털보와 먹보(2021), 넷플릭스
나이를 한 살, 두 살 먹어도 도통 철이 들지 않는 것 같다는 생각을 하곤 했다. 깔끔한 정장을 입을 시기에 오히려 나는 맨투맨과 청바지가 마음에 들었고, 정갈한 로퍼를 신기보다는 알록달록한 어글리 슈즈를 신고 다녔다. 노래가 흘러나오면 여전히 흥에 겨워 몸을 흔들고, 나보다 띠동갑은 되어 보이는 아이돌을 보며 응원하곤 했다. 결혼할 생각도 아이를 낳을 생각도 없는 나는, 나이를 이상한 대로 먹은 철없는 아저씨인 것이다.
그러나 정확히 말하면 철들지 않았다기보다는, 철들지 않고 싶다는 게 더 맞는 표현일 수도 있겠다. 나는 철들지 않기를 바란다. 매년 해돋이를 보면서, 떡국을 먹으면서도 나는 다짐했다. 영원히 철들지 않게 해 달라고.
너무 일찍 철이 들어버려서
내가 철들지 않기를 바란 것은 역설적으로 너무 일찍 철들어버린 것에 대한 반항심 때문이었다. 그렇다. 나는 너무 일찍 철이 들어버렸다. 어릴 때는 그걸 잘 몰랐지만 나이가 먹어서 알았다. 나는 어려서부터 어린 아이이지 못했고 애늙은이로 살아왔다는 걸. 그렇게 살아온 것에 대해 남이나 환경을 탓하고 싶지는 않다. 그 시절에는 다 그렇게 살았으니까. 우리 부모님도 어쩔 수가 없었으니까.
우리 집은 그리 잘 살지 못했다. 지금의 내 나이와 몇 살 차이가 나지 않던 시절의 부모님은 두 아들을 힘들게 키우셨다. 공무원이셨던 아버지의 외벌이로 네 식구를 건사하기란 쉽지 않았다. 어머니는 꾸준히 소일거리를 찾으셔야 했고, 자식들에게 그런 말을 해서는 안되지만 어머니는 꽤나 자주 '돈이 없다'라는 말을 하셨다. 그런 환경에서 자란 나는 초등학교 시절 '뉴 논스톱'의 양동근 씨 캐릭터를 따라 하며 항상 친구들에게 백 원만 달라고 했다. 새 옷을 사면 친구들이 알아볼 정도로 새 옷을 사본 적이 없었다. 어린 나의 가슴속에는 돈이 없는 부모님을 힘들게 하면 안 된다는 생각이 깊게 자리 잡았던 것 같다. 그래서 유독 잊지 못하는 기억들은 돈 때문에 부모님의 가슴에 못을 박은 사건들이다. 물론 지금에 와서는 공무원이 좋은 대우를 받는 직업이 되었고, 부모님은 연금 덕분에 돈 걱정 없이 사신다. 어린 시절의 가난은 엄살이었다고 할 정도로.
그러나 어린 나에게 그 엄살은 공포와 두려움이었고, 지금의 나를 만들었다. 나는 여전히 20~30만 원씩 하는 겨울 외투를 사지 못한다. 너무 비싸기 때문이다. 내 옷장의 겨울 파카는 6년 전 신입사원 때 회사에서 준 패딩 하나뿐이다. 명품에는 관심도 없고, 지갑이나 시계도 없다. 신발도 학창 시절 내내 컨버스 하나만 신었다. 싸고 예뻐서. 캐시미어 같은 옷의 재질에도 관심이 없었다. 비싸니까. 그냥 적당히 예쁘고 싼 옷들이 좋았다. 그래서 나는 20대를 유니클로와 보냈다. 적당히 싸고 예뻐서. 병원도 잘 가지 않고, 밥도 잘 먹지 않는다. 파고들면 모든 이유는 전부 돈이다. 돈.
그렇다고 내가 자린고비처럼 돈을 안 쓰고 모으냐고 하면 그건 또 아니다. 이런 내가 돈을 아끼지 않는 영역이 있는데 바로 여행, 굿즈다. 만화를 좋아해서 피겨나 인형들을 엄청 사모으고, 여행을 갈 때는 돈을 아끼지 않는다. 어릴 적 참고 살았던 것들에 대한 해방감 때문일지도 모른다.
