발자취를 따라가는 여행

감정이 깊게 남는

by 수록



여행의 방법에 대해서 많은 고민을 한 적이 있었다. 학부 시절 어느 수업 시간에 자유 주제로 발표를 하게 되었는데, 한창 여행을 다니던 나는 '인생은 곧 여행이다.'라는 주제로 학우들 앞에서 시답잖은 얘기를 늘어놓았었다. 발표의 내용은 여행의 방식이 몇 가지로 나뉘고 선택할 수 있는 것처럼, 인생의 방식도 그렇다는 것이었다. 그 방식은 대충 세 가지였다. 가이드가 가자는 대로 따라가는 여행, 유명한 곳만 쫓아다니는 여행, 계획 없이 발길 닫는 대로 떠도는 여행이었다. 비유를 풀어보자면 누군가 제시해준 대로 살아가는 인생이 있고, 남들이 쫓는 곳만 따라서 쫓는 인생이 있고, 그러한 계획 없이 모험하듯이 사는 인생이 있다는 내용이었다. 그러면서 당연히 나는 모험하듯이 인생을 살자고 주창했다.


지금 생각해보면 내가 뭐라고 여행과 인생을 그렇게 세 가지로 나누었으며, 그걸 진리인 것처럼 떠들었는지 참 부끄럽기 짝이 없다. 마치 사람의 성격을 혈액형으로 나누듯이 인생을 방향을 세 가지로 나누어버렸으니 말이다. 그러나 조금 더 나이가 먹고 여행을 더 다니면서 여행도, 인생도 그렇게 단순하게 딱 떨어지듯이 흘러가는 것은 아니라는 것을 배웠다. 우리 삶은 수도 없이 많은 무한개의 방향과 방식이 있었고 여행도 마찬가지였다. 살아볼수록 더욱더 알 수 없고 새로운 것이 인생이고 여행이었다. 또한 인생도 여행도 시간이 흐를수록 취향도 방향도 바뀌어갔다. 과거에는 유명한 관광지를 많이 찾아다녔지만, 시간이 흐르면서 조금은 색다른 여행의 방식을 도전하곤 했다. 그중에서도 요즘 가장 즐겨하는 여행은 바로 발자취를 따라가는 여행이다.


발자취를 따라가는 여행은 이미 많은 사람들이 간접적으로 겪어봤을 여행일 것이다. 예를 들면 역사적인 어떤 인물의 발자취를 따라가거나 어떤 사건의 발자취를 따라가거나 하는 방식이다. 그렇다. 설민석 선생님이 텔레비전에 나와서 어딜 간다고 하면 바로 이러한 여행의 방식을 취하셨다. 그렇기 때문에 우리나라 사람들에게는 그리 생소한 방식은 아닐 것이다. 또한 지금은 종영된 알쓸신잡도 그러했다! 특히나 피렌체를 갔던 알쓸신잡은 정말 정말 재밌게 보았다. 그래서 나의 다음 여행지는 피렌체가 되었다는 이야기가 있다.


이러한 여행의 시작이 설민석 선생님과 알쓸신잡 때문은 아니었다. 인생의 좋은 것들은 때론 우연히 얻어지는 것이 많은데 이 또한 그러했다. 여름휴가를 떠나게 되어서 신나게 비행기를 올라탔을 때만 해도 나는 내가 고흐의 발자취를 따라서 여행을 하게 되리라고는 생각하지 못했다. 그때까지만 해도 나는 고흐라는 화가를 잘 알지도 못했고 그렇게 좋아하는 화가도 아니었기 때문이었다. 단지 나는 열흘 정도 파리에 머물면서 파리 시내 구경이나 하고 근교를 돌아다니며 몽생미셸을 보고 오는 것이 여행의 목적이었다. 기내에서 영화 '러빙 빈센트'를 보기 전까지는.


