좋은 숙소란 무엇일까?
가족여행을 위해서 형과 여행 계획을 짜던 중이었다. 성향이 워낙 다른 탓에 많은 부분에서 갈등이 있었지만 무엇보다도 가장 크게 부딪혔던 부분은 숙소였다. 형이 주장하는 바는 좋은 숙소에서 묵자는 것이었다. 부모님과 처음으로 함께 떠나는 유럽여행이니 기왕이면 좋은 호텔에서 묵었으면 싶었던 것이다. 반면에 나는 숙소에서 예산을 줄여서 다른 맛있는 음식이나 좋은 곳들을 가자고 했다. 서로 양보할 건 양보하고 주장할 건 주장하면서 결국 적당한 숙소 절반과 좋은 숙소 절반 정도를 예약했다. 물론 가지도 못하고 전부 취소했지만.
나의 여행 스타일은 사실 어디서 묵느냐가 중요한 것이 아니었다. 어디에 가고 무엇을 보고 얼마나 오래 머무느냐가 중요했다. 숙박비를 줄이면 여행에서 더 많은 것을 즐길 수 있었기 때문이었다. 밖에서 오래 돌아다니면 다닐수록 숙소에 있는 시간은 점점 줄어들었기 때문에 숙박비에 많은 돈을 들이지 않았다. 비싼 숙소를 잡아 두면 왠지 여행 시간을 줄여서라도 숙소에 돌아가야 할 것 같은 기분이었다. 그래서 나는 언제나 가장 저렴한 호스텔이나 게스트 하우스에 투숙을 하곤 했다. 그게 경비도 줄이고 마음도 편했다.
그나마 좋은 숙소에 머물렀었던 기억은 여행을 막 다니기 시작했을 무렵의 일본에서였다. 일본은 비즈니스호텔이 워낙에 잘 되어 있어서 일박에 오만 원 정도의 저렴한 가격으로 일인실을 구할 수 있었다. 작은 원룸 크기의 방이지만 샤워실과 고급 침대까지 있을 건 다 있는 곳이었다. 분위기도 어두침침하니 좋아서 마음이 편안해지는 곳이었다. 그러나 그렇게 가성비 좋은 곳이었음에도 나의 마음은 조급했다. 내 기준에 비싼 방에서 묵는다는 생각에 그 안에서 할 수 있는 것은 다 했다. 욕조가 있으면 무조건 물을 받아 몸을 불렸고, 어메니티는 있는 힘껏 챙겼으며, 냉장고에 있는 음료들은 굳이 다 챙겨 마셨다. 물론 추가 요금을 내지 않는 선에서만. 누가 보면 일박에 이십만 원짜리 호화로운 호텔이겠거니 생각했을 것이다.
그러나 얼마 지나지 않아 나는 그 오만 원도 아까웠었나 보다. 일본을 몇 번 다니면서 나의 숙소는 비즈니스호텔에서 게스트 하우스로 바뀌었고, 친구들이랑 갈 때는 에어비엔비에 묵고는 했다. 에어비엔비는 친구들과 나눠내면 인당 삼만 원 정도에 빌릴 수 있었기 때문이다. 유럽 같은 먼 여행을 갈 때면 두 말할 것 없이 호스텔에 묵었다. 그렇게 여행을 다니다 보니 나에게 숙박비는 삼만 원을 넘기면 비싸다는 생각이 자리잡기 시작했다. 숙소 짠돌이의 탄생이었다.
비싼 호텔에 안 묵어봐서 그렇게 생각할 수도 있을 것이다. 그러나 국내이긴 하지만 작년에 회사의 복지로 서울의 한 호텔에 묵었던 경험이 있긴 있었다. 그곳이야말로 하루에 약 이십만 원 정도 하는 호텔이었다. 두 명이서 묵을 수 있는 숙박권이었지만 나는 혼자만의 시간을 가지기 위해서 무려 이박 삼일을 혼자 호텔방에서 머물렀다. 웰컴 드링크도 나오고 조식 이용권도 나오고 심지어 수영장도 이용할 수 있었다. 그러나 내겐 그뿐이었다. 침대는 일본에서 누웠던 오만 원짜리 비즈니스호텔과 다를 바가 없었고, 물의 온도도 똑같았고, 욕조도 똑같았다. 더군다나 나는 수영장도 이용하지 않고 웰컴 드링크도 한 잔 밖에 먹지 않았다. 좋은 숙소라는 것은 충분히 알겠지만 그래서 뭐가 더 좋은지 기억에 남지 않았다. 그 돈으로 차라리 소고기를 먹었으면 더 좋았을 것이라는 생각을 했다.
내가 생각하는 좋은 숙소는 그런 개념이 아니었다. 하루를 묵어도 고향집에서 쉬는 것처럼 편안한 곳이거나, 마음이 잘 맞는 여행자들과 이야기를 나눌 수 있는 그런 곳이었다. 파리에서 거진 열흘을 묵었던 한인민박이 내게는 그런 곳이었다. 침대도 불편하고, 샤워실도 매우 불편하던 곳이었지만 나는 그곳이 편했다. 사장님이 해주시는 아침밥과 저녁밥이 집밥처럼 맛있었고, 매일 저녁 여행자들과 함께 하는 짧은 대화의 시간들이 좋았다. 시설이 좋고 편한 숙소는 아니더라도 숙소에 더 있고 싶은 기분을 들게 하는 곳. 함께 묵는 사람들과 함께 거실에 모여 대화를 나누는 시간이 기다려지는 곳. 그게 여행의 숙소가 채워주는 특별함이었다. 그렇게 생각하면 한창 힘들었던 작년 겨울에 잠시 머물렀던 제주의 숙소도 그랬고, 친구들과 함께 묵었던 후쿠오카의 에어비엔비도 그랬고, 리스본의 게스트 하우스도 그랬다. 좋은 사람들과 함께여서 순간순간이 매우 즐거웠고, 편의점에서 털어 온 음식들이 호텔 룸서비스보다도 맛있었다.
물론 형이 가고 싶어 하던 좋은 숙소라는 게 비단 비싸고 호화로운 곳을 뜻하지는 않았을 것이다. 형이 부모님에게, 우리 가족에게 주고 싶었던 숙소는 여행의 피로를 녹여주고 편안하게 기운을 충전시켜주는 그런 곳이었을 것이다. 좋은 직원들이 있고 좋은 서비스를 통해서 좋은 추억을 만들 수 있는 그런 곳. 그런 곳들이 꼭 비싼 숙소만을 뜻하지는 않았겠지만 꽤나 높은 확률로 그런 숙소를 잡고 싶었을 것이다. 아무래도 비싸면 비쌀수록 숙소는 더 좋을 수밖에 없을 테니까. 사실 어디에 묵더라도 온 가족이 함께 묵었다면 더할 나위 없는 숙소였지 않았을까. 결국 중요한 건 누구와 함께 하느냐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