 여기까지 찾아왔어요. 선생님이 제 이야기를 써주시면 정말 큰 위로가 될 거예요.
위로라니. 자기 스스로도 감정을 주체하지 못하는데 다른 사람에게 그걸 맡기는 게 어리석다고 생각하지 않나?
그런 거 있잖아요. 다른 사람이 쓴 글에서 내가 평소에 생각했던 거나 느꼈던 것을 발견할 때의 반가움 내지는 안도감이요. 나만 그랬던 게 아니구나 하는……. 선생님은 어떻게 생각하실지 모르겠지만 저한텐 그게 위로예요.
음, 안타깝게도 나는 누군가를 위로하기 위한 글은 쓰지 않아. 나와 독자들의 흥미를 자극하는 이야기만을 쓰지. 모든 이야기가 글이 될 수 있는 건 아니야.
그럼 일단 들어보고 판단하세요. 분명 흥미로울 테니까요.
소년은 옅은 조소를 띠며 말을 이어나간다.
*
엄마와 아빠가 자란 동네도 여기와 비슷한 산속 시골 마을이었어요. 사람 사는 곳이라면 응당 그렇듯 거기에서도 온갖 냄새 나는 추잡한 일들이 벌어졌죠. 시골에서는 그런 일들이 묻히지 않고 온 마을에 퍼지기 때문에 더 많은 사건이 일어난 것처럼 느껴진다고 아빠는 말했어요. 소소하게는 곗돈을 들고 사라져 버리는 아주머니나 젊고 예쁜 새 신부에게 끈질기게 구애하는 마을의 터줏대감부터, 몰래 마약을 하는 청년들과 산속 깊숙한 곳에서 일어나는 범죄까지. 물론 거기엔 이렇게 천박하고 한심한 사람들만 있던 건 아니었어요. 모두에게 존경받는 훌륭한 인물도 있었죠. 대표적인 사람이 바로 엄마의 아버지, 그러니까 제 할아버지였어요. 할아버지는 마치 조선시대 때 지방으로 유배당한 덕망 있는 학자처럼 홀로 고고하셨대요. 시와 수필을 주로 쓰던 유명한 문인인 그분은 마을의 자부심이자 얼굴이었어요.
초등학생 때 엄마를 처음 본 아빠는 엄마를 처음 본 순간 단번에 마음을 빼앗겨 버렸대요. 사람들과 섞이지 않고 조용히 창밖을 바라보는 아이, 얼굴에 슬픔이 묻어있는 아이. 아빠의 부단한 노력으로 둘은 가까운 사이가 되었지만, 아빠는 엄마에 대해 아무것도 모른다고 느껴졌어요. 해가 저물어갈 무렵, 집에 돌아가야 하는 시간이면 숨을 크게 들이마시고 먼 곳을 결연하게 응시하는 엄마를 볼 때 더욱이 그런 기분이 들었죠.
아빠가 엄마의 비밀을 처음으로 알게 된 건 고등학교 입학을 앞둘 때였어요. 초등학교, 중학교를 여태 함께 다니다 아빠는 남고로, 엄마는 여고로 가게 되었죠. 아빠는 이렇게 영영 엄마와 멀어질 수 있겠다는 생각에 고백을 결심합니다. 눈 내리는 겨울, 노란 가로등 아래에서 낭만적인 첫 연애가 시작될 거라 기대하며 잔뜩 부푼 마음으로요.
“나 너 좋아해, 나랑 만나자.”
오랫동안 묵혀왔던 그 말이 떨어지자마자 엄마의 표정이 싸늘하게 굳어 버렸대요. 아빠는 멋쩍게 웃으며 네가 부담스럽다면 고백을 받아주지 않아도 괜찮다고, 신경 쓰지 말라고 횡설수설하며 상황을 어떻게든 수습하려 했어요. 아빠의 말이 끝나고도 한참 동안 침묵을 지키던 엄마가 이윽고 입을 뗐어요.
“난 네가 생각하는 그런 애가 아니야.”
“그게 무슨 말이야?”
“연애 같은 거…… 나는 못해.”