즉, 나는 여전히 돈을 잘 쓰지 못한다. 써야 할 곳에 쓰지 못하는 인간이 되어버린 것이다. 써야 할 곳에 잘 쓰는 것이 좋은 돈이라 생각하지만 나는 그렇지 못하다. 병원을 안 가고 버티다가 수십만 원을 내거나, 친구들과 밥을 먹을 때 가격표를 유심히 본다거나, 필요한 옷을 사지 않고 춥게 다닌다거나.
혼자서 잘 자란 아이
또 나는 조금 일찍 부모님의 눈치를 보았다. 나에겐 형이 있었고, 형은 자주 나의 비교대상이었다. 형은 건강하고 사교성이 넘치며 활동적이었다. 무엇보다도 밥을 아주 잘 먹었다. 그러나 때로는 사고를 잘 치며 부모님 속을 썩였다. 나는 그런 형을 보며 자랐다. 내가 가지지 못한 것에 대해 형과 비교될 때면, 나는 그것을 채워야 한다는 강박이 자리 잡았다. 밥을 잘 먹는 척을 해야 했고, 친구들이 많은 척을 해야 했고, 밖을 잘 돌아다니는 척해야 했다. 무엇보다도 사고를 치는 형을 보며 나는 부모님 속을 썩이지 않아야겠다고 마음먹었다. 그것이 형을 이기기 위해선지, 슬퍼하는 부모님의 모습을 보기 싫어서였는지는 모르겠다. 그냥 그러겠다고 마음먹었다.
그렇게 나는 조용하고 착실한 아이로 컸다. 고모들은 모두 나를 혼자서 잘 자란 아이라고 하신다. 큰 사고 한 번 안치고 잘 자라주었다고 하신다. 무엇보다도 고모들이 그렇게 말씀하시는 이유는 내가 고등학교를 홀로 다녔기 때문이었다. 고등학교에 들어갈 무렵, 아버지는 먼 타지로 발령이 나셨다. 그러나 아버지 건강이 안 좋아지시면서 어머니가 아버지 곁을 지키셨는데, 마침 형은 대학과 군대 때문에 집을 떠나 있었다. 결국 나는 혼자 아침을 맞이하고, 혼자 밤을 맞이했다. 아버지의 건강이 괜찮아지실 때쯤에는 기숙사를 들어갔고, 그렇게 나의 사춘기는 끝났다.
서운하지 않았다고 하면 거짓말이다. 그러나 나는 혼자 잘 자라야 했다. 아버지는 아프셨고, 어머니는 아버지를 지킬 수밖에 없으셨다. 그럴수록 나는 중심을 잘 잡고 착실하게 생활을 해야 했다. 그래서 나는 지금도 부모님에게 많은 얘기를 하지 않는다. 모든 핑계는 걱정하실까 봐. 너무 일찍이 혼자가 되어버린 삶이 익숙해진 건지, 아니면 정말 부모님께 걱정을 끼치고 싶지 않아서인지는 모르겠다. 무소식이 희소식. 그것이 나와 부모님의 관계를 설명하는 말이다.
김태호 피디가 넷플릭스와 야심 차게 준비한 예능, 먹보와 털보. 나는 이 시리즈를 보면서 표정 없이 홀로 걷고 있는 어린 시절의 나를 불러왔다.
아무런 자극도, 시끄러움도 없이, 단 두 사람이 그저 달리고 먹고 자고 노는 모습이 그렇게 보기 좋을 수 없었다. 나이도 불혹에 가까우면서, 한 명은 또 두 딸의 아버지이기도 한 두 아저씨들이 내 가슴속으로 들어왔다. 어린 시절의 나는 그 모습을 보며 나도 같이 달리고 싶다, 나도 같이 먹고 싶다, 나도 같이 놀고 싶다고 외쳤다. 돈 걱정 없이, 일 걱정 없이, 사람 걱정 없이 그렇게 해맑게 웃고 노는 모습이 정말 부러웠던 것이다. 두 사람의 모습은 아직 철들지 않은, 잊었던 순수함을 되찾은 모습이었다.
