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무도 모른다.
원래대로라면 올 오월에는 가족여행이 계획되어 있었다. 우리 네 식구가 처음으로 함께 떠나는 해외여행. 일전에 부모님과 일본 여행을 다녀온 적이 있었지만 부모님은 내내 아쉬워하셨다. 형이 없었던 까닭이었다. 그래서 자식들의 주도로 이 년간 각 십만 원씩 계를 들었고, 얼추 경비가 모여 가기로 한 유럽 여행이었다. 부모님을 모시고 먼 길을 떠나는 여정이다 보니 그 어떤 여행보다도 철저하게 준비했었다. 비행 편, 숙소, 이동, 식당까지 완벽하게 준비했는데. 결국엔 가지 못하게 되었다.
취소의 가장 큰 이유는 당연히 안전이었지만 그에 못지않게 우려스러웠던 점은 바로 인종차별이었다. 현지의 분위기가 어떤지 모르는 상황에서 내가 정보를 얻을 수 있는 창구는 기사와 인터넷 카페뿐이었다. 아무래도 코로나-19가 동아시아에서 가장 먼저 창궐했다 보니 아시아인에 대한 대우가 좋지 않다는 이야기가 많았다. 그들의 말을 알아듣지 못할 뿐, 잘 들어보면 유럽 현지인들도 충분히 코로나-19에 대해 우려하고 있다고 했다. 코로나-19가 지나가더라도 그들의 마음에 남은 상처가 어디로 표출될지도 모르는 일이었다. 물론 일부의 문제이겠지만 그 대상이 우리 가족이 아닐 것이라는 확신은 하지 못했다. 특히나 부모님과 함께였으니까.
그렇다고 나는 인종차별을 그렇게 민감하게 신경 쓰는 타입은 아니었다. 애초에 인종차별의 기준이 참 모호하기 때문이었다. 대놓고 눈을 찢는 행위를 하거나, 신체적인 가해를 하는 행위면 확실히 인종차별이고 매우 악의적이다. 그러나 실제로 유럽에서 일어나는 인종차별의 대다수는 그렇게 명확하지 않았다. 물론 피해자의 기준에서 인종차별이라고 느끼면 인종차별인 것인데, 그것이 또 가해자의 입장에서 전혀 그런 의도가 아니라고 하면 생각해 볼 문제다. 세상에는 잘 모르고 하는 행동들이 상당히 많기 때문이다. 예를 들어 우리가 흑인들을 보고 '흑형'이라고 친근하게 부르는 말이 그들에게는 좋지 않게 들리는 것처럼.
여행에 있어서 인종차별은 그 여행의 기분을 크게 좌지우지할 수 있는 사건이다. 그래서 나는 내가 겪었던 일련의 사건들을 인종차별이라고 생각하지 않았다. 그저 그들이 잘 몰라서 하는 행동이라고만 생각했다. 굳이 그런 일들을 인종차별이라고 생각하면 나만 피곤해지니까. 그 일들을 인종차별이라고 인정하면 내 여행이 엉망진창이 되어버리니까.
한 번은 세비야에서 그런 경험을 한 적이 있었다. 이미 그라나다에서 버스를 타고 넘어와서 매우 피곤한 상황이었는데 쉬지 못하고 또 리스본으로 넘어가야 했다. 잠깐의 짬이 나서 뭐라도 요기를 해볼까 하여 세비야 시내를 걸어가는데 저 멀리 중학생 정도로 보이는 무리들이 지나가고 있었다. 한 남자아이가 나를 스쳐 지나가면서 '곤니찌와'라고 던졌다. 무리로 돌아간 아이는 친구들과 깔깔깔 웃으며 사라졌다. 순간 심장이 덜컥 내려앉은 듯이 기분이 바닥을 쳤다. 내가 한국인인데 일본어를 들어서였는지, 그때는 밤이라 '곰방와'인데 '곤니찌와'라고 해서였는지, 아니면 단지 피곤해서였는지 모르겠다. 이유는 모르겠지만 그냥 기분이 좋지 않았다. 사실 이걸 인종차별이라고 해야 하는지에 대해서 나조차도 판단할 수 없었는데도 말이다.
