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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Sonya Apr 23. 2024

03. 친정과 시댁을 오가는 피난살이

4년 전 코로나를 피해 이탈리아에서 전세기 타고 왔습니다...

이탈리아 교민을 위한 고국행 특별 전세기 탑승을 하루 앞둔 2020년 3월 30일. 

착잡한 마음으로 짐을 챙기고 있었다. 

분명 잠시 떨어져 있을 텐데... 한 치 앞을 모르는 나날들이었기에 그랬을까? 

매 순간 불안하고, 집에 두고 가야 할 모든 것들이 신경이 쓰였다. 남편을 포함해서...


그날따라 몸도 좀 이상했다. 둘째를 간절히 원하던 터라 혹시나 하는 마음에 임태기를 사 와 검사를 했는데. 

세상에! 임신이었다. 기쁨도 잠시, 걱정이 급습했다. 다음날 나는 코로나를 뚫고 평범하지 않은 비행을 할 생각에 머릿속이 더 복잡해졌다.

분명 임신 극초기일 텐데, 조심 또 조심해야 하는 시기에, 세 살배기 꼬마와 자유가 극히 제한된 장거리 비행을 해야 한다니. 게다가 한국에 도착하면 2주간 시설격리라는 엄청난 산이 기다리고 있었다. 무엇보다 국내에서 이탈리아 교민들에게 보내는 매서운 시선과 날카로운 반응들에 연약해진 마음까지 더더욱 위축되었다. 오롯이 아이를 위한 마음에 어렵게 선택한 일인데.. 눈앞이 캄캄했다. (생각해 보면 당시는 코로나에 걸리면 죽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지배적이던 코로나19 극 초창기 시절이었으니...)


공항에서 남편과 유난스러운 눈물의 이별을 했다. 한 두어 달 뒤면 다시 볼 텐데. 주책맞은 짓을 했다고 돌아서서 후회했지만 돌이켜보니 많은 것들이 복선처럼 느껴진다. 그때 왜 전세기를 나와 아이 것만 신청했을까? 우리 세 식구가 함께 밀라노에서 버티고 있었다면 우린 어떻게 되었을까? 그때 전세기를 같이 타고 남편도 한국에 함께 나왔더라면... 그랬다면 지금 나는 이 글을 쓰고 있을까? 수많은 질문들이 꼬리에 꼬리를 물고 심장 박동을 올려놓는다.




2020년 4월 1일. 

모든 것이 만우절 거짓말이기를 바라며 우리는 차가운 비난속에서 대한민국에 무사히 입국했다. 내 기억 속 언제나 설렘이 가득했던 인천공항 입국장이, 범죄자들이 감옥으로 이송되는 길로 변모해 있었다. 당연히 국민들 입장에선 교민들은 바이러스를 퍼뜨리려 온 민폐인들이었으니... 


대부분이 탑승객들은 거의 아무 말도 없이 지친 몸으로 긴장하며 라인을 따라 걸어갔다. 입국장에 들어서자 교민들을 취재하러 온 기자들의 카메라 플래시가 터져 나왔고, 우리가 지나가는 발걸음마다 따가운 눈초리들이 뿌려졌다. 기자들 틈바구니에서 희끗희끗한 친정 아빠의 하얀 머리카락이 보였다. 그 옆엔 세상 가장 사랑하는 손주를 먼발치에서라도 보려고 나와있는 친청엄마의 모습도 함께였다. 잘 도착했다는 눈인사만 살짝 주고받고는 바리케이드 라인을 따라 준비해 둔 차량에 탑승했다. 제대로 먹지도 마시지도 못한 채 깜깜해져서야 시설에 도착했다. 다행히 착한 꼬마 이태리는 그 긴 여정을 잘 견뎌주었고 지칠 때로 치진 우리는 뜨거운 물로 샤워부터 했다. 아이의 배고픔을 달래주고, 벗어놓은 옷가지는 나누어준 봉투에 담에 밀봉하고 소독제를 뿌렸다. 우리의 모든 짐과 손이 닿은 모든 부분에 소독제를 뿌리고, 침대에 누웠다. 


임신초기 호르몬 변화 때문일까? 고된 여정에 녹초가 돼 잠이 든 어린 아들을 보며 눈물이 또르르 흘러 귀를 타고 내려갔다. 그래도 내 나라에 왔다는 안도감에, 교민들의 안전을 위해 전세기를 보내준 대한민국 정부에, 그리고 늘 기도로 함께해 주는 가족들이 있음에 감사하며 잠시 긴장을 내려놓았다. 

 

시설격리 첫 아침을 입덧과 함께 시작했다. 그날부터 참을 수 없는 괴로움과 호르몬에 지배당해 멜랑꼴리 한 기분까지 더해져 뭔지 모를 눈물의 2주를 극적으로 마치고 드디어 그리운 가족품에 안겼다. 



 

2020년 한국의 4월은 아름답고 조용했다. 그동안 봄, 가을은 한국 방문의 기회가 별로 없었다. 코로나로 잔뜩 긴장한 대한민국이었지만, 시설격리를 경험한 나는 친정은 한없이 편안했고, 남편 없는 시댁살이조차 불편하거나 어렵지 않았다.   


그렇게 꼬마 이태리와 점점 자라나는 뱃속의 아이 "태양이"와 함께 남편 없는 한국살이, 친정과 시댁을 오가는 코로나19 피난살이에 점점 익숙해지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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