일찍 철이 들어야 했던 사람들
그러나 역설적으로 두 사람은 모두 너무 일찍 철이 들어버린 사람들이었다. 젊은 시절에 그저 즐거워서 시작한 방송일이 점점 부담이 되어, 스스로를 무너뜨리는 것을 애써 지키고 있던 홍철 님. 좋지 않은 사건으로 결국 무한도전에서 하차했지만, 무한도전에도, 놀면 뭐하니에도 결코 얼굴을 비추지 않았던 이유는 그 부담을 다시 지는 것이 두려워서일 것이다.
인슐린 살 돈이 없어서 어머니를 떠나보낸 지훈 님. 빨리 성공해서 어머니께 좋은 모습을 보여주고 싶었던 지훈 님은 많은 실패를 거듭하며 결국 월드스타가 되었다. 그 어떤 고통도 어머니가 겪었을 고통보다는 크지 않다는 생각으로 산다는 그. 그는 무릎팍 도사를 나와서 20대를 잘 살고 있는지 모르겠다는 고민을 털어놓았었다.
이랬던 두 사람이 어느새 불혹에 가까운 나이가 되어서 모든 부담을 내려놓고 즐겁게 노는 모습이 그렇게 행복할 수 없었다. 여전히 철들기를 거부하며 자신만의 캐릭터를 지켜가는 홍철 님, 너무 일찍 철이 들어버렸지만, 다시 아이로 돌아가고 있는 지훈 님. 거기에 그런 두 사람을 흐뭇하게 바라보는 효리 님과 상순님. 먹보와 털보의 OST를 들어보면 이러한 마음이 더 깊게 전해져서 마음이 아려온다.
깊은 밤하늘 반짝반짝
보고픈 얼굴 생각나네
이런 내 마음 전해질까
내 목소리 들릴까
아 아 그리운 내 친구
형 누나 동생들
함께 웃고 울고 떠들고
맛있는 것 먹고
함께 자고 눈 맞춤하고
사랑한다 말하리라
아 아 그리운 내 친구
형 누나 동생들
함께 웃고 울고 떠들고
맛있는 것 먹고
함께 자고 눈 맞춤하고
사랑한다 말하리라
그렇기에 먹보와 털보를 보는 내내 나는 큰 위로를 받는 기분이었다. 그저 나와 비슷한 사람들의 모습을 보는 것만으로도 어린 시절의 내가 괜찮아졌다. 효리 님과 상순님이 홍철 님과 지훈 님을 흐뭇하게 바라보던 것처럼, 나 또한 두 사람의 모습을 스크린으로 흐뭇하게 바라보고 있었다. 아무런 불편함이 없이.
마음 편히 놀자
기쿠지로의 여름이라는 영화는 내가 정말 좋아하는 영화다. 이야기는 마사오의 엄마를 찾기 위해 마사오와 기쿠지로가 만들어내는 사건 사고들을 보여주지만, 제목에서 말하는 것처럼 이 영화는 기쿠지로에 대한 영화다. 즉, 철들지 않은 어른의 이야기. 아이다워야 할 마사오가 더 어른스럽고 어른스러워야 할 기쿠지로는 아이 같은 모습을 보며, 우리는 그 모습을 불편하거나 혀를 차기보다는 측은하게 느낀다. 어른이 되지 못한 기쿠지로가 안쓰러우면서도 철들지 않고 순수한 기쿠지로의 모습이 부럽기 때문이다.
주변을 돌아보면 일찍 철이 들어버린 아이들이 많이 보인다. 아이다워야 할 아이들이 어른스러운 척 살아가는 모습을 보면 마음이 아프다. 너무 일찍 철이 들어버린 아이들은 어른이 되어서 오히려 아이로 변해 간다. 누리지 못했던, 참아 왔던 아이다움을 어른이 되어서야 되찾는 것이다. 그러나 이제는 누구도 그들을 보며 비난하거나 욕하지 않는다. 철들지 않으면 뭐 어때? 보기 좋기만 한데. 그렇게 먹보와 털보는 나를 위로한다. 그리고 철들지 않는 두 아저씨들을 통해 한번 더 다짐을 한다.
나도 영원히 철들지 않을 수 있기를. 이 전쟁터 같은 세상 속에서 순수함을 지킬 수 있기를.