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년의 이야기
가출을 대비해 미리 모아두었던 티끌 같은 돈으로 반지하 월셋방을 구한 뒤, 아빠는 가장으로서의 책임을 다하기 위해 공사 현장, 이삿짐센터, 물류 센터 같은 열악한 환경에서 몸이 부서져라 일을 했어요. 엄마도 처음에는 식당에서 주방 보조 아르바이트를 하며 생활비를 보탰고요. 그런데 어느 순간부터 빛이 잘 들어오지 않는 반지하 방에 홀로 남겨졌어요. 덜컥 아이가 생겨버렸거든요. 졸업 후 책에는 손도 대지 않았던 엄마가 텔레비전도 없는 그 방에서 무얼 하며 시간을 보냈는지는 아직도 모르겠어요.
제 어린 시절 기억은 온통 엄마뿐이었어요. 엄마가 저를 밖으로 데리고 나가는 일이 드물어서였을까요. 몇 살 때의 기억인지는 모르겠지만 집 공기를 무겁게 누르는 정적과 창밖을 멍하니 보는 엄마의 모습이 선명하게 떠올라요. 저도 엄마를 따라 창밖을 보았지만 그때가 낮이었는지 밤이었는지, 날씨가 어땠는지는 기억이 나지 않아요. 제 기억에 남아 있는 건 어떤 감정도 느껴지지 않는 서늘한 무표정뿐이에요. 하지만 엄마가 항상 이렇게 어두웠던 건 아니었어요. 미국으로 이민을 간 이모와 통화할 때 엄마는 비로소 살아있는 존재가 된 듯했죠. 아빠에 대한 욕도 하고, 훌쩍거리기도 하고, 깔깔대며 웃기도 하고, 격양된 목소리로 이모한테 따박따박 쏘아붙이기도 하면서요. 그러니 아무것도 모르는 어린 시절, 전화기도 생명이라고 생각했던 건 지극히 자연스러운 일이었어요.
제가 엄마라는 단 하나의 거대한 세계에서 처음으로 벗어나게 된 건 초등학교에 입학한 후부터예요. 거의 처음으로 경험해 보는 낯선 사람들과의 교류는 정말이지 공포 그 자체였어요. 사람들의 말과 행동에 어떤 의도가 담겨있는지 알 수가 없어 혼란의 연속이었고, 얼굴이 새빨개진 채 말을 더듬는 스스로에 대한 수치심으로 매일 고통스러웠죠. 그런 저를 건져낸 존재는 선생님도 친구도 아닌 책이었어요. 엄마가 책을 별로 좋아하지 않았기 때문에 집에는 책이 거의 없었거든요. 그런데 학교 도서관에 가보니 책이 어마 무시하게 많은 겁니다. 문학, 인문, 과학, 예술 등으로 구분 지어진 책장 사이사이를 돌아다니며 책의 세계가 광대하다는 걸 몸소 느꼈어요. 문자로 이루어진 신비로운 세계에 매료되었던 저는 틈만 나면 도서관에 드나들었고, 걸신들린 사람처럼 닥치는 대로 책을 읽었어요.
책을 통해 다양한 분야의 지식을 얻는 것도 좋았으나, 가장 매혹적인 독서는 다름 아닌 소설을 읽는 거였어요. 이 세상에는 존재하지 않는 다른 세계 속으로 들어가는 건 정말이지 짜릿한 경험이었죠. 작가들은 혼돈과 공허가 가득한 종이 위에 언어로 땅과 하늘과 바다를 만들고, 계절과 낮과 밤을 만들고, 인물을 한 명 한 명 빚어냈어요. 그렇게 만들어진 세상 속에서 저는 타인과 대화하기 위해 말을 더듬지 않아도 됐고, 얼굴이 빨개질까 불안해하지 않을 수 있었어요. 인간이 만든 정교한 거짓인 이야기 속에서 참된 자유를 느꼈다고 하면 좀 우스운가요. 아무튼 그렇게 여러 책들을 전전하다 운명적으로 만나게 된 이야기가 바로 『프랑켄슈타인』이었어요. 어린이용 소설이라 많은 부분이 생략되었음에도 그 소설을 처음 읽었을 때의 전율은 잊히지 않아요. 원치 않은 삶을 부여받은 괴물의 고통이 제가 느끼던 것과 완전히 일치했거든요.