그 순간 오만가지 생각이 아빠의 머리를 어지럽혔을 거예요. 연애를 할 마음의 여유가 없다는 걸까, 예의 바른 거절일까, 아니면 아버지의 반대가 심해서 연애를 시작할 엄두가 나지 않는 걸까. 엄마는 굳어 버린 아빠에게 한 발짝 가까이 다가갔어요.
“이거 봐.”
그러더니 갑자기 입고 있던 코트의 단추를 푸르고 머리를 한쪽으로 넘기는 거예요. 목덜미에서 나는 부드러운 꽃향기로 아빠의 정신이 아득해졌죠. 엄마가 티셔츠의 목부분을 당기자 노란 불빛 아래서 가녀린 쇄골과 어깨가 드러났어요. 갑자기 교태를 부리는 엄마의 모습에 당황한 아빠는 곧바로 이상함을 눈치채지 못했지만, 이내 하얀 피부에 물든 푸르스름한 흔적들이 눈에 들어왔어요.
“안 보이는 곳에 더 있어. 다른 사람한테 말하면 죽여버릴 거야.”
단호한 태도에 아빠는 어찌할 바를 모르고 그대로 얼어버렸대요. 엄마는 다시 옷을 원래대로 걸치고 코트 단추를 채운 뒤돌아섰죠. 엄마 딴에는 그만 다가오라는 나름의 위협이었을 거예요. 하지만 이런 상황에서 나의 무능을 인정하고 사랑을 포기하는 남자가 몇이나 될까요? 아빠는 엄마의 손을 붙잡고 함께 해결해 보자고, 벗어나도록 도와주겠다고 애원하듯 말했어요.
“어떻게?”
엄마의 눈에는 불신이 가득 차 있었고, 목소리는 그 어느 때보다도 날카로웠죠. 아빠는 고백할 때보다 더욱 거세게 요동치는 심장박동을 느끼며 대답합니다.
“결혼하자, 나랑.”
아빠의 말은 현실로 이루어졌어요. 둘은 고등학교를 졸업하자마자 각자의 집을 떠나 혼인 신고를 합니다. 어려운 형편 속에서도 애지중지 키우던 아들의 폭탄 같은 선언에 아빠의 부모님은 입에 거품을 물고 반대를 했지만, 몰래 짐을 싸서 나오는 아들을 막진 못했어요. 엄마도 할아버지가 마을 주민들과 늦게까지 술을 마시는 틈을 타 집을 나왔다고 해요. 두 사람은 작디작은 시골 마을을 처음으로 벗어나 가까운 소도시에서 자리를 잡게 됩니다. 거기서 제가 태어났고요.
*
뒤에 나올 내용이야 뻔하지. 동화 같은 결말을 소개하려고 여기까지 찾아온 건 아닐 거고, 구원의 실패와 그럼에도 불구하고 지리멸렬하게 이어지는 삶, 그런 얘기 아니겠어? 그건 너무 진부해. 진부하다고!
소년이 황당하다는 듯 눈을 동그랗게 뜨고 나를 바라본다.
진부하다니요? 우리네 인생이 원래 그렇잖아요. 우리의 삶은 어떤 사건에서 끝나지 않는다고요. 그 사건 이후에 어떻게든 또 살아 나가야 하죠. 그러다 또 다른 사건이 생기고, 또 삶은 이어지고, 이 진부한 과정이 인생이잖아요. 그걸 진부하지 않은 참신한 언어로 담아내는 게 선생님의 역할 아닌가요?
그래도 네 이야기는 어쩐지 듣기가 싫다. 뭐라 해야 하지, 너무 빤해. 심지어 겪어본 것 같은 느낌마저 드니까. 집에 돌아가라. 네 이야기가 쓰일 일은 없을 것 같으니.
내가 의자에서 벌떡 일어나자 소년이 옷소매를 붙잡는다.
더 들어보세요. 아직 본격적인 이야기는 시작도 안 했어요.
낯이 익은 이야기여서인지, 마치 대본을 읽는 듯 지나치게 유려한 소년의 말솜씨가 기이하게 느껴져서인지 이야기를 더 듣는 것이 꺼려졌지만, 속는 셈 치고 들어보기로 한다. 사실은 저 깊숙한 곳에 자리한 내면의 촉수들이 이 이야기를 향해 뻗어 있기 때문이다. 나는 말없이 다시 자리에 앉는다. 소년이 나긋한 목소리로 말을 이어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