반대로 비슷하지만 전혀 다른 느낌의 일이 있었다. 그 일이 있기 바로 며칠 전 같은 세비야에서의 일이었는데, 그때는 숙소로 돌아가고 있는 길이었다. 작은 건물들 사이로 골목골목 지나고 있었는데 저 멀리 스페인 청년 네댓 명이 맥주를 마시고 있었다. 나를 발견하고는 큰 소리로 '안녕하세요!'를 외치는데 나도 모르게 '안녕하세요~!'라고 화답을 했다. 말 그대로 화답을 했다. 내가 한국인인지 어떻게 알고 '안녕하세요'를 외쳤을까 싶어서 신기하기도 했고, 그 분위기가 좋아 보여서 마음이 나쁘지 않았다. 그러나 사실 지금 생각해보면 그 청년들의 의도를 나는 알 수 없다. 그들이 아는 단어가 '안녕하세요' 밖에 없는데 동양인 여행객을 놀리기 위해서 던진 말이었는지, 정말 한국이라는 나라를 좋아하고 관심이 많아서 그랬던 건지 모른다. 그건 '곤니찌와'라고 나에게 말을 던졌던 그 소년도 마찬가지였다.
과연 그 사람들의 의도는 무엇이었을까? 그 아이는 나에게 말을 걸어보고 싶어서였을까, 놀리고 싶어서였을까? 그 청년들은? 그들은 내가 한국인이라서 반가웠을까? 아니면 한국인들이 하도 많이 놀러 오는 게 보기가 싫었을까? 아직도 나는 그게 뭐였는지 알 수 없다. 대놓고 눈을 찢는다거나 몸을 건든다거나 하는, 누가 봐도 인종차별이라면 화가 잔뜩 났겠지만 이런 식의 습자지 같은 행동들은 억울하게도 기분은 나쁜데 어디에 호소할 데도 없었다.
인터넷 카페를 둘러보면 수많은 인종차별에 대한 글들이 있다. 식당에서 서빙을 늦게 받았다든지, 물이나 음료를 달라고 했을 때 기분 나쁜 행동과 눈빛을 건넸다든지. 이러한 일들을 겪으면 그게 인종차별이든 아니든 기분이 좋지 않다. 그래서 나는 이러한 일들을 어떻게든 겪지 않아 보려고 노력한다. 여행을 준비할 때 그 나라의 언어를 최대한 습득하거나, 그 나라만의 문화를 체득하려고 한다. 좋은 기분을 유지하려면 그게 인종차별인지 아닌지를 알아야 하고, 그걸 알려면 그 나라의 문화와 언어를 알고 있어야 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네이티브가 아니기 때문에 언제나 한계가 있다. 인종차별을 겪지 않을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은 그 나라에 가지 않는 것이다. 결국 인종차별은 여행을 한다면 무조건 안고 갈 수밖에 없는 불가항력의 존재인지도 모른다.
좋은 여행이라는 것은 기억 속에 좋은 경험들을 담는 것일 수 있다. 그러나 나는 여전히 이렇게 생각한다. 좋은 여행을 만들기 위해서는 나쁜 경험을 하지 않는 것이 중요하다고 말이다. 인종차별을 당하는 것은 내 의도가 아니지만, 당하지 않도록 상황을 만들 수는 있다고. 생전 처음 유럽을 가게 되는 우리 부모님이 혹시나 나쁜 여행을 겪게 될지도 모르는 상황을 막을 수는 있다. 그래서 아마도 우리 집 곗돈을 깨는 시기가 2년은 더 미뤄질 것 같다. 문제는 2년 뒤라고 하더라도 유럽이 조금은 더 안전할까? 그때까지 최대한 프랑스어를 공부하는 수밖에 없을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