세상에서 이런 고통을 아는 사람은 나밖에 없는 줄 알았는데 그게 아니었다고 소년은 말한다. 무인도에서 구조되기를 포기하고 홀로 살아가고 있었는데 저 멀리서 사람의 실루엣이 보일 때의 감격, 나도 알고 있다. 괴물의 삶이 고독과 분노로 피폐해질수록 나의 찢긴 마음에는 새살이 돋았다. ‘나만 그런 게 아니구나, 나만 그런 게 아니었어.’ 중얼거리며 책이 닳도록 읽고 또 읽었었지. 군데군데 기워진 녹색의 얼굴이 대문짝만하게 그려진 표지가 눈앞에 아른거린다. 뽀얀 먼지가 날려 안개가 낀 듯한 동네의 헌책방. 누르스름하고 두툼한 해외 고전. 그 책들 안에 담긴 세계는 절대 빛이 바래지 않았다. 예스러운 글자 모양과 딱딱한 번역체를 뚫고 백 년 전의 세계가 눈앞에 고스란히 펼쳐졌으니.
제가 초등학교를 막 졸업한, 몹시 추운 2월의 어느 날 청천벽력 같은 소식이 들려옵니다. 아직도 그때의 상황이 눈에 선해요. 자정이 넘은 깊은 밤에 요란하게 울리던 전화벨 소리, 서툰 한국말로 힘겹게 부고를 전하는 남자의 목소리, 찰나의 고요, 경련하듯 불규칙하게 오르내리던 엄마의 가슴, 그리고 철판을 긁는 것 같은 소름 끼치는 비명 소리를요. 아빠가 엄마를 와락 끌어안았고 엄마는 그 안에서 한참을 버둥거리며 목이 쉴 때까지 욕을 했어요. 아빠는 엄마가 품을 벗어나지 못하게 어깨를 더 세게 누르고 엄마는 더 크게 저항하고. 돈이 없어 이모의 장례식마저 갈 수 없었던 엄마는 며칠간 방에 틀어박혀 울기만 했어요. 화장실에 갈 때만 얼굴을 비쳤는데, 퉁퉁 부은 눈두덩과 눈물, 콧물, 땀으로 번들거리는 볼이 차마 눈뜨고 못 볼 지경이었어요.
그러다 드디어 바닥을 찍었는지 엄마는 방에서 나와 몸을 씻고 새로운 삶을 시작하려는 듯 보였어요. 그렇게 이모의 흔적이 점점 사라져 가는 듯했는데, 어느 날부터 엄마가 매일 같이 두통을 호소하기 시작한 거예요. 여러 병원에서 검사를 받아봤지만 하나같이 별다른 이상이 없다는 결과만 돌아왔어요. 뇌에 가해진 충격 때문에 일시적으로 예민해진 거니 시간이 약이라나. 하지만 엄마의 통증은 날이 갈수록 심해지더니 귀에서 삐― 소리가 나며 어떤 남자의 목소리가 들린다고 하기 시작했어요. 험악한 욕지거리와 가쁜 숨소리가 귓전을 맴돌면 엄마는 귀를 틀어막고 몸을 떨었어요. 처음에는 환청이라 했던 엄마는 그 환청을 현실의 목소리라 믿게 된 듯 이상한 혼잣말로 대꾸하더니, 그 빈도가 점점 잦아졌어요.
