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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쏘냐 Jun 13. 2023

러시아라는 넓은 땅, 한국보다 더 좁게 느껴지다

주재원 생활의 이모저모(4) 좁은 사회생활



러시아라는 나라는 분명, 이 지구에서 가장 큰 땅덩어리를 가진 나라인데 내가 몸담고 있는 이곳에서의 사회생활은 참 좁다. 러시아의 면적이 남한과 북한을 합친 면적의 약 77배 정도라고 하는데, 나의 인간관계는 우리나라에서 지낼 때보다 훨씬 더 좁아진 느낌이다.


좁은 한인사회


어느 나라든 한인 사회가 없는 곳이 잘 없을 것이다. 내가 지내는 이곳에선, 교민사회가 더더욱 좁아서 길에서 마주친 한국인을 내가 당장 모른다고 하더라도, 한두 다리만 건너면 다 아는 사람일 정도다. 유학생 신분으로 나왔을 때는 이 정도로 신경 쓰이지도 않았지만, 주재원으로 나왔다는 건 내 이름 뒤엔 항상 회사가 언급된다는 일종의 책임감도 따라온다는 것이다.


다행스럽게도 이곳의 교민분들 중에는 따뜻하고 가족 같은 느낌을 주시는 분들이 많아 크게 어려운 점은 없다. 하지만 괜스레 느껴지는 '행동을 조심해야지'하는 마음가짐이 괜스레 압박으로 다가오는 경우가 있기도 하다.




좁은 회사생활


사실 한인사회가 좁다는 것으로 인한 어려움은, 회사생활의 어려움에 비하면 그리 어려운 부분은 아니다. 주재생활의 성패는 주재 지역 사무실의 구성원과 분위기에 달려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주변에서 "지역이 힘든 것보다 그 지역의 사무실 구성원과 분위기를 더욱 중시해야만 한다"라고 하는 이유를 뼈저리게 느낀다.


내가 몸담은 기업이 복지 좋고 처우 좋은 대기업이라 할지라도, 주재 지역에 있는 사무실은 갑질이 만연한 구멍가게가 될 수 있다. 한국에 있는 본사에서는 여러 명이 함께 근무하고 있기에 보는 눈도 많고, 갑질/불법 노동행위에 대한 각종 우리나라의 신고 수단들이 내 등뒤에 떡하니 버티고 있기 때문에, 당연히 나의 권리들이 보장되는 편일 테다.


하지만 주재지역의 사무실은 리더가 누구냐에 따라, 그분의 말이 곧 법이 되는 것을 다수 목격하였다. 2-3명이 한 사무실에 있는 경우, 갑질을 익명 신고한다 하더라도 누군지 뻔하기 때문에 사실상 기명 신고가 되는 만큼 신고가 쉽지가 않다.


무엇보다 주재원이라는 건, '일하러 나온 것'이기 때문에 나의 생활이 대부분 일에 묶일 수밖에 없고, 생활과 일의 분리가 쉽지 않아 지는 경우도 많다. 상사도 주말이든 저녁이든 거리낌 없이 불러내는 걸 그리 이상하게 생각하지 않기도 한다.


늦은 시간 퇴근길에 적적한 마음을 달래보려 눈길위에 혼자 낙서를 해보았다.


또 회사 안에서 동료와 갈등이 생기면 '그냥 그 사람이랑은 대충 지내지'가 쉽게 되지 않는다. 대부분의 시간을 회사에서 보내기도 하지만 몇 없는 한국 사람끼리 모이는 경우가 허다하기 때문에 부딪힐 일이 어쩔 수 없이 많기 때문이다. 무엇보다 그렇게 가까이서 지낼 수밖에 없는 사람과 힘든 관계가 된다는 건 더욱 큰 스트레스로 다가오는데, 주변에 가족이나 친구가 있는 것도 아니니 그러한 감정적인 스트레스를 해소하기도 쉽지 않다.


이러다 보니 개개인이 받은 스트레스도 적지 않고, 주재생활만의 외로움으로 한계에 부딪히는 상황이 자주 발생하다 보니, 때에 따라 본인이 가진 안 좋은 성향이 최대치로 드러나는 경우도 많다.


나 역시 그럴 때가 없었다고 하면 거짓말이겠지만, 이 좁은 사회에서 아웅다웅하다 보니 서로가 서로에게 스트레스를 주고받으며 더욱 큰 스트레스를 창출(?) 해내곤 한다.




이런 점들로 인해 주재생활에 있어서는 인간관계에 대한 본인만의 가치관과 스트레스 상황에 대한 대처법을 가지고 계신 분일수록 참 유리하다는 생각이 드는데, 인생에 대한 경험치가 있어야 쌓이는 부분들인 만큼 나 역시 여기에 와서야 그런 부분을 배우려 노력하고자 한다.


그러한 과정에서 깨지며 크고 있지만, 좁은 사회에서 스트레스를 관리하기란 참 쉽지 않다. 내 인생에서 만난 최상의 난이도라고 자신 있게 말할 수 있겠다. 하지만 주재원 생활을 선택한 이상 내가 감당할 몫이겠지, 이러다 보면 나도 어느새 커져있겠지라고 생각해보려고 한다.


이런 과정 속에서 사회의 때를 묻혀가고 있는.. 좋게 말하면 조금씩 철 들어가고 있는.. 내 모습이 때로는 아쉽기도 하지만, 나름 그대로의 장점도 있겠거니, 하고 마음을 다잡아 보는 화려한 야경 속 러시아에서의 어느 날 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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