그때 알고 지내던 지인이 고흐를 상당히 좋아했더랬다. 그래서 '러빙 빈센트'라는 영화를 강력 추천했었는데 그다지 마음이 가지 않았다. 애초에 나는 고흐를 좋아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그러나 인천에서 파리까지의 비행시간은 무려 12시간. 영화를 6편이나 볼 수 있는 시간이었다. 남은 시간을 죽이기 위해서 그 영화를 보는 것도 나쁘진 않겠다고 생각했다. 결국 나는 '러빙 빈센트'를 틀었다. 영화의 이야기는 고흐의 생애를 서사적으로 보여주는 내용이었다. 고흐가 어떻게 살았고 어떻게 죽었는지를 만화영화 보듯이 볼 수 있었다. 그 영화가 꽤나 의미가 있었던 건, 고흐가 그렸던 그림들과 그렸던 사람들이 그대로 유화로 재현되어서 스크린으로 펼쳐졌다는 것이었다. 그러나 그런 영화적 표현 방식을 떠나서 고흐라는 인물에 있어 영화는 상당히, 아주 상당히 내 심장을 크게 때렸다.


파리에서 이틀이나 사흘이 지났을 즈음, 근교 후보지 중 하나였던 오베르 쉬르 우아즈를 가게 되었다. 사실 나는 오베르 쉬르 우아즈가 고흐가 마지막 인생을 살았던 곳이라는 것도 몰랐다. 단지 퐁텐블로, 아미앵, 지베르니 등과 같이 파리에서 가기 좋은 근교 도시라는 것 밖에 몰랐다. 그러나 이미 '러빙 빈센트'를 보고 온 나에게 오베르 쉬르 우아즈는 다른 느낌이었다. 영화에서 보았던 그 장면들이 그 작은 마을을 거닐면서 하나 둘 떠올랐다. 그 마을에는 고흐의 흔적들이 고스란히 남아 있었다. 고흐가 생을 마감한 초원은 그림과는 전혀 다르게 푸르고 또 푸르렀지만, 그러한 푸르름이 오히려 더 가슴 아프게 다가왔다. 고흐의 눈에 비친 세상이 내가 보는 세상과는 너무나도 달랐기 때문이다.


그리고 이러한 고흐의 발자취는 여행 막바지에 들른 오르셰 미술관에서 완성되었다. 오르셰 미술관 4층에는 고흐 전용관이라고도 할 수 있을 정도로 고흐의 작품이 많은데 그 안에서 나는 작품들을 보는 내내 소리 없이 울었다. 특히나 아를의 별이 빛나는 밤에 앞에서는 쉬이 발을 떼지 못했다. 미술작품을 볼 때 작품의 제목과 설명 없이 그림만 보고 나름의 느낌으로 재해석하는 나는 그 작품이 너무 슬퍼 보였다. 아마도 내 마음속에 고흐라는 사람에 대한 감정이 슬픔과 안타까움으로 점철되어 있었기 때문일 것이다. 그러한 일련의 일을 경험하면서 나에게 고흐는 단순히 화가이며 역사적 인물만은 아니게 되었다. 윤동주 시인이나 가수 유재하처럼 그 사람의 생애에 깊게 빠져버렸다. 덕분에 나의 삶과 감정은 더욱더 풍부해졌고 그때의 그 파리 여행은 나에게 정말 고마운 여행이 되었다.


여행의 방식은 정말 다양하다. 걱정 없이 호텔에서 쉬며 휴양만 하는 것도 정말 좋은 여행이다. 고생을 하더라도 보고 싶은 풍경을 찾아다니는 것도 정말 좋은 여행이다. 그러나 때때로 조금은 색다른, 사진과 추억이 아니더라도 감정적으로 무언가 남길 수 있는 이런 여행도 매우 좋은 것 같다. 많은 사람들이 여행을 좋아할 수밖에 없는 이유는 이런 점 때문이지 않나 싶다. 세상은 넓고 갈 곳도 많은데 또 이렇게 다양한 방식의 여행이 존재하니 말이다. 물론 돈을 펑펑 쓸 수 있고 일을 안 해도 되기 때문에 좋아하기도 하겠지만.


그때의 그 파리 이후로 나는 상해 임시정부 수립 100주년을 맞아서 친구들과 상해에 다녀왔다. 다음 여행지로는 이탈리아 피렌체와 로마를 갈 예정이다. 또한 내가 감명 깊게 읽은 책, 감명 깊게 본 영화들의 발자취를 따라가는 여행을 하고 싶기도 하다. 알베르 카뮈가 느꼈던 지중해의 뜨거운 태양을 느끼며 뫼르소의 감정을 겪어보고 싶고, 러브레터에서 이츠키가 잘 지내냐며 소리치던 그 설원을 가서 떠나간 사람들에게 안부를 묻고 싶다. 아쉽게도 지금은 지중해도, 일본도 갈 수 없지만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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