제가 엄마를 병원에 데려가자고 하니 아빠는 엄마를 정신병자 취급하는 거냐고 노발대발하더군요. 그 사이 엄마의 환각과 환청은 점점 심해져 감당이 되지 않는 지경에 이르렀어요. 밤에 고래고래 소리를 지르는 엄마 때문에 잠을 이루지 못했고, 제가 집을 비운 사이 엄마가 사라져서 한참을 찾은 적도 있었죠. 결국 아빠는 뜻을 꺾고 엄마를 정신병원에 몇 주간 입원시켰어요. 엄마를 보러 종종 면회를 갔었는데, 그곳에 있는 사람들은 약의 부작용으로 배가 나오고 눈가가 어둡고, 걸음걸이가 어딘가 불편해 보였어요. 저는 그 사람들 사이에 너무나 자연스레 섞여 있는 엄마가 낯설어 눈을 제대로 마주치지도 못했죠. 엄마가 돌아왔을 때, 몸은 제 앞에 있었지만 영혼은 머나먼 타지를 헤매고 있는 듯 보였어요. 어눌한 말씨로 이해할 수 없는 말들을 내뱉는 엄마가 측은하면서도 솔직히 말하자면 성가셨어요.
소년의 말을 들으며 어디서 튀어나왔는지 모를 기억의 파편이 머릿속을 찌르기 시작한다.
해가 질 무렵이면 엄마는 이렇게 말하곤 했다.
“해가 지고 있어. 얼른 숨어야 해. 그 사람이 올 시간이란 말이야.”
“무슨 말이야. 그 사람이 누군데?”
엄마는 대답을 회피했고 대신 눈동자로 비명을 내질렀다. 그러고는 다급하게 제 손목을 잡아끌고 식탁 밑으로 들어갔는데, 엄마와 맞댄 살을 타고 공포가 전염되는 듯했다. 엄마를 둘러싼 검은 기운이 내게 옮겨지는 듯한 끔찍한 느낌. 그 기운에 눌려 악몽에 시달리곤 했어. 꿈속에서 어떤 목소리가 나의 이름을 불러댔다. 남자인지 여자인지 모르겠지만 검고 미끌거리는 목소리. 그때 가장 무서웠던 건 내가 어떤 일을 당할지 모르는 것도, 주변에 아무도 없다는 사실도 아니라 내가 부를 존재가 없다는 거였다. 그렇게 늘 입을 벌린 채, 공허를 내뱉으며 잠에서 깼었지.
나름대로 엄마의 세상을 존중하려 노력했지만, 제 노력이 무참히 짓밟히는 그날이 옵니다. 학교에서 돌아와 현관문을 열었을 때 제 방 안에서 쉬익 쉬익 거리는 숨소리가 들렸어요. 엄마가 평소에는 제 방으로 잘 들어가지 않았기에 뭔가 이상했죠. 신발을 벗고 집 안으로 들어가 보니 제 방문은 열려 있고, 구부정한 엄마의 등이 방을 가리고 있는 거예요. 늘 그렇듯 빨간색 꽃이 괴상할 정도로 크게 그려진 민소매 원피스를 입고, 긴 머리를 풀어헤친 채로요. 날개뼈가 앙상하게 드러난 어깨가 위아래로 크게 오르내렸어요.
“엄마 나 왔어.”
엄마는 제 말을 못 들은 건지 같은 자세로 멈춰 서있었어요.
“엄마 뭐해?”
엄마의 어깨너머로 방 안을 들여다보았을 때 저는 경악을 금치 못했어요.
그건 조각조각 쪼개진 채 땅바닥에 흩어진 세계였다. 전쟁터에서 팔다리와 몸통이 분리된 시신들처럼, 갈기갈기 찢어져 생명력 없는 종이 쪼가리가 되어버린 책들. 책과 책이 서로 섞이고, 페이지가 뒤바뀌고, 낱말들이 제 자리를 잃고 배회하는 그 끔찍함.
분이 치밀어 올랐어요. 당신의 세계가 파괴되었다고 아들의 세계를 파괴할 권리가 있는 건 아니잖아요. 저는 우두커니 서 있는 엄마의 어깨를 거세게 밀쳤어요. 엄마의 몸은 제 생각보다 훨씬 더 가볍더군요. 그래서 하마터면 저도 엄마의 위로 넘어질 뻔했죠. 넘어지지 않으려고 팔을 뻗어 균형을 잡는 동안 엉덩이가 바닥에 부딪히는 둔탁한 소리가 들리고, 엄마는 꺼이꺼이 울기 시작했어요. 저는 이성을 잃고 소리쳤어요.
“나가! 나가라고!”
그때, 오후 일정이 취소된 아빠가 집에 들어왔어요. 아마 찢어진 책 따위는 보이지 않고, 주저앉아 울고 있는 엄마와 엄마를 향해 소리치는 저만 보였을 거예요. 고개를 들었을 때 마주한 건 어금니를 힘껏 깨물어 경직된 턱 근육과 광기 어린 눈빛이었어요. 상황을 설명하려고 입을 벌린 순간, 짝 소리가 들리며 얼얼한 통증과 비릿한 피 맛이 감돌았어요. 처음이자 마지막으로 아빠가 저에게 손찌검을 한 날이었죠. 차라리 아빠가 저를 자주 때렸다면 그렇게까지 수치스럽지는 않았을 텐데…….그날 밤, 요의가 느껴져 잠에서 깼는데 화장실에서 불빛이 새어나오며 아빠의 옅은 흐느낌 소리가 들렸어요. 그 소리에 심장이 철렁 내려앉았어요. 더 이상 소생할 수 없는 폐허가 되었다는 걸 그 울음소리가 증명해주는 것 같았거든요. 토할 것처럼 메스껍고 어지럽고 ……
*
역겨워서 더 들어줄 수가 없구나. 네 부모라는 작자들은 너한테 해준 게 뭐냐? 불행. 그네들이 너한테 해준 건 그거 하나야. 넌 그 와중에 그 작자의 흐느낌 소리를 기억하는 거야? 빌어먹을 인간들 같으니라고. 어린애를 완전히 망쳐놨어. 너는 연민에 절여져 이성적인 판단을 못 하게 된 거야.
선생님 왜 화를 내세요?
왜냐니. 그걸 몰라서 물어? 네 부모는 너를 완전히 짓밟아 버렸어. 일어날 수도 없이 무참하게. 그러니 네가 부모를 저주해도 그들은 할 말이 없다. 그건 합당한 거야.
소년이 입을 떼기도 전에 나는 말을 이어간다.
말이 나온 김에 그들에게 복수할 방법을 찾아보자. 그래, 네 아빠의 세계를 완전히 산산조각 내는 거다. 가족이 다시 결합할 수 있다는 그 작은 희망 한 조각마저 내던져 버리는 거지.
어떻게요?
잠시 정적이 이어지고, 나의 단호한 목소리가 공기 중에 울린다.
네 죽음.
소년은 오한이 든 것처럼 어깨를 부르르 떤다.
죽음이라고요? 저는 죽을 생각이 없어요. 그럴 자신도 없고요.
꼭 현실일 필요는 없지. 이야기 속에서 죽는 건 간단하잖아. 아프지도 않고, 네 존재가 없어지는 것도 아닌걸. 하지만 그 속에서 부모의 슬퍼하는 모습을 보면 아마 복수의 쾌감을 느낄 수 있을 테다.
소년의 얼굴에 두려움이 걷히고 무거운 그늘이 자리를 잡는다. 아이는 수긍하는 건지, 반론을 하고 싶은지 모를 진지한 얼굴로 나를 빤히 쳐다본다.
그럼 선생님의 이야기를 한 번 들어보죠. 지금까진 제가 했으니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